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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13 18:25 수정 : 2008.02.14 09:21

조용한 독서실이자 개인 작업실, 세미나 장소로 이용되는 ‘즐거운 북카페’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주인은 대부분 홍대 앞에서 오랫동안 작업을 해 온 예술인들

최근 홍대 앞은 눈 뜨면 새 카페가 문을 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의 카페 열풍이다. ‘제2’라는 말이 붙는 건 90년대 중반에 이미 홍대 앞에 카페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개의 바람은 그 온도도 세기도 다르다. 오렌지족의 출현과 함께 불었던 첫 카페 바람은 ‘럭셔리’한 인테리어와 ‘럭셔리’한 커피값으로 도배질됐던 반면, 최근에는 갤러리나 공연장, 작업실 등의 문화적 기능이 더해지고 있다. 2003년 문을 연 ‘이리 카페’는 공연과 전시 등 문화 복합공간으로서 홍대 앞 카페의 원조 격인 장소다. 주차장 끝자락 합정역 가는 길에 2년 전 문을 연 ‘무대륙’처럼 작가들의 작업실을 카페로 바꿔 전시와 공연, 시낭독회 등을 수시로 여는 공간들도 생겨난다. 이렇게 차 팔고, 술 파는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 홍대 앞 카페들에는 특징이 있다. 약속하지 않아도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홍대 앞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냄새가 폴폴 나며 공간들의 주인장은 대부분이 홍대 앞에서 오랫동안 작업을 해 온 예술인이 많다. 지난해 문을 열어, 미술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입소문이 난 아트카페 ‘샴’도 그중 하나다.

홍대 미대를 나온 배철호씨가 자신의 작업 주제이기도 한 ‘샴’(쌍둥이)을 타이틀로 삼고 이곳을 열 때 구상했던 건 “다방의 재부활”이다. “옛날, 문인들이 모여서 설탕 듬뿍 넣은 커피로 허기를 달래며 예술을 논하던 풍경을 재현해 보고 싶었다”는 뜻. 지난 3월에 문을 연 이래 샴의 벽은 미대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신진 작가들이 2주씩 번갈아 공유해 왔다. 그렇게 참여한 작가들과 그 친구들, 또 전시 기획자들이 샴의 단골이 됐다. 자신이 현재 작업을 하고 있고 또 전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신진 작가와 갤러리 큐레이터들의 끈을 이어 주는 것도 샴 주인장이 할 일 가운데 하나다.

전시 뿐 아니라 공연 등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펼치는 아트카페 ‘샴’의 주인, 미술가 배철호씨.
배씨는 “사람이 카페”라고 말한다. 모양이 어떻고 형식이 어떻건 간에 카페를 찾는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냥 커피숍에 불과하다. 주차장에서 합정역 가는 골목에 있는 ‘즐거운북카페’의 운영자 라지웅씨는 “홍대 앞 카페들은 커뮤니티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라씨와 만화가 김태권씨가 지난해 단편영화 감독인 선배에게서 인수한 이 카페도 단골 장사다. 일러스트레이터를 하는 손님은 이곳에 와서 개인 작업을 하기도 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두툼한 교정지 더미를 들고 와서 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끼리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한다. 전 주인이 카페를 열 때 서재에서 꺼내온 500여 권의 책과 함께 이곳을 들르는 단골들이 자신의 책을 낼 때마다, 또는 일하는 출판사에서 신간이 나올 때마다 기증한 책들로 빼곡하다.

예술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작업실이나 도서관 또는 공부방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요즘 홍대 앞 카페들은 너나없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따라쟁이를 만들던 스타벅스보다 한 단계 진화된 카페로 평가받기도 한다. 노트북을 연결하기 위한 전기코드는 기본이고 스탠드와 흡연자를 위한 공간이 마련된 곳도 많다. 한 갤러리 카페는 간단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미술도구들까지 갖춰 놓았다.

물론 홍대 앞의 카페가 모두 실험적 문화공간 노릇을 자임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런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보다는 <커피프린스 1호점>의 추억을 더듬어 홍대 앞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럼에도 홍대 앞에서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던 청년들이 차리는 카페나 바가 많아지는 것은 지금 홍대 앞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결국 홍대 앞으로 밀려오는 거대한 자본의 손길을 뻔뻔하게 뿌리칠 수 있는 건 오랫동안 이들이 홍대 앞에서 갈고닦아 온 삐딱이 정신이므로.

글 김은형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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