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잠든 사이 빵 굽기가 시작된다. 반죽기가 없던 시절엔 제빵사가 직접 반죽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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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반죽 치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우는 새벽에 들여다본 빵집 주방의 속살
지난 25일 아침 6시, 나폴레옹 과자점 앞.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프랜차이즈 제과점 빵 운반차가 휙 지나갔다. 영하 9.7도. 반코트의 깃을 세웠다. 훅, 입김은 찬 공기와 닿자마자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나폴레옹 과자점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바로 옆에 있다. 그러나 겨울 새벽 지하철역은 인적이 없었다. 나폴레옹 과자점 지하 1층 주방은 딴 세상이었다. “여기 제빵사 옷과 앞치마가 있습니다. 2층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나오세요.” 박기수 공장장이 옷을 건넸다. 옷을 갈아입으니 그제야 잠이 깼다. 박 공장장을 포함해 벌써 13명의 직원들이 손을 놀리고 있었다. 긴장감은 그들을 모두 과묵하게 만들었다. 새벽의 주방은 조용했다. 반죽기 돌아가는 소리, 가끔 반죽을 치는 소리만 정적을 깼다. 아침 식사 전에 매장에 신선한 빵을 내놓아야 한다.
출근 1등은 항상 반죽장 몫이다. 빵 만들기는 반죽에서 시작된다. 미리 반죽을 만들어 놔야 다른 팀원들이 곧장 발효, 굽기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반죽장은 새벽 4시에 출근해야 한다. 기자가 주방에 들어간 6시10분에도 반죽장은 쉴 새 없이 밀가루와 버터를 계량기에 달아 그릇에 넣고 거기에 달걀을 깨 반죽기에 넣었다. 크고 작은 반죽기 네 개에는 나선 모양의 금속선이 달려 있다. 금속선이 돌아가면 철썩철썩 소리가 나며 반죽이 만들어졌다. 가장 큰 반죽기 용량이 25㎏. 한국에는 70년대 말부터 반죽기가 들어왔다. 그전에는 제빵사들이 직접 반죽을 쳤다고 한다. 상상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중노동일 것 같다.
완성된 반죽은 곧장 발효기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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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잠든 사이 빵 굽기가 시작된다. 반죽기가 없던 시절엔 제빵사가 직접 반죽을 쳤다. 완성된 반죽은 곧장 발효기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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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쓴 남자 직원이 오븐 앞에서 완성된 반죽 위에 아몬드 등의 토핑을 올리고 기름을 발랐다. 굽기 전 마지막 작업이다. 오븐 반대쪽 별실이 케이크룸이었다. 케이크룸 문 쪽에 ‘시트’(케이크의 빵 부분)가 쌓여 있다.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려면 전날 시트를 준비해놔야 한다. 이 시트를 돌림판에 올려놓고 스페추라(생크림을 바를 때 쓰는 짧은 칼 모양의 도구)로 생크림을 바르고 있다. 주방 한가운데엔 ‘당번 할 일’이 붙어 있었다. 버터크림 가득 채워 넣기, 퇴근 직전 코마(발효기) 물 빼기, 프리미엄 반죽 발효실에 넣기 …. 그들의 노동은 날마다 6시까지 계속된다. 연말연시엔 밤 10시까지 일해야 한다. “힘들죠. 그래서 요새 젊은 애들이 안 하려고 해요. 사실 윈도 베이커리 인력난이 심해요.” 박 공장장의 설명이다. 초임이 비교적 높고 복지 시스템을 갖춘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젊은 인력들이 몰린다고 그는 설명했다. 프랜차이즈 빵집은 모든 공정이 매뉴얼화되어 있어 젊은이들이 쉽게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딜레마인 셈이다. 박 공장장은 “결국 비전이 있느냐를 먼저 생각해야죠”라고 힘줘 말했다. 수습기자 시절 넉 달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경찰서를 돌며 사건사고를 취재했다. 얼굴을 때리던 겨울 새벽 바람은 매웠다. 제빵사들의 고됨을 그때 알았다면 쏠쏠하게 위안이 됐을 것 같다. 제빵사들은 누구보다 일찍 세상을 ‘굽고’ 있었다. 두 시간 만에 제빵위생복을 벗어던지고 나오면서 심하게 죄책감을 느낀 이유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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