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10.24 18:22 수정 : 2007.10.27 13:06

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의 이승희 대표. 사진에 나온 카페 호기심은 갤러리 못지 않게 개성있는 공간이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부암동의 새로운 표지판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이승희 대표

부암동 길가의 네 평 남짓한 공간. 간판도 사람도 없고, 투명한 유리벽만 그 작은 방의 속내를 보여주면서 행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곳은 부암동의 새로운 표지판으로 떠오르는 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이하 호기심)이다. 오래된 동네 가게들 사이에 ‘난데없는’ 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한 이는 디자인 컨설턴트인 이승희 대표(37)로, 3년 전 우연한 기회에 부암동과 인연을 맺게 됐다.

“한국의 갤러리들은 문턱이 너무 높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공간 활용도 사치스럽고요. 그러던 차에 부암동에 놀러 왔는데 오래 비어 있던 가게 터 두 곳을 만난 거예요. 그걸 보면서 갤러리가 떠오른 거죠. 만약 여길 못 만났으면 딱히 갤러리를 만들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그래서 한 곳은 갤러리로, 이발소를 사이에 둔 또 하나의 작은 공간은 관객과 작가들이 쉬어 가는 카페로 만들었다. 1956년에 지은 건물의 뼈대는 그대로 두고 내외장만 꾸몄다. 그런데도 풍경부터 완고하기 이를 데 없는 동네에 다른 질감의 무언가가 생겨나자 텃세가 만만찮았다. “매일 종로구청 공무원이나 경찰이 찾아왔어요. 계속 민원이 들어왔던 거죠. 그냥 동네 어른들께 ‘막내조카’처럼 살가워지려고 노력했어요. 시간이 좀 지나니까 이제는 왜 장사도 안 될 곳에 가게를 차렸냐, 겨울에는 추울 텐데 견딜만 하냐며 걱정해주시죠.”

‘호기심…’은 특이하게도 갤러리를 지키는 사람이 없는 무인 갤러리다. 또 밤 12시까지 문을 연다. 이게 다 전면을 유리로 만들어 속을 ‘홀딱’ 내보이는 것과 같은 이유다. “특별한 관객을 위한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다가 또는 퇴근길에 들러 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좁은 공간에 관리자가 있으면 아무래도 들어오기 부담스러우니까 비워놓습니다.” 이렇게 문턱을 낮추니 전시가 바뀔 때마다 정기적으로 갤러리를 찾는 주민들도 점차 늘어나고, 옆집 카페도 중학생에서 60대까지 허물없이 문을 연다. 이렇게 ‘튀는’ 갤러리 운영은 이 대표 말마따나 지역사회에 “묻어가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그래도 호기심은 여전히 경찰의 발걸음이 분주한 곳이다. 북한을 소재로 찍는 사진가 노순택과 탈북 화가 선무의 2인전이 열리는 요즘도 경찰이 출근하다시피 한다. “며칠 전에는 갤러리 앞에서 지나가던 주민들과 전시기획자, 작가들과 경찰이 낀 노상 토론이 벌어졌어요. 전쟁을 겪은 세대인 주민 한 분이 어떻게 김정일 얼굴을 걸어놓을 수 있느냐 격분하니까 다른 주민이 대통령도 북한 가고 하루 종일 김정일이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뭐가 문제냐, 미술 작품을 가지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3년 정도 지나니까 낯섦이나 호기심을 지나서 주민들이 동참을 하게 된 거죠.”

이 대표는 부암동을 “직업이나 학력을 막론하고 자기 색깔이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평범한 모습으로 사는 곳”이라고 말한다. 부암동 길가 풍경을 바꾼 첫 주자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상점들이 생기고 외지인의 문의가 늘어나면서 건축주의 마음이 들썩이면 오랫동안 이곳에서 터를 잡고 일해 온 주민들이 위축되고 또 동네의 풍경까지 사라질까 싶어서 불안해질 때가 있다”며 “이른바 ‘뺀질뺀질한’ 가게들만 안 들어왔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 김은형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