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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24 18:05 수정 : 2007.10.27 13:05

5년 전 부암동에 들어와 살면서 하우스콘서트를 열기 시작한 음악가 성필관 관장의 ‘아트 포 라이프.’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작업실과 갤러리와 하우스콘서트가 하나 둘씩 늘어나는 곳, 왜 하필 부암동인가

지난 20일 저녁 부암동 능금나무길에 서 있는 한옥집 ‘아트 포 라이프’에는 하우스콘서트가 열렸다. 20대부터 50대까지 30여명의 사람이 모인 작은 홀에서 성필관 관장이 시를 낭독하고 날씨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눈 뒤 성악가 도혜원의 독창회가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연주가 끝나고 식사를 마치면 식당에서 뒷풀이 공연이 펼쳐진다. 연주 사이사이 끼어드는 이야기는 부암동의 골목길처럼 구불구불 이어진다.

조선 후기 풍미했던 중인문학의 계승

성 관장은 20여 년의 화려한 오보에 연주자 생활과 강남의 아파트 생활을 접고 2003년 부암동에 둥지를 틀었다. 음악가의 삶에 회의를 느껴 모든 이력을 접고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려다 큰 사고가 나는 바람에 포기한 뒤 서울에서 ‘항공지도가 없는 곳’을 찾아 부암동으로 들어왔다. 그럴싸한 한옥을 지은 게 아니라 새벽이면 직접 땔감 장작을 패고 우물을 길어 밥을 하는 아날로그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 삶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하우스콘서트는 2004년부터 매주 토요일 해온 행사로, 실력 있는 음악인들과 열의 있는 감상자들에게 좁은 문을 열었다. 매주 30∼40명의 다양한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늘 적자지만 하우스콘서트와 ‘아트 포 라이프’가 펼치는 다양한 예술행사들은 그의 집 앞 작은 비석에 새겨진 문구처럼 ‘삶을 축제로’ 만들기 위한 분투다.

지난해 작업실을 홍대 앞에서 부암동으로 옮긴 의상갤러리 ‘미호’의 윤미선 대표.
부암동에는 성 관장처럼 화려한 활동무대와 차단된 삶의 공간이라는 예술가들의 일반적 생태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홍대 앞에서 운영하던 의상 갤러리 ‘미호’의 작업실을 지난해 말 부암동으로 옮긴 윤미선 대표도 그중 하나다. 미호가 입소문을 타고 옷 잘 입는 사람들의 명소가 됐을 때 윤 대표는 “돈 맛을 알기 전에 내 스타일을 찾기 위해” 주저없이 이곳으로 옮겼다. 홍대 앞에서 찾는 사람이 늘어나며 소규모로 돌리던 공장도 없애고 모든 옷은 마무리 바느질까지 직접 한다. 작은 마당이 있는 60년대 국민주택을 얻어 창문 종이까지 고스란히 유지한 미호의 쇼윈도우는 유리문을 세운 툇마루고 한때의 안방은 패브릭과 실패로 파묻힌 작업실이다. 고객은 이곳에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30∼50대 여성들이다.

이렇게 부암동에는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여는 작업실과 하우스콘서트와 하우스갤러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 쌈지길의 ‘황진사진관’을 운영하는 조각가 겸 사진가인 황진씨도 지금 사는 부암동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을 추진 중이다. 10년 동안 해태상을 모아온 황씨는 현재 마당에 놓여 있는 200여 점의 동상과 함께 집 전체를 400여 점의 해태상으로 채워 놓는 해태박물관으로 몇년 뒤 공개할 예정이다.

건축가 황두진씨는 예술가들이 자기의 공간을 열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부암동 예술가들의 조용한 움직임을 이 지역의 긍정적인 힘이라고 설명한다. “한 지역의 특성이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건 공간 자본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인데 집을 가진 예술인들이 자신의 공간을 자발적인 문화 생산의 장으로 만듦으로서 주거와 문화가 공존하는 바람직한 지역성을 획득할 수 있다.” 황씨는 이러한 지역성이 조선 후기 부암동 일대를 풍미했던 중인문학을 계승하는 것이라 더 의미 있다고 지적한다. 조선 후기에 자본을 축적한 중인들은 경치 좋은 인왕산 기슭에 별장이나 집을 짓고 이 곳에서 시회를 열면서 비제도권적 문학의 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지금 부암동에 모인 예술가들 역시 중심 무대보다 자신의 공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점에서 “건강한 비주류”라고 황씨는 말한다.


땅값 상승으로 아슬아슬한 고비

하지만 부암동은 지금 아슬아슬한 고비에 놓여 있기도 하다. 수년간 요지부동이었던 땅값이 2004년 그린벨트 해제와 서울시의 ‘한국의 베벌리힐즈’ 개발 계획 발표와 함께 두배 가까이 뛰면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숨어 있기 좋은 곳’으로 찾아오는 틈새 동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또 고급주택이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하면 30년, 40년 동안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온 상가들의 낡은 간판도 값비싼 조명등으로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업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당한 상업화는 동네의 폐쇄성을 없애고 좋은 자원들을 외지인들이 공유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건강한 기능을 한다는 게 부암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암동이 이미 거대자본이 침투해버린 삼청동을 따라가게 된다면, 놀러가고 싶은 서울의 마지막 동네를 모두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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