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10.24 17:24 수정 : 2007.10.27 13:05

부암동 풍경 중의 하나, 30년 된 이발소 옆 갤러리가, 철물점 옆 카페가 서로 자기 색깔을 내면서도 어울린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겨울 같은 가을바람이 불던 토요일, 녹색 지선버스를 타고 부암동에 놀러갔다. 부암동사무소 앞에서 버스가 서면 동사무소 앞 정자에 앉아 채소나 콩을 만지는 노인들과 모자를 눌러쓴 등산객들이 먼저 손님을 맞이했다. 오른쪽으로는 오래되고 낮은 주택들이 인왕산 비탈을 따라 이어지고 왼쪽에는 역시 오래되고 낮은 상가들이 창의문 쪽을 향해 나 있는, 서울 한복판의 서울 같지 않은 동네, 서울 종로구 부암동이다.

부암동이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라는 건, 썩 들어맞는 표현은 아니다.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그래서 잎이 울창한 나무가 많으며 걸어서 30분 거리에 광화문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공기가 맑고 조용하다는 점에서 이곳은 요즘 서울 같지 않다. 청와대 옆동네라 군사보호구역,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아파트는커녕 신축 주택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세우고 부수고를 반복하는 요즘 서울과도 다르다.

늦가을엔 부암동을 가보라
하지만 부암동은 요즘의 서울이 아닐 뿐, 시골은 더욱 아니다. 6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보급된 국민주택이 남아 있고, 70년대에 공들여 지은 첨단 주택을 아직까지 관리·유지하며 심지어 조선시대 한양의 유적까지 남았으니 오래된 서울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집집마다 굳게 잠긴 대문이 낯선 이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골목 역시 푸근한 시골 인심이라는 말보다 서울 깍쟁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려 보인다. 그래서 낡고 푸근한 시골 정취를 기대하고 부암동에 놀러오는 사람은 진가를 알아채기 전에 이미 실망해서 이 동네를 떠날지도 모른다.

동사무소 옆 무계정사 길로 부암동 주택가 골목을 산책하다 보면 보일 듯 말 듯 티나지 않게 자기를 드러내는 오래된 동네, 오래된 사람들의 개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파트의 도시, 서울에서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서 있는 집과 대문 구경은 말할 것도 없고 유심히 보면 문패조차 나무에 주인 이름을 한자로 써놓은 평범한 것들은 드물다. 문패에 온 가족의 이름을 다 새겼거나 기억될 만한 짧은 문장을 써놓았거나, ‘종호네 집’이라고 흰 아크릴판에 검은 글씨로 작게 새겼거나, 타일로 ‘lee’라는 성을 그렸거나, 번지수를 분홍색 플라스틱 선으로 만들어 놓았다. 크기와 규모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은 못 보고 지나치라는 부암동 사람들의 전언처럼 보인다.

부암동 거리와 골목을 산책해 보길 권한다. 또 다른 서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짧은 도로변은 주택가와 다르면서 비슷한 부암동의 풍경을 보여준다. 30년 된 이발소, 20년 된 부동산, 그 못지않게 오래된 철물점과 세탁소, 미장원 사이로 변하는 부암동의 풍경이 끼어들었다. 현대적인 갤러리와 공예품점과 카페와 소품가게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발소 옆 갤러리가, 철물점 옆 카페가 서로 자기 색깔을 내면서도 어울린다. 철물점이 청계천 변의 그것처럼 간판을 현대식으로 바꾸거나 카페가 고풍스러운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것들이 빚어내는 무심한 조화야말로 서울의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희귀한 풍경을 제공한다.

부암동 사람들의 동네 부암동이 서울 성곽 개방이나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을 통해서 바깥 사람들에게 부쩍 알려졌다. 부암동에 오면 산에 오르는 것도 좋고 ‘최한성의 집’을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부암동 거리와 골목을 산책해 보길 권한다. 또 다른 서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글·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박미향 기자 mh@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