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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1 17:50 수정 : 2007.06.21 18:33

비행기를 지나치는 건 한 순간이다. 에어로포토스 회원들은 5분 동안 비행기를 기다려 5초 안에 찍는다.장석정(왼쪽에서 두 번째) 대표는 “대부분 비행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며 “편하게 항공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항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공항 근처 야산에 올라 비행기를 기다리는
항공사진 동호회 사람들

“루돌프 떴다, 루돌프!”

영종도 갯벌 위로 빨간 점이 떴다. 중국 동방항공. 항공기 정면이 루돌프 사슴 코처럼 빨개서 루돌프다. 찰칵, 찰칵, 찰칵. 사람들의 카메라가 비행기를 따라 반원을 그렸다. 머리 위를 지나친 루돌프는 인천공항에 미끄러졌다. 상하이 푸둥 공항에서 출발한 MU5033편.

에미레이트항공 에어버스340. 장거리 전용으로 날개 아래 엔진이 네 개다. 긴 모양이 재밌어서 ‘소시지’라고 불린다.
아에로플로트항공 일류신(IL)-96-300. 구소련 일류신 시리즈를 혁신한 기체다. 멀리서 보면 에어버스340과 비슷하다.

에어버스330은 항공기계의 전지현?


잠시 뒤 유정현(52)씨의 에어밴드에서 관제탑과 기장 사이의 교신음이 들린다. “아시아나항공336편, 착륙 허가합니다. 활주로 33R로 착륙하세요(Asiana airline 336. Clear to land, runway 33R).”

사람들이 다시 카메라를 든다. 노란 기체가 다시 영종도 갯벌 위로 나타났다. 찰칵, 찰칵, 찰칵. 박진홍(16)군이 인천공항 홈페이지에서 출력해온 착륙 시간표를 읽는다. “지금 들어온 비행기는 상하이에서 출발한 거예요.”

항공사진 동호회 에어로포토(cafe.naver.com/aviationphoto)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찍는다. 이카로스의 꿈, 비행기의 U자형 곡선, 잡다한 항공기 지식. 일반인들에게 유별난 관심으로 보이지만, 이들에겐 소중한 취미다. 김장호(38)씨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찍으면서 자유를 느낀다”고 말했다.

비행기 사진을 찍다보니 공항과 항공을 알게 됐다. 보잉747의 엔진은 날개 밑에 네 개가 붙어 있다. 보잉 계열의 비행기는 조종석 맨 끝 창문이 육각형이지만, 에어버스 계열은 사각형이다. 유씨가 말했다. “중국에서 오는 비행기는 직진해서 들어오지 않아요. 서쪽에서 오다가 시화방조제 상공에서 북쪽으로 급선회하죠. 송도 국제새도시 상공에서 랜딩기어를 내립니다.”

에어로포토는 지난해 6월 결성됐다. 일 년 만에 517명이 찾아들었다. 회원들은 매달 한두 차례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 둘레에서 정기촬영 행사를 연다. ‘공식’ 전망대가 없기 때문에 공항 담벼락 아래나 근처 야산 등 비행기가 잘 보이는 지점에서 촬영을 한다. 촬영이 끝나면 홈페이지에 항공사진이 속속 올라온다. 사진을 올리고 나누는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볼 때마다 참 잘 빠졌다고 생각되는 에어버스330입니다. 항공기계의 전지현이라고 해주고 싶어요.”(장석정)

상하이 푸둥에서 출발한 MU5033편. 빨간 도색 때문에 중국동방항공의 별명은 ‘루돌프’다.
루프트한자항공 에어버스340-600.

간첩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장석정(32) 에어로포토 대표는 “공항 둘레에서 사진을 찍으면 간첩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며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모여 찍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회원은 2001년 김포공항 근처 민가 옥상에서 사진을 찍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끌려가 하루 내내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동호회에서 동지를 만난 그는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걸 알고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이들이 기다리는 건 구형 기체인 보잉747-200, 맥도널 더글러스의 DC-10, 구소련 최고의 민항기인 일류신(IL)-62M 등 보기 힘든 비행기들이다. 지난해 시운전 중인 에어버스380이 인천공항에 들어올 때, 동호회는 한참 시끌벅적했다.

“오늘은 레어(rare) 아이템이 없네요. 맨 파랑이(대한항공)와 노랑이(아시아나항공)뿐이네.”

해가 저물자 여기저기서 지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갑자기 ‘쿠르릉’ 하며 대한항공 보잉747 화물기가 낮게 깔려 들어왔다. 사람들이 다시 허겁지겁 카메라를 잡았다.

인천공항=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대한항공 에어버스300-600R. 대한항공은 이 기종을 점차 화물기로 변경 중이다. 에어버스 최초 생산 기종으로 7월부터 생산이 중단될 예정이다.
에어버스380. 현존하는 최대의 기체로, 시범 운항 중이다.

공항이 열려야 사진을 찍죠

탑승권 없으면 서러움당하는 한국,
일본에선 무료 전망대도 운영

공항이 열려 있을수록 항공사진의 품질은 높아진다. 항공사진 동호회가 발달한 일본의 공항들은 일반인들에게 열린 구조다.

오사카 간사이공항(국제선)은 ‘스카이뷰’라는 무료 전망대를 운영한다. 활주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착륙 시간표까지 걸어놨다. 오사카 이타미공항(국내선)은 일본 최고의 촬영 포인트. 유정현씨는 “32L 활주로 앞의 촬영 지점은 제트 엔진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라며 “화각이 넓은 광각렌즈를 써도 비행기가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고 말했다. 2005년 개항한 나고야 주부공항은 아예 공항 경관을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탑승권이 없는 관광객도 탑승 게이트 근처까지 들어갈 수 있다. 여객터미널 4층은 전망대로 열어뒀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일본에서는 항공사진 열기가 높다. <전국공항 전망가이드>라는 책이 정기적으로 나올 정도다. 자위대 공항을 포함한 모든 공항의 지도와 추천 촬영지점이 소개돼 있다.

이에 비해 한국 공항은 탑승권이 없는 사람을 차별한다. 공항 경관은 탑승권을 쥔 여행자들에게 독점돼 있다. 비행기를 자유로이 볼 수 있는 곳은 면세구역뿐이다. 상당수 지방공항도 군용으로 쓰이고 있어 통제가 심하다. 유정현씨는 “인천공항 같은 민간공항에서도 가끔 촬영을 제지받는다”며 “관리자 편의에 따라 일방적으로 제한만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공항 촬영은 보안상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국가보안목표물관리지침’에 따라 제한된다. 하지만 비행기나 여객터미널 외관을 찍거나 작은 디지털 카메라로 기념 사진을 남기는 정도는 괜찮다.

남종영 기자


에비에스트항공의 AN-12. 프로펠러기로 1957년 이후 900여기가 넘게 제작돼 군용과 화물용으로 두루 사용됐다.
김포공항 32R 활주로 끝에서 찍은 항공기 궤적 사진.

항공사진을 찍으려면

4~5초에 승부, 표준렌즈도 가능

■ 장비=항공사진에 취미를 들인 뒤, 가장 조심해야 할 게 장비병. 특히 피사체가 먼 하늘을 나는 비행기이기 때문에 대부분 망원렌즈에 욕심을 낸다. 장석정 대표는 “300㎜ 이상 망원렌즈를 갖고 있으면 좋지만, 촬영 지점에 따라 표준렌즈나 광각렌즈로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이날 김정우(16)군과 전성율(16)군은 망원경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대고 비행기를 찍었다. 배경화면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고 훌륭한 사진이 나왔다. 관제사와 기장의 교신 내용을 듣고 싶으면 에어밴드를 산다. 송신은 되지 않고 수신만 된다. 실시간으로 이·착륙 정보를 알 수 있다.

■ 촬영법=비행기는 멀리 점으로 오다가 번개처럼 지나친다. 승부는 4~5초 안에 난다. 재빨리 구도를 잡고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트기는 고속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셔터 속도를 빠르게 설정한다. 프로펠러 기체는 고속 셔터 속도를 쓰면 프로펠러가 멈춘 것처럼 보이므로 낮은 셔터 속도를 이용한다. 더운 날 공항에 세워놓은 비행기는 촬영을 피한다.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비행기의 도색 선이 깨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밤에 착륙하는 비행기의 궤적을 찍는 게 유행이다. 조리개를 길게 열어놓으면, 비행기의 착륙 궤적이 석 줄로 나타난다.

■ 촬영 장소=수도권 동호인들은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으로 모인다. 김포공항은 오쇠삼거리 주변이 포인트. 허름한 주택가 위로 떨어지는 비행기를 찍을 수 있다. 인천공항은 공항 들머리 지에스(GS)주유소, 스카이72 골프클럽 하늘코스 근처에서 자주 찍는다. 지방 공항에서도 항공사진을 즐길 수 있다. 에어로포토 홈페이지 참조.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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