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6.21 18:11 수정 : 2007.06.22 11:13

“공항에서 잠을 자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공항으로 놀러가자

인천 공항엘 갔다. 이착륙 시간표를 바라보며 상상한다. ‘LED’는 북국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이고, ‘IST’는 술탄의 나라 이스탄불이며, ‘HKT’는 에메랄드빛 산호바다가 펼쳐지는 타이 푸껫이다.

비행기 탈 일도 없는데, 자꾸 공항엘 간다. 각진 제복을 입은 기장과 승무원이 자랑스럽게 걸어나가고 탑승권을 쥔 승객들은 흘끗거리며 줄을 서 있다. 그 틈에 끼어 비행기 구경을 하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신다.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비행기들도 공항에서 쉰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민첩한 기계. 보들레르가 노르망디 항구에 정박한 대형 선박을 가리켜 “거대하고 광대하고 복잡하지만 민첩한 생물, 활기가 넘쳐나는 동물, 인류의 모든 한숨과 야망에 괴로워하며 숨을 몰아쉬는 동물”이라고 했다는데, 비행기도 그러하다. 공항은 그런 비행기들이 품고 온 곳곳의 냄새들로 가득하다. 뉴욕에서 날아온 비행기에는 ‘빵빵’대는 노란 택시의 소음과 프레리(북아메리카 대평원)의 옥수수 냄새와 베링해에서 비행기를 빤히 쳐다보던 바다사자의 표정이 묻어 있다.

그래서일까? 세계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을 펴내는 배낭여행가 토니 휠러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정직하게 말하자면, 공항의 탑승 라운지입니다.”(토니 휠러, <나쁜 나라들>)


공항은 경계에 있다. 우리가 사는 ‘여기’를 떠날 때 지나쳐야 하고, ‘여기’에 돌아올 때 부딪혀야 한다. 현실의 출구이자 꿈의 입구이고, 꿈의 출구이자 현실의 입구다. 세상의 문턱에서 빠져나와 여행을 기다리는 곳이 공항이다. 아무 곳에도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공항에 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공항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다.

따분한 여행의 이색 활력소 …
220곳에서의 5147가지 취침 방법을 아십니까

배낭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공항에서 자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환승시간이 긴 값싼 항공권을 샀거나, 추가 요금을 줄이고자 환승호텔을 마다며 공항에서 밤을 새는 경우, 그리고 밤늦게 도착해 아예 공항에서 자고 나가는 경우까지.

사실 공항은 웬만한 숙소보다 편하고 청결하다. 무엇보다 공항은 공짜다. 공항을 ‘호텔’로 여기는 ‘컬트 여행자’들은 ‘공항에서 잠자기’라는 새로운 여행기법을 창출했다. 캐나다인 배낭 여행자 도나 맥셰리(32)는 인터넷 사이트(sleepinginairports.com)까지 열어 공항 수면을 전파하고 있다. 그는 공항에서 잠자기를 “즐거운 모험”이라고 말한다. 따분하고 정형화된 여행에 이색적인 활력소가 된다는 것.

‘황금베개상’ 받은 인천공항

‘공항에서 잠자기’에는 세계 공항 220곳의 5147가지의 잠자기 방법이 소개돼 있다. 1996년부터 지난 6월3일까지 세계 누리꾼들이 올린 조언이다. 라운지 바닥에서 잠자는 노숙법부터 환승호텔과 사우나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다양하다.

잠자는 곳이 해결되면, 공항은 즐거운 놀이터다. 먹거리와 쇼핑할 것이 가득하고,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면 인터넷도 가능하다. 비행기가 오르내리는 활주로를 보고 사색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책을 읽어도 좋다. 환승 구역에 독서대가 마련돼 있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 야외 수영장이 딸린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 공항에 따라 배낭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공간이 있다.

공항수면 서바이벌 키트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인천공항은 어떨까? 거대한 규모의 인천공항은 출발층(3층)의 의자가 보통 남아돌기에 ‘공항 잠꾼’들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는다. 팔걸이 없는 의자는 눕기도 편하다. 2006년 ‘공항에서 잠자기’에서 자기 편한 공항에 주는 ‘황금베개상’을 받았을 정도.

“울란바트로행 대한항공 편으로 갈아타려고 13시간을 인천공항에서 머물렀어요. 출발층 위층(4층)에 가면 눕기 편한 파란색 소파들이 있었어요. 아는 사람들은 아는 곳이더군요. 사람들로 꽉 찼어요.”(아이디 Odysseusny)

한국에서 출발하는 유럽 여행자들은 대만의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이나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서 긴 밤을 보내고 이튿날 유럽행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 대만 국적의 에바항공을 타고 수요일 저녁 7시15분에 인천을 출발하면, 타이베이에는 저녁 8시45분에 도착한다. 이튿날 아침 9시 런던행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시내로 나가기에는 어정쩡한 시간. 이럴 때는 공항을 즐기면 된다. 공항에서 밤을 보내고 런던에 도착하면 저녁 7시15분. 12시간15분 대기, 총 32시간이 걸리는 여정이다. 하지만 이 항공권의 가격은 67만9천원(세금 제외). 100만원 안팎에서 형성되는 유럽 항공권보다 30만원 넘게 덜 든다. 안준호 하나투어 항공판매기획팀 과장은 “학생을 중심으로 이런 항공권 수요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싼 항공권 끊으면 잘 시간이 많다

‘공항에서 잠자기’의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공항은 돈이 없어도 편안한 공항이다. 상업시설로 가득 찬 유럽과 미국의 공항보다 공용 라운지가 넓고 의자가 많은 인천·창이 등 아시아의 허브 공항들이 황금베개상을 잇달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