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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3 17:31 수정 : 2007.06.13 19:13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이보다 더 재밌는 휴가는 없었다’ 우수작

지난해 여름 터키로 신혼여행을 갔다. 이스탄불에서 가방 속 현금뭉치를 도둑맞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절대 싸우지 말자는 약속을 아슬아슬하게 어기지 않은 우리 부부는 마지막 일정으로 배를 타고 그리스섬에 가고자 서부 항구도시 쿠사다스로 향했다.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 버스로 다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는 쿠사다스항에 도착하기 전에 귀참젤리라는 작은 동네에서 하루밤을 묵기로 했다. 그런데 미리 예약한 호텔이 너무 멀었다. 그냥 근처에서 다시 숙소를 잡자는 남편의 제안을 거절하고 터키에서만 볼 수 있는 하얀 미니버스 돌무슈를 탔다. 기사 아저씨는 30분 정도가면 된다고 했지만 온 동네를 지그재그 돌다가 해가 진 뒤에 내려서도 한참을 물어물어 외진 구석에 있는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외진 데로 멀리 내려온 만큼 인심도 따뜻한 것이었을까. 저녁식사 시간이 끝난 지 한참 뒤였지만 호텔 지배인은 우리가 안쓰러운지 먹을 걸 챙겨주도록 주방에 말을 했다. 우리가 저녁을 먹는 동안 에게해를 바라보는 호텔 안마당에서 여행 온 터키 가족들을 만났다. 터키의 여러 지역에서 모인 서로 다른 가족들 가운데 한두 명이 어깨춤을 추면서 흥을 돋우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춤을 추고 놀았다. 우리 부부가 에게해를 보려고 마당을 지나가는데 이들이 함께 춤추자고 했다. 한국의 전통 춤과도 비슷한 덩실덩실 어깨춤쯤이야 못출 것도 없어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진짜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춤을 추고 놀았다. 흥겨운 춤판이 끝나자 그 가운데 젊은 친구인 설칸이 내일 떠난다며 “2주 전에 가족들과 이곳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그때 만나서 함께 놀아야 했다”고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다음날 설칸의 가족들은 이미 식구들과 짐으로 가득찬 자동차에 굳이 우리를 태워서 항구까지 데려다 줬다. 나를 보고 내내 웃던 설칸의 여동생은 헤어질 때 끼고 있던 귀걸이를 빼서 내게 줬다. 눈물이 날 뻔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올 여름 귀를 뚫었다.

허지훈 / 강남구 삼성1동 106번지 풍림1차 아파트

터키 여행에서 가족처럼 어울리고 우리 부부를 보살펴줬던 설칸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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