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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30 18:58 수정 : 2007.05.31 18:51

피가 아니라 향기가 튄다, 칼의 노래!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툭탁 꿀꺽 툭탁툭탁 꿀꺼~억, 세상 최고의 음악
움푹한 흉터-불툭한 굳은살, ‘손 산맥’이 생겼다

어린시절 잠을 깨우던 소리가 있었다. 기차소리, 음악소리처럼 먼곳에서 아렴풋하게 들리던 소리. 잠을 깨면 어머니는 도마 앞에서 칼질을 하고 계셨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군침이 넘어갔다. 툭탁, 꿀꺽, 툭탁툭탁, 꿀꺼억, 그렇게 율동적인 소리를 한동안 듣지 못했다. 칼소리에서 향기가 났다. 나무도마와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그 소리가 만들어내는 리듬이 곧 요리였다. 식당에서 가끔 칼질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칼소리를 듣고 있으면 주방으로 뛰어들고 싶어졌다.

무사가 휘두르면 험악해지지만 요리사가 쥐면…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는가’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군인이 칼을 쥐면 세상이 험악해지지만 요리사가 칼을 쥐면 세상이 향기로워진다. 무사의 칼이 불을 뿜으면 여럿 죽지만 요리사 칼이 쉴새 없이 움직이면 맛있는 요리 한 접시가 탄생한다. 그래서인지 요리사의 칼소리는 세상 그 어느 음악보다 리드미컬하다.

누구나 그것에 대해서는 한마디씩 하는 세상


세상이 변해 이제 음식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나라 음식이든 맛볼 수 있다. 인터넷에는 요리 이야기로 넘쳐난다. 요리 사진도 넘쳐나고 누구든 요리를 두고 ‘한마디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도 칼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달랑 한 자루…주로 손을 썼다, 그러나

M1
칼은 요리의 시작이고 끝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오랫동안 칼을 무시해 왔다. 대장간은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농기구를 만들었다. 식칼은 덤이었다. 서양에서 종류별로 다양한 칼을 만들고 있을 때 우리는 식칼 한 자루로 꿋꿋하게 버텨 왔다. 칼 한 자루로 채소도 썰고, 고기도 썰고, 생선도 자르면서 꿋꿋하게 버텨 왔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었으므로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한식은 칼을 주로 쓰는 음식이 아니었다. 우리는 주로 손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세계의 다양한 음식이 우리의 음식과 어울리고 뒤섞이고 있다. 이제는 칼을 꼼꼼하게 살펴볼 때가 됐다. 칼을 살펴 본다는 것은 곧 우리의 음식문화를 되돌아 본다는 의미다.

20년 내공의 도사들 ‘영광의 상처’

요리사 네 분을 만났다. 한식·일식·중식·양식의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이다. 10년, 20년 넘게 칼자루를 쥐었던 그들에게 물었다. 자신의 칼 한 자루씩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칼은 그들에게 분신이자 연장된 손이자 흉기이자 친구였다. 요리사들의 손에는 무수한 흉터가 있다. 모두 칼과 벗하면서 생긴 흉터들이다. 어쩔 수 없이 찍히고, 방심해서 찔리고, 순간적으로 잘린 흉터들이다. 흉터 옆에는 칼을 오래 쥐어 생긴 굳은살이 있다. 움푹 파인 흉터와 솟아 오른 굳은살은, 요리사의 손에 새겨진 산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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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종류

글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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