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2 20:52
수정 : 2019.10.0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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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어깨와 허리를 강조한 실루엣으로 트렌디한 슈트 스타일을 완성한 아크네. 사진 아크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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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여성 슈트 역사 출발은 대략 1960년대
올가을 트렌드는 과장된 실루엣 슈트
당당한 여성성 강조한 디자인
밝은 컬러나 회색 등이 우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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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어깨와 허리를 강조한 실루엣으로 트렌디한 슈트 스타일을 완성한 아크네. 사진 아크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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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가을·겨울 패션 트렌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스타일을 고르라면? 고민할 필요 없이 ‘슈트 룩’이다. 지난 몇 년간 런웨이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던 팬츠 슈트가 이번 시즌 트렌드의 정점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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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해방의 역사와 슈트
여성 복식의 역사에서 슈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때는 1960년대다. 1966년 프랑스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은 당시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턱시도를 변형시킨 ‘르 스모킹’(Le Smoking)을 선보였다. 르 스모킹은 프랑스어로 턱시도란 뜻이다. 당시 여성들은 바지를 입고 공공장소에 나타나는 게 금기시 됐었다. 한편 여성의 인권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해방운동이 한참인 시기이기도 했다.
1966년께 발표한 이브 생로랑의 르 스모킹은 당시 파격을 뛰어넘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다음 해인 1967년, 이브 생로랑은 여성의 몸에 맞게 재단된 ‘핀 스트라이프’(점선무늬) 패턴의 재킷과 바지로 구성된 본격적인 팬츠 슈트를 선보였다. 그 후 여성 슈트는 1980년대 다시 한 번 유행한다. 당시 유행한 여성 슈트는 사회적 흐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본격화된 시기가 1980년대이기 때문이다. 어깨가 강조된 디자인의 오버 사이즈 슈트가 유행했는데, 이런 디자인 역시 여성의 인권과 관련한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90년대의 슈트는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이라는 패션 트렌드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질 샌더와 조르지오 아르마니, 헬무트 랭, 살바토레 페라가모 등은 매 시즌 절제된 디자인의 심플하고 모던한 슈트를 선보이며 더는 슈트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전 세계에 알렸다.
여성 슈트 스타일이 대중화하기 전, 슈트를 즐겨 입었던 배우도 있다. 1966년의 이브 생로랑에게 영감을 준 독일 출신 할리우드 배우 겸 가수 마를렌 디트리히가 그 대표적 예다. 그는 1930년대 이미 슈트를 즐겨 입었다. 디트리히가 즐겨 입었던 스타일은 ‘디트리히 슈트’라고 불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그의 스타일은 지나치게 파격적이어서 파리경찰서장이 파리를 떠날 것을 권유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그 외에도 미국의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 등을 수차례 타 ‘오스카의 여왕’이라 불리던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 캐서린 헵번 역시 남성적인 디자인의 팬츠 슈트를 즐겨 입었다. 지적이면서도 강인한 이미지의 그는 “미국 여성에게 처음으로 바지를 입힌 배우”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렇듯 팬츠와 슈트가 여성 복식에 등장하고 안착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존재감만은 패션계의 어떤 아이템보다 강력하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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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크림색 슈트에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발렌티노. 사진 발렌티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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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실루엣···여성 슈트의 자신감
이번 시즌 여성 슈트의 핵심은 ‘여성적 표현’이다. 남성복에서 시작된 슈트를 여성의 몸에 맞게 변화시켜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표현한 것이다. 남성 슈트는 대개 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어깨와 소매, 옷깃의 끝은 날카롭게 재단되어 있다. 잘 만들어진 슈트를 입으면 체형의 단점을 어렵지 않게 숨길 수 있다.
이번 시즌 여성용 슈트는 남성 슈트의 이미지는 차용했지만, 유려한 여성의 보디라인을 강조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가슴과 허리, 엉덩이의 에스(S) 라인 등 여성의 몸에서 볼 수 있는 곡선의 미를 살린 것이다. 여성의 몸을 대상화한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주체로서 자신감을 당당하게 표현했다. 동시에 여유롭고 느슨한 실루엣을 유지했다.
런웨이에 오르는 슈트 룩의 대부분은 공통점이 있다. 재킷의 경우 벨트 장식을 이용하거나 단추 위치를 옮겨 허리 라인을 강조했다. 엉덩이를 덮는 넉넉한 길이와 어깨 길이 역시 실제보다 다소 과장된 크기로 재단했다. 슈트의 전체 이미지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깨다. 타이트하고 날카로운 어깨선은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부드럽고 과장된 실루엣의 어깨선은 온화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번 시즌은 단연 후자가 강세다.
재킷과 마찬가지로 바지 역시 다소 헐렁한 핏의 디자인을 고르는 것이 트렌디한 선택이다. 1980년대를 휩쓸던 ‘슬라우치 룩’(헐렁하고 축 늘어진 듯 편안한 옷차림)처럼 느슨하고 편안해 보이는 핏이 강세다. 좀 더 격식을 차리고 싶다면 ‘와이드 팬츠’(밑으로 갈수록 폭이 넓은 바지)를 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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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어깨와 허리를 강조한 실루엣으로 트렌디한 슈트 스타일을 완성한 아크네. 사진 아크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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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슈트를 선택할 때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바로 컬러다. 네이비블루, 블랙 등의 색을 선호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밝은 컬러로 눈을 돌려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상·하의를 같은 컬러로 통일해야 한다. 올가을, 가장 바람직한 색을 하나만 고르라면 바로 회색이다. 이 계절에 그레이 컬러 슈트보다 모던하고 우아함을 잘 어필할 패션 아이템은 없다. 노란색이 한 방울 섞인 듯한 멜란지 그레이부터 블랙에 가까운 차콜 그레이까지 선택지는 꽤 다양하다. 그레이 컬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차선은 톤 다운된 그린, 바이올렛, 핑크 등의 색과 뉴트럴한 컬러다.
마음에 드는 슈트를 선택했다면, 스타일링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올가을 슈트를 누구보다 멋지게 소화하고 싶다면 대담함을 겸비해야 한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깊게 파인 네크라인으로 여성성을 또 한 번 강조했다. 블라우스나 셔츠를 입는다면 단추를 풀어 섹슈얼한 분위기를 더해도 좋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킷을 마치 상의처럼 연출했다. 칼라 사이로 훤히 드러나는 가슴 라인과 강조된 허리 라인은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를 선사한다. 목이 허전하면 남성용 타이 두께 정도의 가느다란 스카프를 목에 꼭 끼게 감거나, 초크 형태의 목걸이를 매치하는 것이 좋다.
슈트는 더이상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 벌로 멋지게 빼입은 슈트는 올가을 누구보다 당신을 트렌디하고 자신감 넘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신경미(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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