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5 09:28
수정 : 2019.12.0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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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균이와 큰미미. 사진 지니 박(Jinny Par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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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미미의 인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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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균이와 큰미미. 사진 지니 박(Jinny Par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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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머문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두 달 일정으로 왔다. 가족들은 인도에 두고 혼자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오늘은 ‘인도살이’가 아닌 ‘한국살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제는 ‘미미 시스터즈’ 공연이 있었다. 큰미미가 알차게 선곡한 우리나라 ‘607080’ 걸그룹 음악에 관객들과 나는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며 춤을 췄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난 뒤 시작된 두 번째 공연은 하균이의 테크노 공연이었다. 하균이는 투에보라는 이름의 뮤지션으로, 인천이 고향이지만 프랑스에서 성장한 친구다. 프랑스 이름은 에르완이다. 길거리 서커스 아티스트로 활동하다가 4년 전부터 음악을 시작했다고 한다. 강력한 테크노 리듬의 디제잉에 맞춰 선 채 드럼을 연주하는데, 드럼에는 이펙터(오디오 등에 인위적인 변화를 줘 다양한 효과를 연출하는 장치)가 설치돼 있어 그가 칠 때마다 굉장히 아찔하고 격렬한 소리가 났다. 조금 몸이 풀렸다 싶으면 하균이는 까만 마스크를 꺼내 쓰는데, 마스크 안에는 마이크가 붙어있고 그걸 통해 하균이는 소리를 낸다. 멜로디나 가사가 있는 노래가 아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동물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다. 그는 온몸으로 연주를 하는 뮤지션이었다. 코앞에서 하균이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귀가 터져나갈 것 같은 음악에 몸은 분명히 들썩이고 있는데 선글라스 안쪽에서는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다. 그렇게 감정적인 테크노 음악은 처음이었다.
낮에 다녀온 고양이 장례식이 자꾸 떠올라 눈물이 더 났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린, 친한 언니의 고양이. 한국에 오면 항상 따끈한 밥을 먹여주던 고마운 언니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언니의 슬픔은 상상하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깊고 처절했다. 지난해와 올해 유독 누군가를 많이 떠나보내야 했던 언니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우는 것 말고는 없었다. 한국에서의 내 눈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이십년지기 친구의 아기를 보러 갔다. 태어난 지 한 달 된 말간 얼굴의 아기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친구는 “아기의 똥에게는 관대하지만, 오줌은 한 방울도 용납하지 않는다”며 모유 수유 기간이 끝나면 밤새 소주를 마시자고 했다. 다크서클이 내려온 그를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밤새 이유 없이 몇 시간째 울던 아기를 업고 괴로워하던 순간이 떠올라서다.
세상을 갑자기 떠나버린 ’그녀들’(설리와 구하라)을 위한 애도 공연에 큰미미와 참석했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옆 사람들과 손 놓지 말고, 같이 살아내자”고 말하며 지난해 우리가 만든 노래 ‘우리, 자연사하자’를 불렀다. 공연이 끝난 후 그 공연 기획자와 한참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분 역시 몇 달 전에 친구를 떠나보냈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 주고받으며 울었다.
숙소에서 알게 된 친구도 있다. 한국에 여행 온 중국계 미국 여성 데보라다. 며칠 동안 숙소에만 있던 그 친구가 걱정돼서 인사를 건넸더니, 그는 “한국은 친구들과 같이 돌아다녀야지 더 재미있는 나라인 거 같다”며 나가기가 싫단다. 종일 밥도 안 먹었다기에 치킨을 주문해 같이 먹었다. 한국 치킨에 완전히 빠져버린 그는 그다음부터 나와 일상을 함께했다. 같이 공연도 보러 가고 새벽 찜질방도 가고 회의할 때 옆에 있기도 했다. 세대도 완전히 다르고 사는 곳도 달랐지만, 그의 고민과 나의 고민은 다르지 않았다. 리무진 버스에서 그를 떠나보낼 때 우리는 수십년 함께한 사이처럼 창문에 얼굴을 비비며 눈물의 이별을 했다.
한국에 오면 눈물이 많아진다. 감정적, 물리적으로 많은 일들이 생긴다. 삶의 밀도도, 속도도 인도와는 완전히 다르다. 많은 일이 연속적으로 생기는 한국에 있다 보면 인생이 뭘까 싶을 때가 많다. 인도에 있던 나의 모습은 ‘평행우주’였나 싶을 정도로 단순하고 느린데, 그 시간은 마치 전생처럼 멀고 기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이 좋아? 인도가 좋아?”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태생이 불만 덩어리이자 청개구리인 나는 한국에서는 인도 찬양을, 인도에서는 한국 찬양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언제 어디에 있든 간에, 내가 있는 이곳에서, 내 옆에 있는 혹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살아나가고 싶다.
내일이면 프랑스로 돌아가는 하균이도, 세상을 갑자기 떠난 고양이 희야도, 희야를 그리워하는 언니도, 인도로 불쑥 떠나버린 야속한 멤버를 매번 따뜻하게 받아주는 큰미미도, 뉴욕으로 돌아간 데보라도, 아기와 함께 밤잠을 설칠 친구도, 인도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가족들도, 그리고 지금 이 글과 함께하는 여러분도. 그저 모두 감사하다.
작은미미(‘미미 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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