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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1 09:43 수정 : 2019.11.21 20:20

작은 미미의 인도살이

처음 인도에서 재즈클럽을 발견했을 때 솔직히 충격이었다. 인도사람이 재즈를 연주한다고? 인도사람들은 물담배를 피우며 느릿하게 시타르(인도식 기타)를 연주하거나 발리우드 음악에 떼 춤만 춘다고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이건 마치 한국 사람들은 모조리 케이팝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델리에 있는 작은 재즈클럽 ‘피아노맨 재즈클럽’은 내게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와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좁은 무대 위에 연주자들이 빼곡히 앉자 연주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연주자들의 모공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에 쪼그리고 있는 관객들 틈에 끼어 앉자 이곳이 나의 인도 아지트가 될 것을 직감했다.

음악도 음악이었지만, 인도의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친구들을 만나는 게 참 재미있었다. 인도하면 매일매일 신에게 뿌자(신에게 올리는 제사 의식)를 올리고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는 종교적인 사람들로만 가득한 곳 같지만, 사실 젊은 친구 중에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으면 과감히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그중에서 친해진 아디티야는 올해 24살인 드러머. 고등학교 때 헤비메탈 밴드에서 드럼을 치다가 재즈가 좋아서 그 분야의 연주자가 됐다. 부모는 그가 회계사가 되길 바랐지만, 애당초 음악의 길만 가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피아노맨 재즈클럽’ 전속 드러머로,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에 열리는 하우스밴드 공연에 참여한다. 그 밖에도 국내외 뮤지션들의 드럼 세션을 맡고 있다. 드럼을 칠 때는 짐승 같으나 평소에는 아주 수줍음이 많은 소년 같은 친구다. 내게 인도의 많은 문화를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날, 우리는 공연이 끝나고 같이 커리를 먹고 있었다. 펄펄 날리는 인도산 쌀을 숟가락으로 퍼먹는 아디티야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날 우리의 대화를 재구성해보았다.

작은미미(이하 작) 인도 사람이 숟가락을 쓰다니?

아디티야(이하 아) 인도 사람들은 다 손으로 먹는다는 편견 좀 버리시지? 강낭콩 들어간 커리말고는 난 다 도구를 사용해.

미안. 근데 난 손으로 먹어볼래. 손으로 먹는 방법 좀 알려줘. (아디는 인도 사람의 특수기술인 손가락으로 ‘숟가락+포크질’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꽤 정교하고 어려웠다.) 드럼 친 지는 얼마나 됐어?

10년쯤. 사실 요즘 좀 슬럼프야. 아무 생각 없이 쭉 쳐왔는데, 다른 방향이나 동기가 될 만한 것을 찾고 있어. 내 스튜디오를 만든 것도 그래서고.

그러고 보니 너 옛날에 공연한 거 너튜브에서 봤어. 완전 날씬하고 잘 생겼더라. (지금 그는 넉넉한 풍채를 자랑한다.)

그때 좀 잘 나가긴 했지. 근데 알지? 드럼 치려면 살집이 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연주를 위해 살을 찌웠구나! 인도에는 재즈클럽이 많니?

작은 클럽이 있긴 한데, 델리에서는 ‘피아노맨 재즈클럽’이 가장 좋지. 일주일에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을 해. 인도에서 재즈 분야는 아직 미약한 수준이야. 대세는 발리우드 음악이지.

한국 사람 중에도 발리우드 팬이 많아!

발리우드가 인도 음악을 망쳤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돈 되는 음악만 만들려고 하거든. 나는 돈보다는 좀 더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연주를 하고 싶어.

응원해. 한편, 전통 음악이 실생활과 매우 가깝다는 것도 특이하더라. 한국은 특별히 찾아서 듣지 않으면 듣기가 힘든데, 인도는 카페나 술집, 하물며 아파트 안내 방송을 할 때도 전통 음악이 나와 신기했어.

사실 파키스탄 음악이 인도 음악의 옛날 매력을 간직하고 있지.

작 인도와 사이가 안 좋은 나라잖아.

정치적이나 군사적으로는 그렇지만, 문화적으로는 같은 뿌리야. ‘코크 스튜디오’(Coke Studio)라는 음악 프로그램 알아? ‘시즌 12’까지 나왔지.

아디티야는 코크 스튜디오의 콘텐츠 몇 개를 보여줬다. 전통 음악과 현대음악이 공존하는 최상의 경지를 보여주는 ‘끝판왕’이었다.

요즘 너에게 영감을 주는 음악은?

인도 전통 음악은 나의 ‘올 타임 영감 송’이지. 최근엔 미국 재즈 트럼펫 연주자 앰브로스 아킨무시리(Ambrose Akinmusire)의 노래야.

한국 음악도 아니?

‘강남스타일!’ 사실 잘 몰라. 걸그룹은 안다. ‘미미 시스터즈’라고. 하하

인도에는 건축물 타지마할과 갠지스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델리에서 인도 젊은이들을 만나고 싶다면 ‘피아노맨 재즈클럽’에 가보시길. 언젠가 미미 시스터즈도 그 무대에 서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작은미미(미미 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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