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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5 09:38 수정 : 2019.09.11 11:47

제육볶음. 사진 작은미미 제공

작은미미 인도살이 ④-2

제육볶음. 사진 작은미미 제공
한국인 친구와 생돼지 파는 정육점 ‘잉글리시 미트 숍’(ENGLISH MEAT SHOP)을 구글 맵을 참고해 찾아 나섰다. 인도에서 돼지고기 파는 정육점이라니!

한참을 달리던 차는 어느 숲으로 들어갔다. 빽빽하게 자란 나무 때문에 대낮인데도 숲은 어두웠다. 약간 무서워졌다. 차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렸다. 친구가 후다닥 날아가는 까마귀에 깜짝 놀라며 그냥 돌아가자고 했을 때 드디어 정육점이 나타났다. “여기? 응? 여기라고?”

눈앞에 나타난 건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 나올 법한 분위기의 헛간.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아무리 찾아도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우리 눈에 들어온 건 초가집을 잔뜩 에워싼 ‘수억마리’의 파리들이었다. 나와 친구는 파리 떼의 호위를 받으며 현관문(으로 추정되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손잡이를 당기자 방충망에 빼곡히 붙어 있던 파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비명을 지르며 방충망을 닫았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집안도 파리 천국이었으니까.

‘파리 대왕’ 아니, 사장님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인도 사람이었다. 우릴 보더니 세상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며 앞치마를 꺼내 입었는데, 말문이 막혔다. ‘어라, 저것은?’ 우리가 한국 고깃집에서 익숙하게 봤던, ‘참이슬’이라는 글자가 적힌 초록색 앞치마였다.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것 어디서 구한 거야? 어느 나라 앞치마인지 알아?”라고 물어보았지만, 그냥 멀뚱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용건만 말해, 어느 부위를 원하는 거야”라는 듯 생경한 힌디어를 툭 던졌다. 내가 내 배를 어루만지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 배를 확인 차 만진 뒤 사라졌다. 그는 잠시 뒤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들고 나왔다. 친구는 경악했다. 제모가 덜 됐는지 털이 숭숭 보이는, 껍데기까지 온전히 붙어 있는 오겹살. 하지만 고기 색은 아주 붉고 선명했다. “어, 조금 작게 썰어줘.” 주인아저씨는 이백년쯤 되어 보이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칼을 들고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음, 조금만 더 썰어줘. 좀 더. 조금 더 작게, 써는 김에 좀만 더 잘게.” 문득, “몇 센티로 썰어드릴까요? 몇 그램이나 드릴까요?”라고 물어봐 주던 사근사근한 한국 정육점 사장님이 그리웠다. 이게 인도 스타일이다. 그가 잘라 줄 수 있는 최선은 내 주먹 정도의 사이즈였다. 그걸 아주 얄팍한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다. 나와 친구는 비닐봉지가 찢어질세라 소중히 품에 안고 다시 파리 떼와 싸우며 정육점을 나왔다.

고기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수육도 해 먹고 장조림도 해 먹고 김치찌개도 해 먹었다. 그 뒤로 두세 번을 더 갔는데, 두 달 전쯤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이렇게 생돼지고기는 내게서 멀어졌다.

이제는 슬슬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고기를 먹어야 하나? 이럴 바에야 차라리 채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육식의 폐해를 다른 의미에서 절감하고 있는 나는 이 일이 계기가 돼 채식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간헐적 육식과 간헐적 채식을 하고 있다. 인도는 역시 채소가 맛있다. 싸고 신선하다. 단백질이 모자란다 싶으면 인도 마트에 파는 ‘토푸’(TOFU·두부)를 사 먹으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식 말 ‘두부’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식감이 매우 부드러워서이다. 인도는 콩 소비가 어마어마한 나라다. 한국 두부 업체가 인도에 진출하면 크게 성공할 거 같다.

여담인데, 종종 그 정육점에서 본 참이슬 앞치마가 생각난다. 당혹스러운 순간에 내게 큰 힘을 준, 모국어가 새겨진 앞치마. 더구나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참이슬’이라니! 마치 첫사랑을 타국에서 우연히 만난 느낌이랄까. 앞치마는 어떻게 아저씨 손에 들어가게 된 걸까. 지금도 아저씨와 함께일까?

작은미미(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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