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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5 09:32 수정 : 2019.09.11 21:39

사진 데이즈데이즈 제공

성범수의 입는 사람

사진 데이즈데이즈 제공
얼마 전, 모 음료 브랜드 영상 광고의 의상 콘셉트를 제안하는 일을 진행했다. 촬영 전 사전 미팅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분위기가 참 좋았다. 광고주가 원하는 그림과 내가 제안한 의상 콘셉트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은 술술 잘 풀리는 것 같았지만, 문제는 미팅 이후 불현듯 찾아왔다. 바닷가에서 촬영하는 것이었기에 수영복은 필수불가결한, 광고 영상에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개성이 지나치게 도드라지는 것보다는 초록색 자연의 느낌을 그대로 담은, 군더더기 없는 비키니 수영복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러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을 둘러봐도, 광고주와 대화 나눈 디자인의 수영복이 눈에 띄지 않았다. 시간은 부족했고, 제작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강한 열망은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던가! 고민이 헛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모델의 담당 스타일리스트가 아이디어를 내서 급하게 원피스 수영복을 리폼해 새로운 스타일의 비키니로 만드는 선에서 그럭저럭 마무리했다. 지금 트렌드를 외면한 채 수영복을 찾아 나섰다가 낭패를 볼 뻔했던,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요즘 수영복 대부분은 개성이 강하다. 패션 트렌드의 주도권을 쥔 스트리트 패션의 강세가 수영복에도 이어지고 있다. 레터링이나 그라피티(graffiti), 그리고 스트라이프(줄무늬) 같은 요소들은 스트리트 패션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소다. 그런 특징들이 이번 시즌 수영복에 오롯이 적용됐다. 또한 물 위에 유유자적 누워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물방울을 튕기는 수준을 넘어 바다에서 뛰어들면 어디가 끊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손바닥만 한 유약한(?) 비키니가 아니다. 역동적인 ‘워터 스포츠’에도 무리 없는 스포티한 수영복들이 차고 넘치게 등장했다. 서핑하고, 수중을 종횡무진 누빈다고 해도 문제없을 그런 수영복 말이다. 맞다. 레트로(복고풍) 요소를 담고 있는 모노키니(monokini·1964년 발표된 수영복)나 상의가 탱크톱 스타일로 된 탱키니가 강세라는 거,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

물론 여성스러운 디테일의 수영복들도 꽤 눈에 들어온다. 러플(주름장식)이 화려하게 달려 있거나 자수가 촘촘히 새겨져 있거나, 그리고 1960~70년대 레트로 요소를 담고 있는 벨트가 달린 수영복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소재 사용에 대한 패션 업계의 집중은 수영복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수영복이 지속 가능하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에코 섬유’(OEKO TEX 100·섬유제품 내 유독물질함유 여부를 측정하는 기준)를 도입해 ‘깨끗한 환경 지향’을 잊지 않고 적용한 것이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트렌드는 옷의 형태와는 상관없이 향후 몇 년간 표준처럼 적용될 것 같다.

자연에서 유유자적 노니는 모습과 어울림을 완성하는 수영복은 외양적인 트렌드뿐 아니라 ‘지속 가능 패션’을 적용하며 2019년 푸른 물 위를 장악할 듯 보인다. 벌써 7월 말이고, 이미 예약한 휴가가 코앞이지만, 이 글을 읽고 트렌드에 걸맞은 수영복을 다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산 수영복을 그냥 입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영혼 없는 위로를 해본다.

성범수(<인디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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