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드라마 <에이틴>의 주제곡 ‘도망가지마‘ 부른
데뷔 3년차 싱어송라이터 모트
세계 최초 ‘기자실 라이브’ 첫 공연자로 참여
“공연동안 만큼은 흑백의 기자들도 색색의 감정을 즐겼으면”
“음악인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 갖는 건 좋은 현상”
지난 9일, 〈한겨레〉 7층 편집국에 인기 인디뮤지션 ‘모트’(23·본명 김은지)가 찾아왔습니다. 현장에 나간 기자들이 보내온 기사를 마감하는 이 공간은 외부인 출입이 거의 없는 곳입니다. 국내 10대 청소년들의 ‘바이블’로 알려진 웹드라마 <에이틴>(A-TEEN)의 배경음악(OST)을 부른 그가 이 ‘은밀한’ 곳을 방문한 이유는 뭘까요. 모트는 편집국에서 진행된 세계 최초의 ‘기자실 라이브(Live)’ 공연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딱딱한 이미지의 편집국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모트의 노래는 어떤 느낌을 자아냈을까요? 이 인터뷰는 공연 이틀 전에 먼저 이뤄진 것이며, 해당 영상은 당시의 공연을 담은 것입니다.
‘기자실 라이브’ 공연 전체 영상. 조성욱 피디
2017년 데뷔한 지 1년 만에 10대 청소년들이 열광한 웹드라마 <에이틴>의 주제곡 ‘도망가지마‘를 불러 인디신 ‘샛별’로 떠오른 모트. 지난 7일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쾌활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달콤한 아이스모카를 주문한 그는 “커피도 좋아하지만, 술도 좋아해요. 인터뷰 끝나고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기로 했어요”라며 활짝 웃는다. 붉은빛이 감도는 긴 파마머리가 인기 청춘웹툰 〈치즈인더트랩〉의 여주인공 ‘홍설‘과 언뜻 닮아보였다.(‘홍설‘은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에서 사랑받는 대학생 캐릭터다)
’기자실 라이브’ 공연 중 환하게 웃는 모트. <기자실 라이브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이런 겉모습처럼 그의 어릴 적 꿈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부터 신문 스크랩이 취미였어요. 열심히 기사를 읽으면서 시사에 정통한 멋진 대학생이 되고 싶었죠.”
그랬던 그에게 특별한 순간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짝꿍이 자습시간에 이어폰 한쪽을 나눠주더니 가수 박효신님의 노래를 들려주는 거예요. ‘추억은 사랑을 닮아‘라는 곡이었어요. 듣자마자 반했죠.”
그날 이후 매일 유튜브에서 박효신의 공연 영상을 찾아봤다는 모트는 유독 한 공연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박효신이 백화점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라이브 공연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때였어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노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1년간 기타 연주와 작곡을 독학한 그는 이제 데뷔 3년차 싱어송라이터가 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자실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게 됐어요. 기분은 어때요?
“제가 알기로는 기자실에서 가수가 공연하는 게 세계 최초라면서요?(웃음). 무척 신기한 경험이 될 것 같아요. 평소에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더 설레기도 해요.”
<한겨레> 7층 편집국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트와 일하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 ‘기자실 라이브’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기자들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라도 있었나요?
“제가 5년 전에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피노키오>라는 드라마를 감명 깊게 봤어요. 그러고 보니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한겨레〉기사를 스크랩하는 취미도 있었네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인 것 같아요. 〈한겨레〉에서 ‘기자실 라이브’ 공연을 하게 된 게요.”
모트가 스크랩한 <한겨레> 기사와 자신의 생각을 적은 메모. 김포그니 기자
―‘기자실 라이브’는 기존에 했던 공연과는 다를텐데, 어떠세요?
“보통 제 또래 관객 앞에서만 공연했는데, 엄숙한 느낌의 기자님들 앞에선 처음이니까 아무래도 떨리죠. 사실 무대공포증도 있거든요. 무대 올라갈 때마다 ‘덜덜‘ 떤다고, 팬들이 ‘고트(Goat·염소)‘라는 별명을 붙여줬을 정도예요.
다행히 요새는 저만의 떨지 않는 방법이 생겼어요. 무대 시작하기 전에 관객석을 등지고 연주자들과 눈빛을 교환해요. 제 본명이 은지인데, 연주자들이 ‘은지야 잘할 수 있어‘라고 응원해주시는 것 같아서 용기가 나죠.”
―이번 기자실 라이브 공연에서 신곡도 처음 공개한다면서요. 어떤 곡이에요?
“밴드 ‘쏠라티’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오안’님의 첫 솔로 프로젝트에 제가 첫 번째 주자로 나선 곡인데요. ‘이기적이고 싶어‘라는 노래예요. 연인한테 조금 더 같이 있자고 투정부리는 내용이에요. 밤새 같이 있었는데, 어쨌든 아침이 되면 애인도 어떤 일을 하러 나가야 하겠죠? 연인의 귓가에 ‘일어나, 일어나’ 속삭이지만, 잠시라고 눈을 마주하고 싶어서 손을 꼬옥 붙잡고 안 놓아주는 거죠.”
―실제 경험을 담은 곡인가요?(웃음)
“하하, 아뇨.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는 편이에요.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하니까 조금의 틈이라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아픈 것도 참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을 정도죠. 좀 미련한 배려죠?(웃음)”
본인의 신곡 ’이기적이고 싶어’를 부르고 있는 모트. ’기자실 라이브’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신곡 이외에도 기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이 있을까요?
“제가 공연하는 시간대가 기사 마감하느라 한창 바쁘실 때라고 들었어요. 열심히 일하시는 기자님들에게 잠시라도 위로가 될 수 있는 따뜻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Diving into you‘라는 곡을 그래서 이번에 준비했어요. ‘너에게 빠져버렸다‘는 제목 덕분에 연애 얘기를 담은 곡인 줄 알지만 사실은 가족에 대한 곡이에요. 우리 모두 일이 힘들 때 가족 생각이 나니까요. 들으면 힘이 되지 않을까 해요.”
―그 곡에 ‘네 생각에 잡혀버리는 나를 보면서 크게 웃으면 다들 깨지‘라는 가사가 있던데, 특별히 경험했던 어떤 상황을 담은 건가요?
“친언니가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서 일주일 동안 집에 요양을 왔던 적이 있어요. 방이 두 개인데 아기(조카)를 제 방에 재우고, 엄마는 안방에, 언니와 저는 거실에서 잤죠. 오랜만에 모녀가 모두 모인 밤이었어요. 그때 언니가 ‘조금이라도 뒤척이는 소리를 내면 아기는 잘 깬다. 조용히 해‘라며 되게 주의를 줬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아기가 너무 반갑고 좋았던 저는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킥킥‘대고 웃어버렸죠. 그랬더니 아기가 깨서 우는 거예요. 엄마도, 언니도 일어나고 거실 불이 켜졌죠. ‘아, 이제 마음 놓고 크게 웃으면서 너(조카) 생각해야지‘ 생각했죠. 그때 따뜻했던 상황을 담았어요.”
’기자실 라이브’ 공연 중 연주자를 바라보며 웃는 모트. ‘기자실 라이브’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가사를 적을 때 실제 경험을 담는 편인가 봐요.
“가사는 사람들이랑 대화하면서 얻어가는 게 많아요. 어떻게 보면 기자님들과 살짝 비슷한 것 같아요. 기자님들은 기사를 쓰려고 사건을 기록하고, 저는 가사를 적기 위해 일상을 기록하거든요. 친구랑 술 마시다가도 친구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자기 경험을 얘기하면 ‘나 메모장 켰어. 다시 얘기해봐‘하면서 받아 적고는 하죠.
‘Tickin‘이라는 곡에선 ‘하늘 위엔 구름 그림이 흩어져요‘라는 가사가 등장하는데, 아빠 덕분에 탄생한 가사예요. 한번은 아빠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아빠가 보기에 하늘이 참 예뻤나 봐요. ‘하늘에 누가 수채화를 그려놨네?‘라고 하셨죠. 그 말이 그때 하늘만큼 예쁘더라고요.”
―아까 신문 스크랩이 취미였다고 했는데, 요즘 눈 여겨 본 뉴스가 있나요.
“한두 달 전에 본 기사인데, 국내 어느 지역에 재팬타운을 조성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내에서 재팬타운 건립’을 반대하는 글이 올라왔을 정도로 논란이 됐던 사건이었죠. 저도 ‘동의합니다’ 버튼을 눌렀어요.
무조건 ‘반일’하자는 얘기는 아니에요. 다만 일제강점기로 얽힌 역사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국내에 재팬타운이 있으면 안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때로는 일본에 여행을 가고 싶기도 하고, 스스로가 모순되게 느껴질 때도 간혹 있지만(웃음), 나름의 최선을 다해 역사문제에 관심을 가지려고 해요.”
한겨레 7층 편집국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모트와 언스. ‘기자실 라이브’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요즘 모트씨처럼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젊은 음악인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좋은 현상인 것 같아요. 연예인이기에 앞서 우리는 모두 ’사람’이니까요. 문득 생각난 분인데, 가수 안예은님이라고 계세요. 꾸준히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자기는 페미니스트라고 언급을 하시는 게 보기 좋아서 인상 깊게 보고 있어요.”
―모트씨도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나요.
“그…언제였죠?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때 여성혐오 살인이라는 키워드가 화두로 올랐잖아요. 그때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여성도 사람인데,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이 이어졌으면 해요.”
’ROOMIE’를 부르고 있는 모트. ’기자실 라이브’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플레전트 빌〉(1998)은 모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흑백의 도시,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다 ‘흑백‘이다. 그러다 사람에 대한 사랑, 따뜻한 감정을 느낀 이들에게 하나 둘씩 ‘색‘이 입혀진다.
“감정이 생겨나면서 색도 생겨난다는 게 아름답고 애틋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모트는 “기자실도 그런 곳인 것 같다”고 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에 흑백의 기자님들이 타자를 두드리고 있겠지만, ‘기자실 라이브’가 펼쳐지는 동안 만큼은 키보드의 타자 소리로 박자를 맞추며 잠시나마 색색의 ’감정’을 즐겨주면 좋을 것 같아요.”
기획·취재 김포그니 기자pogn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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