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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1 19:57 수정 : 2019.06.14 15:56

11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이사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세대 여성운동가’ 고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애도
축첩반대운동, ‘요정 정치’ 반대 운동, 가족법 개정 등

여성인권·결식아동·입양아 등 약자, 소외계층 위해 한길
지은희·진선미 장관 “큰뜻 이어받아 노력할 것”

11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이사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부인’이 아닌 꼿꼿하게 한길을 걸은 여성운동가.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여성상’을 한결같이 강조하며 여성 후배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지 고민한 분.”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은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이렇게 회고했다.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생전의 이 이사장의 발언 그대로였다.

고인의 관심은 언제나 더 낮은 곳으로 향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일했던 여성 노동자의 권리, 가부장제에 갇힌 여성들의 법적지위 향상에 힘을 쏟았다.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도 그의 관심 분야는 결식아동, 입양아, 소년원, 장애인, 북한 어린이 등 약자와 소외 계층에 집중돼 있었다. 축첩반대운동, ‘요정 정치’ 반대 운동, 혼인신고 캠페인을 벌이고 가족법 개정을 이끌어냈던 배경이다.

이 이사장은 자서전 <동행>에서 자신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인격으로 차별받지 않고 사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그는 “너무 일찍 꾼 꿈”이라면서도 “민주주의의 발전만큼 여성들은 스스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행복하다”라고 적었다. “‘여성이 여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이 땅의 여성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큰 스승(김금옥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을 기억하고 행동하겠”노라고 남은 여성들이 응답했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11일 김대중 정부 당시 여성정책이 적극 추진됐던 사실을 되짚으며 그 배경에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시고 여성이 여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성운동가로 평생을 바쳐오신 이 이사장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여성정책과 관련해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1998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신설됐고 2001년 여성부로 확대 출범했다.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 등 ‘모성 보호 3법’이 개정돼 모성 보호 비용을 사회가 분담하게 만들었고, 50년 동안 딱 한 명의 여성비서관이 있던 청와대에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여성 10명이 입성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정부 부처에는 4명의 여성장관을 기용했다.

진 장관은 “한없는 애도를 표한다”며 “그 뜻을 이어받아 우리 사회가 성별에 의한 차별 없이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1961년부터 1970년까지 이 이사장이 이사로 활동했던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여성운동역사가 태동하던 시기에 여성운동과 여권신장을 위해 힘써주셨다”며 감사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시민사회계도 각자의 인연을 돌아보며 고인을 기렸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은 이 이사장이 각별히 애정을 쏟은 단체다. 이 이사장은 자서전에서 민가협의 어머니들이 “모든 시위와 집회의 전위를 담당하는 기동타격대 역할을 해냈다”며 “불의한 시대가 가장 온유한 사람들을 가장 열렬한 투사로 성장시켰다”고 적었다.

민가협 총무를 지냈던 남규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이 이사장은 민가협 어머니들을 알뜰히 챙기셨다”고 돌아봤다. 1995년엔 민가협 어머니들을 동교동 자택으로 직접 초대하는가 하면, 양심수 가족이었던 삶을 잊지 않고 1996년 양심수 석방을 위한 민가협 공연이 경찰에 봉쇄됐을 때도 직접 전화를 주며 도왔다는 것이다. 남 이사는 “가장 앞장서서 민주화를 앞당긴 여성 중 한 분으로 남을 것”이라며 “민주인권기념관에 삶의 기록을 남겨 후대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인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센터가 처음 자리잡을 때 (이 이사장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는 “(이 이사장이) 고문으로 인해 피해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똑같이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으로부터 못 벗어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는 말씀을 전한 적이 있다”고 돌아보며 추모의 뜻을 밝혔다.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희호 선생님은 힘들게 여성운동 현장에서 일하신 활동가셔서 여성운동가와 여성운동을 지원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고 계셨지요. 우리나라 유일의 여성운동 지원 재단인 한국여성재단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셨어요. 물론 박영숙 선생님과의 깊은 동지애 때문이시기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운동지원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영부인이 선택하기는 더 어려운 일이죠!!! 이희호 선생님은 정말 꼿꼿하게 한길 걸은 1세대 여성운동가. 그야말로 ‘대통령 부인’이 아니라 여성운동가로서 역할과 자긍심을 갖고 여성 후배들에게 어떻게 도움될지 고민한 분이셨습니다. 영부인이 되시기 전에도 되신 뒤에도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여성상을 한결같이 강조하신 분입니다. 무엇보다 평화통일운동에 관심 갖고 기여하셨습니다. 그 길에 함께하셨던 박영숙 선생님도 이제 계시지 않고 이희호 선생님도 돌아가셔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김금옥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대중·이희호’라는 부부 공동문패를 따라서 달았던 저는 얼마 전 이희호 선생님이 병원에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진선미 여성부 장관과 함께 찾아 뵈었습니다.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해 주무시는 모습만 뵙고 왔습니다. 이제 그 모습을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당당하게 투쟁하며 품위를 잃지 않았던 이희호 선생님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큰 스승입니다. 스승이 떠나가신 빈 자리가 허전하지 않도록 ‘여성이 여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당부하신 말씀과, 생의 마지막에도 기도하신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전 상임대표

“참으로 험난한 한 세기를 살다 가셨네요. 지난한 한반도의 역사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여성으로서 가열차게 살아내신 삶을 잊지 않고 제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저희 한반도 여성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평화공존의 한반도에서 남북여성들이 함께 손잡고 가부장제와 군사주의 없는 세상 만들 수 있도록 힘 주소서.”

박다해 이유진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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