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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2 18:19 수정 : 2019.10.02 20:11

그래픽_김지야

Weconomy | 경제의 창_파생금융상품 과거와 현재

위험 회피 위해 만들어 키웠더니
투기성 대표 상품으로 자라나
느슨한 규제에 불투명한 거래 탓
글로벌 금융위기 단골 촉발자 돼

국내금융사들 2000년 초반부터
직접 ELS 설계 판매 나서기 시작
현재 발행잔액 110조까지 도달
급성장하며 이해상충 등 문제 일으켜

금융사 내부통제시스템 작동 불능
금융당국 관리 감독 구멍 큰데
ELS 70% 홍콩 H지수에 쏠려
금융시스템 잠재 리스크로 자리잡아

그래픽_김지야

파생금융상품은 원래 금융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위험을 회피하거나 최소화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위험을 회피하려는 투자자뿐 아니라 이런 위험을 사들임으로써 고수익을 챙기려는 투자자들도 참여하면서 지금은 투기성이 매우 높은 상품의 대표격이 됐다. 시장 규모가 급격히 커진 반면에 규제가 느슨한데다 거래가 불투명해 세계적으로 금융위기의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모기지채권을 기초로 한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는 파생상품에서 비롯됐다. 다행히 한국은 당시 파생상품 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덕분에 위기의 직접적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국내 금융시장도 2009년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로 파생상품 시장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 사태가 잦아지고 있다. 또 홍콩 에이치(H)지수와 같은 특정 상품에 대한 쏠림 현상이 커지면서 잠재적인 시스템 리스크 요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내에 파생상품의 위험을 알린 첫 사례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제이피모건은 1996년 말~1997년 초 에스케이증권, 대한생명 등 국내 금융기관 7곳에 ‘토털리턴스와프’(총수익률스와프)라는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했다. 달러화에 1 대 15로 고정됐던 바트화 환율이 1998년 1월까지 유지되면 국내 금융회사가 16%의 수익률을 올리는 반면 바트화가 평가절하되면 원금의 5배까지 손실을 보는 구조였다. 그런데 바트화는 1997년 7월 타이가 경제위기 상황에서 고정환율제를 포기함으로써 평가절하되기 시작해 1998년 1월에는 1달러당 54바트까지 절하됐다. 당시 국내 금융회사들이 입은 손실은 약 8억달러에 이른다. 이 사건은 당시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국내 금융회사들도 직접 파생금융상품을 설계해 판매에 나서게 된다. 2003년 3월 주가연계증권(ELS)이 처음 도입됐다. 주가연계증권은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나 개별주식의 가격에 연동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구조다. 2005년에는 파생결합증권(DLS) 발행이 허용됐다. 디엘에스는 이엘에스와 기본적으로 유사하나, 기초자산으로 주가가 아닌 금리·원자재·환율 등을 활용한다. 최근 문제가 된 파생결합펀드(DLF)는 디엘에스 상품을 편입한 펀드를 말한다. 이엘에스와 디엘에스는 이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파생결합상품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발행 잔액이 2003년 3조4500억원에서 출발해, 2010년 22조원, 2012년 51조원으로 늘더니, 2016년에는 100조원을 돌파했다. 홍콩 에이치지수 급락 여파로 한때 주춤했으나 2018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현재는 110조원대에 이르렀다.

※ 그래픽을(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파생결합상품은 급성장 과정에서 발행 금융회사와 투자자 간 손실을 둘러싼 이해상충, 시스템 리스크 위험, 불완전 판매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파생상품 전문가인 윤선중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파생결합상품이 국내 금융시장에 문제를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로 4가지를 꼽았다.

첫번째 사례는 한국투자증권이 2007년 국민은행·삼성전자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이엘에스 상품이다. 200여억원어치가 팔린 이 상품 거래의 실질 상대방인 도이치은행이 만기 평가가격 결정일인 2009년 8월26일 종가 직전에 국민은행 주식을 대량 매도함으로써 투자자들이 기준가격 미달로 30%가량 손실을 본 사건이다. 이 사건은 투자자들의 첫 증권집단소송 대상이 됐으며, 2016년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도이치은행 쪽은 정상적인 헤지거래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시세조종으로 판단했다. 이 사건에선 투자자들이 손실이 본 반면 발행사들은 이익을 본 이해상충이 문제가 됐다.

두번째 사례는 홍콩 에이치지수가 급락하면서 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이엘에스 상품들이 큰 손실 위험에 처한 사건이다. 에이치지수는 2015년 5월 1만4800까지 갔다가 2016년 말 7500 수준까지 거의 반토막이 났다. 당시 이 지수를 기초로 발행된 이엘에스 상품은 한때 50조원어치로 전체 이엘에스 발행액의 80%까지 이르렀다. 당시 에프앤가이드는 에이치지수가 50% 하락한 상태에서 손실이 확정되면 투자자 손실 규모가 약 6조5천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행히 에이치지수는 2016년 2월 이후 반등을 하면서 안정을 되찾아 투자자 손실은 크지 않았다. 반면에 증권사들은 수백억원에서 1천억원대의 운용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례는 에이치지수에 대한 과도한 쏠림현상이 발생하면서 금융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을 높인 경우다.

세번째는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를 연계로 한 디엘에스 상품이다. 이 상품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본 반면에 금융기관이 판매보수를 챙겼다는 점에서 이해상충 측면도 있지만, 금융감독원이 1일 중간검사 결과 밝힌 대로 불완전판매의 전형적 사례로 여겨진다. 윤 교수는 이와 유사했던 사례로 2005년 6년 만기로 발행된 우리파워인컴 1~2호 펀드를 들었다. 당시 은퇴자 등 2277명의 투자자에게 1506억원어치의 상품이 판매됐으나 1호 펀드는 2011년 97.5% 손실, 2호 펀드는 2012년 1월 90.3% 손실을 봤다. 금융감독원은 분쟁조정신청을 한 투자자들에게 손실액의 20~50% 배상을 결정했다. 법원도 설명의무를 위반한 불완전판매 책임을 물어 배상판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각각의 사건들에 대한 금융당국의 대책, 그리고 이에 대한 시장의 대응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을까. 먼저, 이엘에스 시세조종 사건에 대해 금융당국은 2009년 9월 금융회사의 재량권을 제한하는 강력한 헤지거래 가이드라인을 시행했다. 윤 교수는 “이 가이드라인 시행 이후 동일한 유형의 분쟁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면서도 “국내 개별주식을 기초로 하는 상품은 시장에서 거의 사라지고 증권사들이 해외 시장의 개별주식이나 지수로 몰려가는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부정적 효과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홍콩 에이치지수 급락에 따른 잠재적인 시스템 위기 사례에서는 금융당국이 이 지수를 기초로 하는 상품에 대한 발행총액제한을 자율규제 형식으로 실시했다. 그 여파로 이 지수를 기초로 한 상품이 5조원대로 급감하는 등 규제 효과가 상당했다. 그러나 2018년 자율규제가 종료되면서 다시 급증하기 시작해 이 상품은 현재 30조원대를 넘어 전체 이엘에스 발행액의 70%에 근접하고 있다. 에이치지수에 대한 쏠림현상이 심화하면서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이 언제 다시 대두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불완전판매는 우리 금융회사들의 고질적 병폐인 것으로 다시 드러났다. 우리파워인컴 펀드 사건 이후 금융당국은 전 금융권의 신탁채널을 대상으로 판매실태를 점검하고, 고령자 등 금융지식이 부족한 투자자를 대상으로 판매 시에는 판매과정을 녹취하도록 의무화하는 등의 조처를 했다. 그러나 이번 디엘에프 사건에서 보듯이 은행권의 판매채널에서 심각한 문제가 노출됐다. 이는 파생상품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에도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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