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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9 16:06 수정 : 2019.09.29 20:44

그래픽_김지야

Weconomy | 경제의 창

사용제품 회수해 신제품 수준 복원
순정품과 유사한 성능 정부가 보장
중고 부품·재생 부품과는 구별돼

보험사에서 부품값 20% 돌려받고
수리비 줄어 보험료 할인 여지 크지만
부정적 인식 탓 국내선 아직 걸음마

자원 낭비 줄여 환경 지키고
제조업 대비 3배 고용 창출 효과도
“유통구조 개선·품목 확대 필요”

그래픽_김지야
연식이 8년 된 현대차 그랜저를 모는 이수한(55)씨는 최근 차량 수리를 위해 단골 카센터를 찾았다. 전기장비에 전력을 공급하는 ‘얼터네이터’(자동차용 발전기)를 교체해야 했는데, ‘재제조품’(10만7800원) 가격이 흔히 ‘순정품’으로 불리는 신품(18만1500원)보다 60%가량 저렴했다. 이씨는 “순정품과 비교해 성능면에서 차이가 없다고 해서 값이 싼 재제조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차량 정비업소에서 ‘재제조 부품’을 찾는 이들은 아직 그렇게 많지는 않다. 정부가 품질을 인증하고 신품보다 가격이 훨씬 싼데도 ‘재제조 부품’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순정품’이란 용어에서 비롯된 착시 효과로 ‘비순정품’을 불량품으로 오인하는 것처럼 ‘재제조 부품’을 대하는 소비자 인식도 대체로 부정적인 편이다.

재제조 부품은 이미 사용한 제품을 회수해 분해·세척·조립·검사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신제품 수준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단순히 세척해서 잔존 수명만큼 동일한 용도로 사용하는 ‘중고 부품’이나 외형이 손상된 부품을 보수해 재사용하는 ‘재생부품’과는 구별된다. 실제로 재제조 제품은 완성차업체의 애프터서비스(A/S)용 신품과 동일한 보증기간을 갖고, 성능은 유사하면서도 부품 가격은 30~60%에 불과해 자동차 수리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서울 성수동에서 자동차공업사 보배모터스를 운영하는 여운광 대표는 “품질인증 재제조 부품은 순정품과 같은 성능을 보장해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특히 헤드라이트, 본네트, 범퍼 같은 외장재는 인증 재제조품으로 교체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제조품 시장은 미국과 유럽 등에 견줘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내 시장 규모는 자동차(8천억원)를 포함해 1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미국(52조원)과 유럽(47조원) 등 선진국보다 시장 규모가 미미하다. 무엇보다 대상 품목이 제한적이다. 항공기부터 의료기기, 가구 등 모두 120여개 분야에 이르는 미국과 달리 대부분의 품목이 자동차 부품과 토너 카트리지, 건설기계 부품 등 3개 분야에 그치고 있다. 특히 범퍼와 휀더처럼 자동차 수리 품목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장품은 자동차 품질인증 대상에서 빠져있다. 품질인증 재제조 부품을 이용할 경우 보험사에서 부품값의 20%를 돌려주는 제도까지 시행 중이지만, 이마저도 품목 수가 적고 소비자들이 잘 모르다 보니 이용 실적은 극히 저조하다.

보험 수리 과정에서의 손실도 만만찮다. 국내 보험업계 집계를 보면, 상위 4개 손해보험사가 지난해 자동차 수리비로 지급한 보험금 가운데 부품 비용은 2조4천억원으로 전체 보험금 가운데 부품비 비중이 절반을 차지한다. 자동차 보험료는 일반적으로 과거 3년 동안의 사고 건수·금액 등을 기준으로 할인 또는 할증되는데, 과다한 부품 비용은 보험료 인상의 요인이 된다. 다시 말해 수리비용을 확 떨어뜨려 보험료를 낮출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재제조품 사용을 활성화하면 자원과 에너지 절약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자동차부품재제조협회는 국내 차부품 6종과 토너 카트리지 4종을 대상으로 재제조할 경우 신품 대비 연간 1만7천t의 자원사용 절감과 3만5천t의 이산화탄소(CO2) 발생량을 저감시킬 수 있다고 분석한다. 박임호 한국자동차부품재제조협회 이사는 “국내·외 여러 연구결과 재제조의 친환경적 효과가 검증된 바 있다. 재제조 부품을 신품과 비교하면 70~80% 이상 에너지와 자원 낭비를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80% 이상 감축시킨다”고 말했다.

특히 자동차 재제조 산업은 분류와 해체 공정의 대부분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라 일반 제조업 대비 3배 이상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직 초기 단계여서 생산 시스템을 체계화할 경우 시장 확대 여지가 많은 분야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김영춘 박사는 “재제조품은 소비자의 수리비용을 낮출 뿐만 아니라 자원을 아끼고 고용을 늘리는 등 부수적인 효과가 많다”며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품목을 확대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히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A/S시장’ 열어 재제조 중소업체와 상생 필요

2005년 육성 법근거 마련됐지만
대기업 부품시장 독과점에 ‘발목’

2000년대 이전까지만해도 중소업체들이 재생품이나 재제조품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었다. 대기업이 부품시장까지 장악한 독과점 구조 아래서 이른바 ‘애프터마켓 시장’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원인 중 하나다.

정부가 재제조 부품 시장을 소비자 편익과 자원순환, 일자리 문제로 보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당시 정부는 ‘환경친화적 산업구조로의 전환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재제조’를 정의한 뒤 관련 산업 육성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국가기술표준원에서 품질인증 마크를 발급하는 등 국가 품질인증제도도 도입했다. 하지만 경제·환경적 측면의 장점에도 재제조 부품을 제대로 알고 활용하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다. 보험 수리 방식에서 기인하는 심리적 특성과 재제조 생산·유통 인프라 부족 등 다양한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그동안 정책 홍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재제조 부품은 완전히 부수거나 녹여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재활용이나, 한번 사용한 것을 다시 재사용하는 중고품과 달리 수거된 부품을 분해해 세척한 뒤 일부 모습을 바꾸고 조립하는 일련의 제조 공정을 거쳐야 한다. 공정 과정에서 수작업이 많다보니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현재 국내에서 재제조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중소업체들은 1400여개로 추산된다. 10인 미만의 영세업체들이 대부분이지만 정부는 동반성장 차원에서 대기업과 이들 중소업체 간 상호협력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자동차의 경우 부품공급 의무기간은 평균 8년이지만 폐차까지 운행기간은 평균 13년이다. 이 격차로 인한 공백을 재제조 부품이 메울 수 있다. 대기업은 애프터서비스(A/S) 시장의 문을 중소업체들에게도 열어 비용 절감은 물론 소비자 신뢰 제고도 기대할 수 있다.

신호정 생산기술연구원 자원순환기술지원센터장은 “우수한 재제조 제품 생산과 판매를 위한 정부 정책과 산업 기반이 아직 미흡한 측면이 있고, 한번 사용했던 제품을 다시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는 소비심리도 여전하다”며 “정부와 민간이 재제조 산업 육성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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