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08 18:35
수정 : 2019.09.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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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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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경제의 창
또 도마 오른 자동차 부품 구분
대기업들 법·제도 근거 없이
OEM제품에만 ‘순정품’ 용어 사용
중기 규격품에 ‘불량품’ 인식 심어
시장독점·가격폭리 구조 유지
업체 장삿속에 정부는 미온적 대응
참다못한 소비자 시민단체들
공정위에 조사·시정 요구 나섰지만…
버틸 땐 강제할 방법 마땅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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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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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순정품은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차주들은 이런 생각으로 차량 수리를 맡길 때 비싼 ‘순정부품’을 쓰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차이는 거의 없다. 지금까지 관련 기관의 시험 결과는 ‘순정품’과 ‘비순정품’, 즉 완성차 업체의 주문자생산제품(OEM)과 중소업체에서 판매하는 인증 부품은 성능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일반 소비자들의 ‘순정품 선호’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먼저 소비자·시민단체들의 실태 조사 결과를 보자. 최근 참여연대가 시중에서 판매되는 브레이크 패드와 에어크리너, 에어컨필터, 배터리, 엔진오일, 전조등 등 모두 6개 항목을 수거해 대기업의 오이엠 제품과 중소업체의 인증 부품 가격을 비교했더니, 대기업이 자칭 ‘순정품’으로 표시하는 오이엠 제품과 정부 규격품인 중소업체 인증 부품 사이 가격 격차가 최대 5배나 났다. 제동 부품인 브레이크 패드의 경우 한국지엠(GM) 제품의 가격은 중소업체 인증 부품과 최대 4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현대차에 들어가는 항균 필터는 정부 규격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중소업체 제품과 최대 4.1배, 기아차의 항균 필터는 최대 3.8배 차이를 보였다. 르노삼성차의 전조등은 최대 5.1배의 가격 차이가 났다. 이 조사는 참여연대가 2013년 실시한 녹색소비자연대의 선행 조사를 바탕으로 같은 항목에 대해 자동차정비협회의 협력을 받아 지난 7월 정비업체 방문·전화 조사, 전산망 조회 등의 방법을 사용해 진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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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만큼 성능 차이도 클까? 지금까지 나온 관련 기관의 시험 결과를 보면 순정품과 규격품의 성능 차이는 거의 나지 않는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벌인 조사에서 인증 부품의 성능은 순정품에 비해 낮지 않고 일부 제품은 동등 이상의 성능을 갖고 있었다. 당시 녹색소비자연대는 한국자동차부품연구원에 성능 테스트를 의뢰했는데, 브레이크 패드와 에어크리너의 성능이 부품 브랜드와 무관하게 소비자들이 필요로하는 기능을 사용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자동차부품협회가 신청자로부터 제출받은 보험개발원장 명의의 인증시험 성적서를 보더라도 순정부품과 인증 부품의 성능이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 쏘나타와 그랜저, 산타페 휀더의 경우 오히려 인증 부품이 순정부품의 인장강도보다 10% 이상 뛰어났다. 익명을 요구한 차 정비업소 대표는 “완성차 업체들이 자칭 정품이라고 하는 순정품과 정부 규격품의 성능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홀로그램만 붙었을 뿐 거의 똑같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이 비싼 순정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걸까? 먼저, ‘순정품’이란 용어의 문제다. 완성차를 생산하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들이 자신의 제품에 순수하고 올바름이라는 뜻의 ‘순정’(純正)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순정부품’이라는 용어를 표시·광고함으로써, 다른 제품을 쓰게 되면 불량이 생길 것이란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는 점이다. 반면 중소업체의 인증 부품이나 규격품에 대해선 ‘순수하지 않고 올바르지 않음’이라는 뜻의 ‘비순정부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마치 성능이 떨어지거나 불량품인 것처럼 오인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 보수용(A/S) 부품은 관행적으로 ‘순정부품’ 또는 ‘비순정부품’으로 구분돼 불리고 있는데, 법적·제도적 근거가 없는 완성차 업체의 자의적 용어사용에 불과하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인 김남주 변호사는 “이런 용어사용 관행이 굳어짐에 따라 일반 소비자들은 비순정부품을 안전성이 낮다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오인하게 되고, 완성차 업체들은 전속적 거래구조를 통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규격품 등에 비해 높은 가격을 받으면서 폭리를 취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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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지정 수리업체인 블루핸즈 매장에 붙은 현대모비스 순정부품 포스터. ‘자동차 성능! 그 어느 것도 순정품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순정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마치 자사 순정부품을 사용해야만 안전하고 최상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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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품 문제는 그동안 소비자단체 등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온 이슈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감에서 단골 소재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다른 이슈에 묻혀 유야무야될 때가 많았다. 참다못한 소비자·시민단체들은 해당 업체들을 지난 5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윤영미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소비자단체들이 수년 전부터 ‘순정부품’이라는 용어를 개선할 것을 지적하고 소비자 선택권 보장을 위해 순정부품과 비순정부품의 공임과 부품가격을 게시해 알기 쉽게 해야 한다고 요구해왔으나 6년이 지나도록 전혀 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시정조처를 요구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순정품이라는 용어 자체가 편견을 심는다며 두 차례 걸쳐 순정품이라는 말 대신 오이엠 제품이라고 쓰도록 권고한 바 있지만 업체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다. 국내 대표적인 부품업체 현대모비스는 지금도 자사 누리집을 비롯해 부품 포장재나 제품 설명서, 심지어 고속도로 주변 입간판 광고물을 통해서도 순정품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업체들의 장삿속과 당국의 미온적인 대응이 변하지 않는 한 순정품에 대한 오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소비자·시민단체들의 생각이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개선은커녕 지금도 순정품이라는 부당한 광고를 통해 더 큰 폭리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높은 수리비 거품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모비스는 “단순 수익 위주 사업인 시중품과 달리 순정부품은 소비자기본법상 ‘자동차가 단종된 뒤 8년간 부품공급’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책임사업이라 가격 차이 발생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순정품’이라는 용어 사용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단어”라고 했다.
현대모비스가 기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사용 중단을 강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지금까지 ‘순정부품’ 표시·광고에 대한 제재나 규제가 전무할 뿐 아니라 공정위가 당장 표시·광고를 중단하라고 명령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소비자·시민단체들은 당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중소업체 규격품과 성능 차이가 없는데도 소비자들에게 대기업 순정품만 쓰도록 강요하는 시장 구조는 바로잡아야 한다”며 “공정위는 조속히 보수용 부품 용어개선에 착수해야 하고, 순정부품 구매 강요로 왜곡된 부품 시장의 거래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실태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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