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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1 18:08 수정 : 2019.08.02 09:28

고은영
녹색당 미세먼지 기후변화 대책위원장

“에어컨 좀 줄여주세요. 춥습니다.” 지난 6월 말 국회에서 울려 퍼진 요청이다. 기후위기가 닥쳐 전세계가 불타는 가운데 기후변화 대응 국가 전략을 논하는 전문가 토론회였다. 폭염에도 200여명의 시민이 참석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의실이 너무 추웠다. 행사가 시작되자 슈트 차림 의원들이 사진을 찍고 천천히 사라졌다. 이후 시민사회계, 교육계 토론자들이 주최 쪽에 여러번 에어컨을 줄여달라 요청했다. 시원하고 쾌적한 국회의원회관에서 전문가들이 느긋한 태도로 기후변화를 논하던 그날, 서울의 온도는 31도를 기록했고, 노동자와 농민 8명이 일하다 쓰러졌다.

“폭염에 헬멧 쓰고 아스팔트를 달리면 질식할 것 같습니다.” 지난 25일에는 라이더유니온(플랫폼 배달 노동조합)이 폭염수당 100원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라이더유니온, 녹색연합이 10개 도시의 배달 노동자 체감온도를 측정했는데 폭염 때는 40도를 넘는단다. 이들은 폭염, 폭우 시 작업중지권도 보장받고 싶어했다. 사실 작년부터의 요구 사항이었지만, 이들의 노동기본권을 입법하는 정당은 아직 국회에 없다. 행정부인지 국회인지 플랫폼인지 알 수 없는 고용자에게 요구하는 자리였지만, 정작 라이더들은 시민들을 향해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편히 쉬고자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지친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맞은편에서 연신 부채질을 하는 카메라 기자들, 뜨거운 바닥에 앉아 타이핑을 하는 젊은 기자들, 피켓을 든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날, 어딘가에서 12명이 또 쓰러졌다.

“여름에는 변변한 선풍기 하나 없는 터미널에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폭염을 뚫고 배송하느라 뛰어다닙니다.” 전국택배노동자들도 8월16일을 택배 노동자들의 여름휴가일로 지정해달라고 나섰다.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지지 캠페인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공감한다며 쇼핑몰에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이냐, 주문 자체를 미루면 되는 것이냐, 제도화할 수 있는 것이냐 등 댓글을 달았다. 제도를 만드는 자들이 현장을 외면한 채 침묵을 지키는 사이 사람들은 서로를 지키고 응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스스로 고민했다.

기후위기 시대. 가장 빈곤하고 연약한 지역과 계층이 가장 먼저 공격당한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쓰러진 사람들의 기록을 매일 만난다. 나는 위기를 피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모두를 우리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우리가 삶을 포기하거나 다치지 않도록 서로의 곁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들에게 폭염수당을 기꺼이 내거나, 플랫폼에 지출을 하라고, 여름휴가를 달라고 함께 요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믿는다. 이미 우리가 너무 뜨거우니까. 기후위기를 함께 맞고 있는 평범한 우리는 이미 연대할 마음이 있다. 애석하게도 법과 제도가 없을 뿐이다.

개혁되지 않은 자들이 시원한 국회에서 주무르는 법과 제도는 매번 연대의 기회를 차단한다. 그들은 결코 기후위기를 말하지 않는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가 폭염 작업중지 기준을 35도에서 38도로 올렸다. 관급 공사에 한해 지급하는 작업중지 보전 예산은 올해부터 38도여야만 보조되고, 위탁을 주는 우리는 걱정의 마음을 거세하며 또 다른 우리에게 작업 지시를 해야 한다. 이에 대해 7월 대정부 질문에서, 그 누구도, 정의당조차 단 한번도 지적하지 않았다. 다음 총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이 폭염을, 다가올 겨울을 견디며 생존을 위해 각자도생의 삶으로, 삶으로 내몰릴 것이다.

같이 살기 위하여 대항해야 한다. 9월21일 예정된 대규모 전국 기후행동을 위해 전통적 환경단체 외에도 노동과 농민·인권·종교단체 50곳 이상이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꾸렸다. 이제 시작이다.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의 네트워크는 더 넓어질 것이고 더 강해질 것이다. 같이 사는 마음이 우리를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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