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4.11 17:48 수정 : 2019.05.10 14:11

고은영
녹색당 전 제주도지사 후보

쓰레기가 귀환했다. 우리나라에서 매립도, 소각도 하지 못한 쓰레기 수천톤이 필리핀 밀수출에 실패한 채 바다를 떠돌다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보상을 요구하던 선주는 제주산 쓰레기도 필리핀에 보냈노라고 폭로했다. 필리핀은 지난해 보라카이섬 폐쇄라는 극단의 행정 조처를 통해 오염과 싸운 국가다. 과잉 관광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이웃 섬나라에, 관광객이 버리고 간 제주산 쓰레기를 수출한 셈이다. 제주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망신이냐며 낯을 붉혔고, 도의원들은 행정부를 무섭게 질타했다. 이 과정에서 귀환 쓰레기와 같은 종류의 압축포장폐기물 5만2천톤이 제주 야적장에 방치되어 있음이 추가로 밝혀졌다. 3년을 소각해야 하는 양이다. 제주는 지금 ‘쓰레기 리턴스’가 불러온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귀환하는 것이 쓰레기뿐일까. 미세먼지, 이상고온과 건조로 인한 산불, 지하수 고갈 등 다양한 생태적 위기는 지구 전역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리턴스 시리즈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정치 시계는 돌아간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우리는 수많은 약속의 리턴스도 마주한다. 수백곳의 도로가 뚫리고 케이블카가 세워지며, 철도·공항·항만이 건설되는 모습이 정치인의 말 속에서 연기처럼 피어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빠르게 전국을 누비며 더 많은 일을 하거나, 목 좋은 곳에서 장사를 해 가족을 먹여야 하므로. 그러나 약속의 단물은 부동산 하나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지 않는다.

여기, 성공적으로 부활한 토건 망령이 있다. 제주 제2공항이다. 지역에서 떠돌아다니던 이 씨앗은 책임윤리 없던 한 정치인의 입을 통해 사회에 배태됐다. 10여년 전 제주도지사가 신공항 건설을 국가에 건의한 순간이다. 그 건의를 시작으로 국토부는 제4차, 제5차 공항개발중장기종합계획에 새로운 제주 공항을 추가했고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도지사와 함께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1600만명. 하와이나 오키나와의 두배다. 경제 활황도 잠시, 제주는 관광의 역습을 맞고 있다. 오버투어리즘이다. 29개 쓰레기 매립장 대부분이 조기 사용 종료됐고, 섬의 생명수인 지하수는 관측 이래 최저를 기록 중이다. 하수처리장이 포화돼 오수가 무단 방류됐고, 마을어장이 오염돼 해녀들도 물질을 못 하고 있다. 지난해 대형 관광지 인근 4개 마을의 맨홀들에서 오수가 역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사람들이 쫓겨나기 시작했고, 환경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섬의 관문을 늘려야만 하는지 주민들이 묻기 시작했다.

섬에도, 마음에도 임계점이 있다. 진작부터 주민들은 생태적 조건에 맞춰 재활용 요일 배출제, 전 차종 차고지 증명제, 렌터카 총량제, 환경보전기여금 논의 등 각종 수요관리 정책을 수용하며 불편을 감내하고 있었다. 관광산업에 기대는 만큼 1인당 쓰레기 배출량 전국 1위의 오명, 부동산 가격 급등도 인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공감 없이 공항 건설을 강행하는 대통령과 도지사에게 주민들은 실망하고 있다. 최근 공항 건설 반대 여론이 70%에 달했고, 쓰레기 귀환 이후 이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삶의 행복을 간명하게 인식하고 두개의 공항은 필요 없다는 주민들과, 앞으로 리턴스의 시대에 살아갈 미래 세대에게 좀 더 근사하고 구체적인 약속이 필요하다. 쓰레기와 싸우는 용감한 어벤저스가 되겠다는 선언, 공항 마피아로부터 막대한 예산을 지켜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보육 천국을 만들겠다는 약속, 아파트와 도로 개발자들로부터 미세먼지를 저감하고 빗물을 머금는 도시공원과 비자림로를 보호하겠다는 약속 같은 것 말이다. 그 약속은 10년 뒤, 20년 뒤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우울한 리턴스의 시대, 희망이 시작되는 지점을 찾는다면 제주의 제2공항 반대 운동부터가 아닐까. 시간축이 긴 정치가 필요하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고은영, 녹색으로 바위치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