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4 14:49
수정 : 2020.01.0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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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케이스포츠(2K Sports)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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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15) 돈, 스포츠,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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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케이스포츠(2K Sports)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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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엔비에이(NBA)를 다시 보고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엔비에이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는 마이클 조던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 다시 엔비에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게 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테픈 커리 때문이다. 그는 부족한 신체능력을 정교하고 거리에 얽매이지 않는 3점슛으로 돌파해 2년 연속 엠브이피(MVP)를 차지한 바 있는 당대 최고의 인기 선수다. 부족한 신체능력이라곤 하지만 커리의 키는 193㎝로 평범한 이들에게는 충분히 거인이다.
스포츠에 흥미를 느끼면 몸이 근질근질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3점슛은커녕 골대 밑에서 던지는 공도 번번이 림을 벗어나고, 발목이나 무릎의 건강을 더 염려해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게임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로 화려한 플레이를 재현해보는 것은 물론이고, 나만의 드림팀을 만들어서 리그를 제패하고, 나를 닮은 선수를 만들어 은근슬쩍 레전드들의 반열에 끼워 넣을 수도 있다. 아, 물론 연골과 관절의 보전도 아주 중요한 장점이다.
세계 최초의 게임이 테니스를 소재로 했던 것처럼(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①테니스 포 투 참고), 스포츠는 언제나 게임의 핵심 소재 중 하나였다. 게임업계는 당대의 최고 기술력을 동원해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스포츠를 재현하고자 노력해왔다. 축구, 야구, 농구, 테니스, 골프, 프로레슬링, 이종격투기, 미식축구 등의 인기 스포츠 종목은 예외 없이 수많은 게임이 존재한다. 엔비에이의 경우는 이에이스포츠(EA SPORTS)에서 발매하는 엔비에이 라이브(LIVE) 시리즈와, 투케이(2K)에서 발매하는 농구 시뮬레이션 게임 엔비에이 투케이 시리즈의 라이벌 구도다. 그런데 이에이스포츠가 현재 진행 중인 2019∼2020 시즌을 다룬 시리즈를 발표하지 않아, 올해의 엔비에이 게임은 투케이 20이 유일하게 되었다.
사실 이번 게임에 대한 평을 찾아보면 역대급으로 악평 일색인지라, 섣불리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게임과의 인연은 크리스마스 세일로 결정되어버렸다. 결론적으로 플레이 자체는 만족스러운 편이다. 하지만 진짜로 놀라운 면은 다른 데에 있다. 투케이 시리즈에는 전통적으로 마이 커리어 모드가 있다. 선수를 새로 만들어서 엔비에이에서 뛰어보는 선수 시점의 플레이다. 대학농구팀에 소속되어 있다가 엔비에이 선수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스토리 부분과, 엔비에이 선수가 되어서 코트에서 활약하는 부분으로 나뉜다. 캐릭터에 배경을 부여하는 스토리 모드도 인상 깊었지만 그보다는 커리어 모드의 몰입감이 생각보다 상당하다. 빗나간 슛이나, 상대 공격수를 놓쳤을 때의 결과가 순식간에 팀의 상황에 반영되고, 좋은 기록을 내기는 어렵다. 플레이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루키가 되는 경험을 제법 충실하게 제공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 게임이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이 여럿 있다. 이는 투케이 20에 쏟아진 혹평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게임에는 소액결제, 확률형 아이템을 비롯하여 부분 유료화가 가능한 모든 요소가 다 존재한다. 이뿐만 아니라 일일 이벤트로 룰렛을 돌리고 실제로 진행되는 엔비에이 경기의 승패를 맞히는 (스포츠 토토처럼) 이벤트도 있으며, 현금으로도 구입이 가능한 게임 내 돈을 두고 다른 플레이어와 내기 농구를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어떤 게이머는 이 게임을 일컬어 ‘카지노인데 농구도 할 수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서 각종 스포츠 브랜드와 이온음료 등을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집어넣어 일종의 피피엘(PPL) 광고도 이뤄진다. 그야말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있는 느낌이다.
2000년대 초에 견주면 이제 스포츠 게임은 선수들의 얼굴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고, 그들의 복잡한 움직임도 그럴듯하게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이렇게나 충실하게 재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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