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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6 19:21 수정 : 2019.12.07 02:32

아르카나 택틱스 이미지. 티키타카 스튜디오 페이스북 갈무리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15. 작가 블랙리스트 논란 ‘아르카나 택틱스’

아르카나 택틱스 이미지. 티키타카 스튜디오 페이스북 갈무리

게임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게이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딱히 없다. 때로 이런 사실은 낭만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살아온 배경도 조건도 다르지만, 게임 속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고 같은 목표를 향해 진격하는 동맹군(혹은 철천지원수)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덕분에 자식뻘의 게이머들과 어울리며 게임을 즐기는 중년 남성이나, 게임 스트리머로 활약하는 노년의 여성 같은 이들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 들려오는 게이머들의 이야기는 훈훈보단 흉흉에 더 가까운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게이머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편견들의 몫이 분명히 있다. 게임을 정당한 취미로 여기지 않거나, 종교나 도덕을 앞세워 게임을 금지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이 계열의 이야기 중 최근에 알게 된 것은 게임이 살인에 대한 허들을 낮춘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저자들은 미국의 인기 아동 만화인 <파워퍼프걸> 역시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게임이 우리의 뇌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책의 저자가 미군의 예비역 중령인 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언제나 세계 어디선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군보다도, 전쟁에 대한 실감 나는 묘사로 유명한 ‘콜 오브 듀티’(액티비전 블리자드사의 인기 1인칭 슈팅게임 에프피에스(FPS) 시리즈)가 더 문제란 말인가?

그러나 2016년 이후 게임업계와 게이머들이 합작해 만들어내고 있는 ‘메갈 사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최근 ‘아르카나 택틱스’라는 모바일 게임에서는 일군의 유저들이 게임에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 중 일부가 ‘메갈’이라며 소동을 벌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게임사의 대응이었다. 게임사는 유저들의 항의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가 리스트를 찾고 그 작가들을 제외하고 섭외했지만 미처 다 걸러내지 못했다”는 요지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러니까 게임회사가 이른바 업계에 도는 ‘블랙리스트’를 통해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들의 사상이나 신념을 빌미로 차별을 저질렀다는 것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2016년 넥슨이 자사 게임 캐릭터 목소리를 녹음한 여성 성우를 페미니즘 논란으로 교체한 이후 페미니즘을 옹호하거나 넥슨에 문제를 제기한 업계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은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여성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연대(WFIU) 로고.

최근에 본 또 다른 인상적인 사진은 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콘퍼런스에서 한 발표자가 20대 남성을 위한 ‘유저 친화적’인 게임을 만든다며 키워드로 ‘가슴’ ‘19금’ 따위를 거대한 화면에 늘어놓고 있었던 장면이다. 경악스러운 지점은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이들을 포함해 게임회사, 이용자, 관련 업계 사람들 중에 이런 것이 문제고 비상식적인 행태라는 것을 지적하는 이들이 소수이며, 이들의 지적에도 이런 일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게임의 사회적 정당성을 입증하는 근거로서 거대한 규모의 게임시장이 언급되곤 하는데, 이런 행태는 이 시장이 사회적 가치에 얼마나 둔감한지, 또 얼마나 아마추어적으로 굴러가고 있는지를 입증하는 꼴이다.

사람은 모두 즐거움을 찾고 돈을 벌길 원하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허용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수요가 존재하는데도 백인 전용 식당을 허가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인종차별이고, 차별이 공동체를 해치는 치명적인 문제임을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업계는 유저들이 원한다는 핑계로 게임업계를 일군의 남성을 위한 성차별적인 업계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더 많은 사람이 차별 없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한편, 게임업계를 고립시키고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에 대한 저항이며, 성차별이 사라지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다. 뇌피셜로 배우는 현대 정치 사상사는 페미니즘의 정당성과 권위에 조금의 손상도 입히지 못한다. 게임업계 여성 노동자들의 에스엔에스(SNS)나 뒤지고 다닐 시간에 게임이나 열심히 하길 바란다. 그 레벨에 잠이 오냐?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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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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