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6 09:29
수정 : 2019.10.06 09:44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⑫게임 구매로 만끽하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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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랜드3는 판도라라는 행성에서 전설의 볼트를 찾는 게임이다. 원하는 게임이 있다면 할인 시즌을 기다리지 말고 구매하는 자유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다. 보더랜드3 공식 누리집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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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작 게임이 발매되면 게이머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기다렸던 게임을 바로 구매해서 즐길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할인의 그 날을 기다릴 것인가? 요즘 게임 가격은 대형 개발사의 대작게임(AAA급 게임) 일반판을 기준으로 약 60달러다. 한국 돈으로는 7만원이 넘는 금액. 물론 훌륭한 게임은 7만원의 값어치를 하고도 남지만,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편한 금액은 아닌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사놓고 아직 플레이하지 않은 게임 목록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새로운 게임을 정가로 사는 것에 왜인지 모를 가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래서 대부분은 게임을 찜해두고 할인 소식을 기다린다. 한해에 가장 큰 정기 세일은 여름·겨울에 있다. 하지만 봄가을에도 세일이 있고, 게임 개발사나 유통사의 브랜드 세일도 있으며, 서로 다른 게임 판매 사이트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세일이나 심지어 무료배포 행사도 있다. 가끔은 이런 인내의 시간을 거치며 구매한 게임이 취향에 맞지 않아 사놓고 플레이하지 않은 게임 목록에 추가되는 씁쓸한 결말을 맞게 되기도 한다.
최근 나를 고민에 빠트린 것은 지난달 발매된 ‘보더랜드3’다. 보더랜드는 판도라라는 황폐한 행성에서 엄청난 보물과 힘이 잠들어 있다는 전설의 볼트를 찾는 ‘볼트 헌터’들의 모험을 그린 게임이다. 국가는 전 우주적 규모의 군수기업들로 대체됐고, 황무지와 늪지대에는 노상강도와 돌연변이 괴물만 득실거린다. 그래픽은 코믹스풍으로 연출되며 심각함 대신 막가는 비(B)급 유머로 가득하다. 주인공들을 포함해 멀쩡한 등장인물은 하나도 없다.
게임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슈팅액션이다. 등장하는 적들을 열심히 쏘다 보면 새로운 총들이 쏟아진다. 좋은 무기를 얻어 강해지는 것이 최종 목표지만 얻은 총이 어떤 총일지는 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제작진에 따르면 존재하는 속성들을 조합해 생성될 수 있는 무기 수는 1억개가 넘는다.
나는 보더랜드 1·2편을 모두 즐겼던 팬이다. 3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위에 이야기했던 할인과의 내적 갈등이 나를 붙잡았다. 게다가 게임 리뷰들을 보면 게임은 여전히 화끈하지만 과거 게임들에 비해 크게 변한 것이 없으며, 달리고, 쏘고, 줍는 플레이가 더욱더 발전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처음 보더랜드가 나왔을 때만 해도 1인칭 시점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게임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돼 비슷한 게임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과연 이 60달러짜리 신작은 나에게 과거와 같은 즐거움을 줄 것인가?
유튜브에서 게임 플레이 영상을 찾아보며 고민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전 새벽에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나는 어른이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돈을 벌고 있는데, 고작 나를 위해 이것 하나를 못 산단 말인가! 내가 이러려고 그 지겨운 청소년기를 버텨냈던가!?
결국 보더랜드3는 내 라이브러리에 추가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맛집으로 비유하자면 제육볶음과 돈가스를 파는 식당, 그런데 그 식당이 아주 요리를 잘하는 집인 그런 느낌이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어른의 자유다. 비록 자유를 만끽하다가 인생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이중의 자유일지라도.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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