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7 09:46
수정 : 2019.07.07 09:57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8.디아블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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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 시리즈, 발매연도 1996(1편 기준). 제작사 블리자드 누리집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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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사의 롤플레잉게임(RPG) 디아블로는 출시되자마자 화제가 됐다. 장중하고 멋진 음악, 음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그래픽,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진감 넘치고 흡인력 있는 게임플레이. 하지만 동시에 논란에 휩싸였다. 과연 이 게임을 롤플레잉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스토리는 없다시피 하고, 매력적인 동료 캐릭터도 존재하지 않고, 마우스나 딸각거리고 싸우면서, 더 좋은 무기를 줍는 것이 전부인 게임을!
불만의 원인은 롤플레잉이라는 장르의 기원과 관련이 있다. 롤플레잉의 가장 큰 분류는 테이블톱 롤플레잉(TRPG)과 컴퓨터 롤플레잉(CRPG)이다. 테이블톱 롤플레잉은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이 창작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모여 대화와 주사위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것을 컴퓨터로 구현한 것이 컴퓨터 롤플레잉이다. 즉 이 장르의 본령은 이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역할놀이’다. 테이블톱 롤플레잉이 컴퓨터 롤플레잉으로 구현될 때 가장 많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와 주어진 상황에 대한 자유로운 대응들이었다. 그런데 디아블로는 그나마 남아 있던 테이블톱 롤플레잉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해버리고 액션게임이나 다름없어졌으니 이들의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어질 만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몇년 뒤에 등장한 2탄은 1탄보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됐다. 2탄은 더 박진감 넘치고 캐릭터마다 개성이 뚜렷한 게임플레이를 선보였고, 스토리라는 것이 거의 없었던 1탄과는 다르게 영화 같은 시네마틱 스토리 영상들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오죽하면 한국에 디아블로2가 나오고 나서 그 유명한 기술 ‘월윈드’(whirlwind·휠윈드로 많이 알려짐)를 도느라 학사경고를 받는 대학생들의 수가 급증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월윈드(회오리바람)는 디아블로2의 캐릭터였던 바바리안이 무기를 들고 빙글빙글 돌면서 적을 공격하는 기술이다.
더 이상 디아블로가 롤플레잉게임인지를 논쟁하는 것이 의미 없어졌을 즈음에 디아블로 3탄이 나왔다. 디아블로3는 세계적으로 약 3천만장을 판매하며 시리즈 중 가장 많은 판매액을 기록했다. 이 시리즈를 기다린 수많은 이들이 앞다퉈 게임을 구매했고, 시디(CD)패키지 버전을 구매하기 위해 전날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열정까진 없어서 디지털 다운로드로 편하게 게임을 구매한 나 역시 한동안 디아블로3를 즐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게임을 하다 말고 자꾸 잠이 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서겠거니 세월의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온라인상에서 비슷한 증언이 쏟아졌다. 대체 왜 졸린가를 두고서 곳곳에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디아블로3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피시게임 수위권에 올랐음에도 ‘수면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어야 했다.
최근 블리자드가 4탄을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대체 무슨 수로 3편에서 내가 죽였던 악마들을 다시 부활시킬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같이 나이 들어가는 시리즈가 있다는 것은 묘한 위안이 된다. 물론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한 나의 본체와는 다르게, 최신 기술과 함께 훨씬 더 젊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겠지만 말이다. 디아블로6가 나올 때쯤 되면 ‘내가 디아블로1 하던 시절엔…’ 같은 얘기도 할 수 있게 될까.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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