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3.02 10:19 수정 : 2019.05.04 11:51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② <몬스터 헌터: 월드>

게임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성취감은 사람을 고양시키는 중요한 감정이다. 물론 많은 부모들과 어른들은 성취감을 전교 1등이나 명문대 진학에서 얻지 않고 게임에서 얻는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저런 것으로만 성취감을 얻어야 한다면 인류의 90% 이상은 패배감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 승자와 패자를 반드시 가려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패배자가 된다. 그리고 지금은 승자는 계속 승리하고 패자는 계속 패배하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시절이다. 그래서 성취감은 오늘날의 삶에서 꽤나 절실한 문제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게임에는 단계들이 있다. 하나를 넘어서면 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지고 하나하나 넘다 보면 끝을 보게 된다. 게이머라면 막혀 있던 단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넘어섰을 때 환호를 지르는 순간을 적어도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게 나를 취직시켜주거나, 내일 먹을 양식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살면서 그 정도의 리액션을 할 일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최근 나는 한 게임에 빠져버렸다. 캡콤사의 2018년작 <몬스터 헌터: 월드>다. 몬스터 헌터는 2004년 첫 작품을 시작으로 장장 15년을 이어온 캡콤의 대표 타이틀 중 하나다. 게임은 제목처럼 아주 직관적이다. 몬스터를 헌팅 하는 것. 거대하고 위협적이며 또 매력적인 몬스터들이 대자연 속에 살고 있고, 플레이어는 ‘헌터’를 조작해 다양한 무기로 몬스터를 사냥한다. 또 그렇게 사냥한 몬스터들은 무기와 갑옷의 재료가 된다. 이러저러한 설정이나 스토리가 있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전작들에 비해 엄청나게 친절해졌다고는 하지만 이 게임을 처음 접하면 갈팡질팡하게 된다.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14종류인데, 각각의 조작법이 모두 다르다. 몬스터들은 각각 패턴과 약점들이 있지만, 처음 하는 사람이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족보’를 구하는 마음으로 공략 영상을 찾아보지만, 저 사람들의 손가락과 나의 손가락이 얼마나 다르게 기능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방법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무 무기나 부여잡고 나가서 부딪혀보는 것이다. 정신없이 맞고 구르다 보면 게임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나의 승리다. 게다가 이 게임은 주인공의 능력이 점점 상승해 종반에는 먼치킨이 되는 게임들과는 약간 다르다. 장비는 강해지지만 엄청나게 강해지지는 않고, 주인공의 능력은 상승하지 않는다. 결국 손이 익숙해지지 않으면 게임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

이 게임이 내게 주는 쾌감을 정의하자면 ‘숙련의 즐거움’ 정도가 될 것 같다. 원래 숙련에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시간이다. 티브이프로그램 <생활의 달인>(SBS)에 나오는 숙련자들은 수십년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경력 같은 신입’을 원하는 요즘 시대에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능숙한 척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며 불안한 뜨내기처럼 살 수밖에 없다.

10년 넘게 글을 써도 언제나 마감 앞에 괴로워하는 것에 비하면, 게임은 숙련의 감각을 비교적 쉽고 즐겁게 맛보게 해준다. 물론 유튜브에 있는 진짜 ‘장인’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퍼포먼스에 비하면 나의 숙련은 초라한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다른 게임을 할 수는 있으니. 물론 여전히 내 손가락은 말을 안 듣겠지만.

사회학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