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21 20:12
수정 : 2019.04.19 10:11
[책과 생각] 권혁란의 관계의 맛
도쿄를 여행 중이던 어느 날,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신주쿠 숙소로 찾아왔다. 대뜸 그가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시집 한 권을 사서 보내주실 수 있나요? 그러면 정말 당신에게 색 쓰겠습니다.”
어리둥절했다. 정현종의 ‘고통의 축제’에 들어 있는 구절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생의 기미(機微)를 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말이 기미지, 그게 얼마나 큰 것입니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만나면 나는 당신에게 색(色) 쓰겠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공(空) 쓰겠습니다... 편지란 우리의 감정결사(感情結社)입니다. 비밀통로입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시를 다 읽고도 당신에게 색 쓰겠다는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저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라는 말이 남아서 시집을 구해 부쳐주었다.
언제 어디서 들었을까. 사람의 듣는 능력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과 조건에 따라 선택적으로 잘 듣고 못 듣는다고 했다. 인간이 아주 작은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알았지만 너무 큰 소리도 전혀 들을 수 없다는데, 그게 시적, 선적인 표현인지 과학적인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큰 소리라야 오히려 못 듣는다는 것일까. 그때 특출한 능력이 없는 나는 작은 소리도 큰 소리도 못 듣는 것은 물론 아주 쉬운 말도 아주 큰 말도 이해를 못한 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설하고. 어쨌든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얼굴과 이 이름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어왔다. 좋아하고 미워하고, 운이 좋은지 사랑한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고, 물론 죽이고 싶도록 나를 싫어하는 이도 만났다. 귀가 어두워 관심을 쓰지 않으면 많은 소리를 놓치고 살았지만 그나마 문(장)해(독)력은 있다고 믿었다. 말보다 활자를 좋아해 끊임없이 수많은 당신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글은 소리만큼 힘이 세다. 단어는 짧아도 크다. 문자는 뼈와 살에 새겨진다. 스무 살 이후 크고 강하고 힘센 문장으로 쓴 편지를 받았는데 아직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세 개의 문장이 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쓰면 될 것을 ‘당신에게 색 쓰겠습니다.’로 표현하듯 시 같은, 경전 같은 단어가 들어 있는 세 통의 편지. 너는 나의 신탁이다, 넌 나의 로또, 너는 나는 우주야! 사랑을 표현하는 너무 큰 말들이었다. 말에 걸려 넘어지고 글로 사는 문자적 인간에게 당도한 그 큰 말들은 아직도 그 첫 발화자인 사람들과 풀어야 할 옹이 진 매듭이 되었다.
신의 말씀, 인간이 신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것, 신탁(神託). 신탁이라면 겨우 신탁통치결사반대와 파르나소스 산 델포이의 신탁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너는 나의 신탁이라는 말은 번개와 천둥처럼 뜨겁고 커서 오래 해독하기 어려웠다. 높은 산정에서 깊은 틈새의 가스를 마시고 신령한 기운으로 지혜의 말과 신묘한 예언을 하는 피티아란 말인가.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꿈을 아는, 거부 불가능한 공수를 내려주는 신녀란 말인가.
우주라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공간 시간의 전체, 유니버스. 생전 처음 보는 것을 찬탄하듯 열뜬 표정으로 넌 나의 우주라 쓰고 말했던 그 사람과 나는 그때나 이때까지 이토록 경이로운 우주에서 미소한 존재로 꿈틀거릴 뿐이다. 번호의 신묘한 조합으로 인생 전체가 바뀌어버리는 로또로 사랑을 표현한 말은 어쩌면 가장 크고도 허허로웠다. 그 사람에게 내가 로또였던 것은 정확했다. 그는 대박의 행운을 잡지 못했고 사실 로또를 사 본 적도 없었을 테니. 아직도 종종 그 말들이 엉킨 매듭에 침을 묻혀 만져본다. 글자로는 터무니없이 기뻤으나 너무 의미가 커서 안 들리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말들을 보내왔던 그들과는 현재도 근근이 관계가 이어지고 있으니. 그런데 그때 어떤 답장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권혁란 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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