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22 06:00
수정 : 2019.04.19 09:54
[책과 생각]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12가지 인생의 법칙-혼돈의 해독제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메이븐(2018)
제목부터 우선 지루하다. 목차를 읽으면 잔소리 일색이다. 내용은 지나치게 평범하다. 그런데도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베스트셀러 고공행진 중이다. 힐링 에세이가 점령했던 서점가에 지난해 말 혜성처럼 등장한 <12가지 인생의 법칙>. 워낙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킨 책이라 얼마간 인기를 끌 것이라고 짐작됐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출판 종사자들조차도 “꼰대 같은 조언을 늘어놓고 있는 이 책이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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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성공을 두고 출판 종사자들조차도 “꼰대 같은 조언을 늘어놓고 있는 이 책이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출처 조던 피터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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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대세인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저자인 조던 피터슨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180만명을 넘어섰고, 누적 조회 수는 7500만회에 달한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북튜버들이 올린 리뷰 영상, 강의 요약 동영상, 카드 뉴스 동영상,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1가지씩 나누어 소개하는 동영상 등, 국내에서 만들어진 동영상만도 수백개에 달한다. 유튜브에서 시작된 피터슨의 인기는 유튜브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전형적인 영미권 자기계발서다. ‘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법칙 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 ‘법칙 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 ‘법칙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책에 소개된 법칙들 몇 개만 읽어도 약간의 거부감이 생긴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이거나 혹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다가도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주장에는 솔직히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피터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부하고, 마르크스주의를 경멸하며,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거침없는 그의 주장에 대해 여러 반론의 목소리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보주의자는 ‘세상을 바꾸자’고 하고, 보수주의자는 ‘나 스스로를 바꾸자’고 한다. 보수주의자인 피터슨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서는 애써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 앞에 고통으로 가득 찬 인생이 펼쳐져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바꾸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나 스스로를 바꾸자’는 주장만 되풀이한다. 힘겨운 상황이라도 움츠러들지 말고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고 훈계한다. 어깨를 펴는 것만으로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되고 자신감이 상승하며,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강자로 인식하게 된다는 식의 주장은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이러한 방식으로 나약해진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며 혼돈의 시대를 헤쳐 가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가치관이 붕괴되고 세대 간 갈등이 격화되는 등,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표류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 그들 손에 쥔 나침반이 지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가늠해보자.
북칼럼니스트, BC에이전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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