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4 09:36
수정 : 2019.11.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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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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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회의 사람 참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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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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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밀레니얼 세대라는 걸 알고 기분 좋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의 비당파 연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10년간 ‘밀레니얼’이란 신조어의 명확한 구분을 살펴본 후 2018년께 발표한 자료를 보니 밀레니얼 혹은 ‘와이(Y)세대’는 1981년생부터라고 한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2000년도에 대학 문을 열고 들어선 세대부터 ‘밀레니얼’의 칭호로 불릴 수 있다. 1981년생인 나는 그동안 내가 ‘엑스세대의 끝물’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와이세대의 첫물’이 된 기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밀레니얼의 마지막은 1996년생이고, 그 이후 출생한 이들은 ‘제트(Z)세대’다. 기쁜 마음으로 1992년생 후배들에게 “알고 보니 우리가 같은 세대”라고 알렸더니 후배가 역정을 냈다. 후배는 “그 기준을 대체 누가 정한 거냐”라며 “내가 선배랑 같은 세대인 게 말이 되느냐”고 살짝 어이없어했다. 나는 더 놀리고 싶어서 “사실상 같이 늙어가는 친구니까 말 놓자”고 했더니 그 후배는 꼬박꼬박 극존칭을 썼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엑스세대 끝물’에서 ‘밀레니얼’로 마치 승진이라도 한 듯 들뜬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바로 밀레니얼입니다”라고 자랑하고 다녔다. 나와 비슷한 나이인 아내 역시 “엑스세대 끝물이라는 표현 정말 싫다”라며 “우리는 밀레니얼”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가깝게 지내는 1995년생 친구에게도 한껏 자랑을 했더니 반응이 무척 차가웠다. “나는 그 기준에 동의할 수 없다”라며 “사용하는 기기와 주로 쓰는 플랫폼을 기준으로 나눠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동년배 친구가 “우리는 인스타그램 세대고, 1980년대 출생한 이들은 싸이월드 세대라서 엄연히 세대 감성이 다르다”라고 못을 박았다. “개인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며 “태어나서 처음 산 모바일 기기가 시티폰이나 삐삐인 세대와 첫 휴대전화가 아이폰인 세대를 묶는다는 건 억지다”라는 후배도 있었다. 한밤에 여자인 친구에게 삐삐가 와서 언 발을 동동거리며 공중전화로 달려갔던 중학교 시절의 추운 겨울밤이 생각났다. 동전을 잔뜩 주머니에 넣고 공중전화에 매달리면서 10대를 보낸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폰을 쓰며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던 세대와 같이 묶이려 했다니, 미안한 마음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엄연한 밀레니얼이다. 이걸 포기할 순 없었고 자랑은 이어졌다.
1980년대 출생한 형에게 “형이랑 나랑은 세대가 다르다. 형은 엑스세대 끝물이고 나는 밀레니얼”이라고 했더니 이 형은 또 “밀레니얼을 정의하는 기준은 연구기관마다 다르다”라며 “어떤 연구에 따르면 나도 밀레니얼”이라고 선언했다.
과연 여러 기사를 찾아보니 1980년생부터 밀레니얼 세대에 포섭하는 연구가 있는가 하면 1970년대 후반 태생까지 포섭하는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건 미국 인구조사국의 기준이었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밀레니얼 세대를 1982년생부터라고 규정했다. 맙소사. 이 기준에 따르면 나는 밀레니얼이 아니다. 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며칠 사이에 엑스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오갔다. “나는 나 자신을 인스타그램 세대와 나 홀로 세대로 정의한다”고 말한 한 1995년생 친구의 말이 뜻깊게 다가온 이유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는 우리 세대를 엔(N)포세대로 규정하지만, 진지한 글을 싫어하고 직관적인 사진을 선호하는 ‘인스타그램 세대’, 혼자 술 마시고, 혼자 여행 다니고, 혼자 영화 보는 걸 멋지고 힙하게 생각하는 ‘나 홀로 세대’라고 불러 달라”고 말했다. 나는 가만히 구글의 창을 열고 ‘밀레니얼’을 찾아봤다. ‘소비 트렌드의 중심 밀레니얼 공략법’, ‘세계 인구의 25%, 소비자·유권자로도 막강’ 등의 내용이 검색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뭔가를 팔거나 표를 얻어내는 사람에게 중요한 말이다. 얼마 전까지 미국 기업들의 최우선 과제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성향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중 재밌는 구절이 있었다. 세계 최대의 참치브랜드인 ‘스타키스트’의 마케팅 부문 부사장이 “대부분의 밀레니얼은 심지어 캔 따개도 없다”며 밀레니얼 세대들이 참치 캔을 사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기사였다. 나 역시 통조림에 든 참치를 싫어한다. 그러나 “저는 밀레니얼 세대라 참치 캔을 싫어해요”라는 말은 틀리다. “참치 캔을 싫어하는 밀레니얼 세대입니다”라는 말이 맞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박세회(허프포스트 뉴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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