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9 18:27
수정 : 2019.12.20 02:34
김혜진 ㅣ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4살의 청년이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처음 들어간 직장은 고용노동부의 위탁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일자리가 없는 이들을 만나 취업 의욕을 높이고 직업을 연계하는 업무를 했다. 동료들에게는 늘 친절하고 씩씩했으나, 할당된 업무량이 많아서 힘들어하기도 했다고 한다. 과중한 업무와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이 청년 노동자는 며칠 후로 다가온 사업 점검을 앞두고, 12월5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뇌병변장애인 설요한씨의 이야기이다.
설요한씨는 올해 4월부터 시작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중 하나인 ‘동료지원가’ 업무를 맡아서 일했다.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실업 상태에 있는 또 다른 중증장애인들을 만나 취업지원을 하는 업무이다. 중증장애인을 직접 찾아서 만나고 여러 차례 상담을 하고, 자조모임도 만들고, 온갖 종류의 서류작업과 상담일지 작성도 한다. 그것도 월 60시간 기준으로 4대 보험을 제하고 66만원가량의 임금을 받으면서 말이다. 고용노동부는 업무를 위탁하면서 중증장애인이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을 제시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위탁을 받은 센터는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지급한다. 그런데 동료지원가가 할당된 업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고용노동부는 그만큼의 수당을 환수한다. 노동자가 이미 받은 월급을 빼앗아갈 수는 없으니, 업무를 위탁받은 센터에 그만큼의 비용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서류작업도 잘못되면 부정수급으로 간주된다. 결국 자신 때문에 센터와 동료들이 피해를 볼까봐 힘들어했던 설요한씨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죽음을 택했다. 비인간적 제도로 인한 사회적 타살이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사업이다. 중증장애인 중에 비경제활동인구가 많은 것은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중증장애인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고 자조모임을 구성하면 취업 의욕이 고취되어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장애인에게 맞는 일자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증장애인의 취업을 지원하는 그 일자리마저 장애인의 속도에 맞는 기준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실적에 미달하면 수당을 회수하는 제도를 만들 때, 정부는 효율성과 생산성 논리를 내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온갖 절차와 서류, 무리한 할당으로는 중증장애인의 취업을 제대로 지원할 수 없다. ‘장애인 취업지원’이라는 목표에 맞는 효율적 시스템도 아닌 것이다. 아마도 정부는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시혜적인 관점으로 ‘취업지원 일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일하는 노동자를 고려하기보다 도덕적 해이 방지에 더 힘을 기울이게 되고, ‘실적 압박’이라는 폭력적 방식으로 장애인 노동자들을 통제하려고 한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노동은 자신의 생계수단이자,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며,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것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이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따라서 중증장애인이 노동할 수 있는 수준의 속도와 방식으로 직무가 구성되는, 공공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설요한씨의 영정사진을 본다. 스물네살 젊은 얼굴이 그곳에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최선을 다했던 노동자, 장애인들이 자조모임을 만들고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했던 노동자. 그러나 잘못된 장애인 일자리 정책으로 목숨을 잃은 이 노동자를 기억할 것이다. 중증장애인 취업지원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혜가 아닌 일할 권리로서 장애인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 이 노동자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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