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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12 09:20 수정 : 2018.10.13 10:25

학살터에선 주인 잃은 검정 고무신 30여켤레가 발굴되었다.

군·경이 살해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

학살터에선 주인 잃은 검정 고무신 30여켤레가 발굴되었다.
수풀로 무성했던 시골마을 한 야산에서 포크레인이 땅을 파내는 소리가 요란하다. 1950년 한국전쟁 시기 세종시 연기면 일원에서 군·경에 살해당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이다.

유해 발굴단(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지난 9월28일부터 세종시 연기면 산울리(257-2번지, 옛 연기군 남면 고정리) 일원 야산에서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이곳은 68년 전인 1950년 7월7일 당시 예비검속으로 조치원경찰서에 수감돼 있던 보도연맹원 중 남성 약 100여명이 끌려와 총살된 장소다. 지난 10일 발굴 현장에선 민간인들이 경찰서로 끌려와 배급받은 듯한 동일 종류의 검정 고무신 30여개가, 유해와 당시 경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카빈소총 탄두 및 탄피와 함께 발굴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의 자료와 당시 목격자 및 주검을 수습한 참고인 등의 구술조사에 따르면 민간인들을 산 능선을 따라 일렬로 세운 뒤 끓어 앉힌 채 총으로 사살했다고 한다.

발굴 작업이 10월 15일로 끝나면 유해 발굴 지역은 25m 도로가 뚫린다.
박 교수는 “군인들의 전사자 유해 발굴은 국가의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면,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 발굴은 인류 보편적 ‘인권’ 차원으로 바라봐야 한다. 인권은 진보·보수 차원이 아니다. 인권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약속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오랜 시간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을 해오면서 제일 안타까운 점은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졌다가 없어진 ‘진실화해위원회’와 같은 법적으로 뒷받침되는 정부조직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해 매장지 일대에 한국주택공사는 25m의 연결 관통 도로를 뚫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도로와 건물이 들어서면 지금까지 찾아내지 못한, 억울하게 숨져간 이들의 유해를 영영 찾아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그동안 밝혀낸 민간인 학살 ‘킬링필드’는 168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정부 차원의 발굴은 13곳으로 끝났고, 민간인 공동조사단은 5곳(2018년 4월 기준)을 발굴했을 뿐이다. 시민들과 유가족, 일부 뜻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정부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자 유해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학살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모두 발굴되어 유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유해들 가운데 몇몇은 뼈 조각조차 찾을 수 없다. 유해 발굴 지역의 상수리 나무는 살아서 이식될 예정이다.
발굴단원들이 8부 능선을 따라서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지난해 세종국제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세운 희생자 위령비 옆에 도로 공사를 알리는 빨간색 깃발이 꽂혀있다.
지난 2008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과 세종특별자치시장이 세운 표지판. 이곳이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민간인 집단희생지'라고 알리고 있다.
한 고무신에선 이름 '송'씨를 표시한 검정 고무신이 발굴되었다
검정고무신 주인의 것으로 보이는 안경과 그옆에선 칼빈 탄두와 탄피가 발굴되었다.

세종/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8년 10월 12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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