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07 09:46
수정 : 2017.07.0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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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행정대집행 3년을 맞아 이보학(69)씨가 지난달 18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 129번 송전탑 앞에 ‘불법 송전탑 철거 계고장’을 땅에 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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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 철거 행정대집행 3년
할매할배들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신고리 공론화위 활동 3개월간
거리선전에 탈핵 행사까지
전국 돌며 밀양의 절실함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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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행정대집행 3년을 맞아 이보학(69)씨가 지난달 18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 129번 송전탑 앞에 ‘불법 송전탑 철거 계고장’을 땅에 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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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11일 새벽, 할매할배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밀양의 산과 들판에 흘러넘쳤다.
온 나라가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국가는 행정대집행을 명령했다. 세월호 참사에는 느리고 무능했지만, 행정대집행에는 신속하고 유능했다. 밀양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여러 해 움막에서 농성해온 할매들은 행정대집행을 막기 위해 젊은 경찰들 앞에서 옷을 벗고 알몸을 쇠사슬과 가스통에 묶었다.
2005년 땅에서 시작한 할매할배들의 투쟁은 필사의 결박에도 순식간에 공중으로 들어올려졌다. 날카로운 칼날은 움막을 둘러싼 천막을 찢었다. 공업용 절단기는 할매들의 목을 둘러싼 쇠사슬을 끊어냈다. 몸은 농성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팽개쳐졌다. 경찰에 겹겹이 둘러싸인 할매들은 움막이 철거되는 모습을 보며 서럽게 울었다. 송전탑 예정지 한 곳의 행정대집행은 몇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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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북면 위양리 127번 송전탑 현장에서 할매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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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27번 송전탑이 농성장이 있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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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행정대집행 3년을 맞아 밀양 주민들과 전국에서 온 탈핵 시민들이 지난 6월17, 18일 이틀 동안 문화제와 송전탑 걷기 행사를 했다. 127, 129번 송전탑 농성장에는 거대한 철구조물이 괴물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아름다운 산 능선을 거대한 선과 구조물이 점령했다. 주민들의 처절했던 투쟁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송전탑이 건설된 장소에는 어김없이 ‘접근금지, 765㎸고압전기 송전중으로 전력 시설물 손괴 시 전기사업법 100조에 따라 형사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전력공사’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주민들은 경고판 바로 앞에 ‘불법 송전탑 철거 계고장’을 세웠다. 계고장에는 ‘필요하지도 않은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오직 핵마피아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주민들의 피땀을 짓밟고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할 아름다운 이곳을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문구와 함께 지금 당장 송전탑을 철거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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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할매들은 알몸을 쇠사슬과 가스통에 묶고 마지막까지 투쟁했다.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 129번 송전탑 움막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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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번 움막이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철구조물이 들어서고 접근금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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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대집행 뒤 3년이 지났지만 할매할배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년 동안의 송전탑 투쟁은 핵발전소에 의지해온 에너지정책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4년 2월 밀양송전탑 농성 현장을 방문해 온종일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정부는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을 일시 중단하고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이계삼 사무국장은 “밀양송전탑 12년 투쟁의 승패를 가르고 한국이 탈핵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 가늠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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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5일 단장면 태룡리 101번 송전탑 예정지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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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아름다운 하늘을 101번 송전탑이 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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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더위가 절정을 향해 가는 7월, 밀양 할매할배들은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 백지화를 위해 다시 거리에 나섰다. 공론화위원회가 활동하는 석 달 동안 전국 12개 도시를 한 주에 한 곳씩 돌며 ‘거리 선전전’, ‘밀양 할배할매들의 탈핵 이야기’ 등의 행사를 열어 탈핵·탈송전탑의 절실함을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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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면 고정리 115번 송전탑 자리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 밀양 주민들은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국가는 행정대집행으로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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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번 송전탑이 감나무밭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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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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