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도 없이 국가의 총부리에 죽어간 민간인 유해와 함께 발견된 카빈소총 총탄과 탄피다. 겨울 끝자락인 지난달 26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단원들은 언 땅이 녹아 질퍽이는 흙을 조심스럽게 파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됐다가 지난 2014년 1차 발굴 이후 재개된 참이다. 붓 끝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은 나뭇가지인지 사람의 뼛조각인지 구분이 어렵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유가족 정연조(68)씨는 ‘사변둥이’(1950년생)다. 그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가 돌아가셨다. 뒷날 정씨는 아무리 공부해도 자꾸 공무원시험에서 낙방하자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물어봤단다. 그는 그제서야 “아버지가 보도연맹원으로 억울하게 죽은 것을 알았고, 그 뒤 연좌제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공무원 되기를 포기하고 중동 노동자로 리비아에 가려고 했지만, 리비아에는 북한 대사관이 있어 그 길도 좌절됐다. 정씨는 혹여 자녀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까봐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이렇듯 대를 이은 피해자는 있는데 민간인 대량학살의 가해자는 없다. 유족회는 진주 지역에만 학살 지역이 26여곳에 희생자는 2천여명에 이른다고 파악하고 있다. 현장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과 시민들로 꾸려진 자원봉사자들이 유해 발굴을 돕고 있었다. 한 봉사자는 “사람 유골을 보면 섬뜩하지 않을까 했던 처음 우려와 달리 오랜 세월을 지나 모습을 드러낸 희생자 유해는 나뭇가지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마침 찬바람이 물러가고 유해 매장지에 햇살이 든다. 봉사자들이 허리를 굽히고 무릎과 배를 땅바닥에 댄다. 유해를 감싸고 있는 붉은 흙을 붓과 대나무 송곳으로 조심스레 떨어낸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도 힘없던 민간인이었고, 67년 뒤 그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이도 민간인이다. 과연 이들에게, 또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진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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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없이 국가의 총부리에 죽어간 민간인 유해와 함께 발견된 카빈소총 총탄과 탄피다. 겨울 끝자락인 지난달 26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단원들은 언 땅이 녹아 질퍽이는 흙을 조심스럽게 파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됐다가 지난 2014년 1차 발굴 이후 재개된 참이다. 붓 끝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은 나뭇가지인지 사람의 뼛조각인지 구분이 어렵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유가족 정연조(68)씨는 ‘사변둥이’(1950년생)다. 그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가 돌아가셨다. 뒷날 정씨는 아무리 공부해도 자꾸 공무원시험에서 낙방하자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물어봤단다. 그는 그제서야 “아버지가 보도연맹원으로 억울하게 죽은 것을 알았고, 그 뒤 연좌제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공무원 되기를 포기하고 중동 노동자로 리비아에 가려고 했지만, 리비아에는 북한 대사관이 있어 그 길도 좌절됐다. 정씨는 혹여 자녀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까봐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이렇듯 대를 이은 피해자는 있는데 민간인 대량학살의 가해자는 없다. 유족회는 진주 지역에만 학살 지역이 26여곳에 희생자는 2천여명에 이른다고 파악하고 있다. 현장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과 시민들로 꾸려진 자원봉사자들이 유해 발굴을 돕고 있었다. 한 봉사자는 “사람 유골을 보면 섬뜩하지 않을까 했던 처음 우려와 달리 오랜 세월을 지나 모습을 드러낸 희생자 유해는 나뭇가지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마침 찬바람이 물러가고 유해 매장지에 햇살이 든다. 봉사자들이 허리를 굽히고 무릎과 배를 땅바닥에 댄다. 유해를 감싸고 있는 붉은 흙을 붓과 대나무 송곳으로 조심스레 떨어낸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도 힘없던 민간인이었고, 67년 뒤 그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이도 민간인이다. 과연 이들에게, 또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진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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