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18 10:12
수정 : 2016.11.18 10:31
고리원전에 떠밀린 지 46년
이주해온 삶터 또 신고리에
“이제 살만하니 쫓겨나는기라. 이때까지 해녀질하고 배하고 해서 먹고살았는데, 마을에서 나가라고 하니 먹고살 걱정인기라.”
손녀를 업고 작은 해안마을 부두를 산책하던 할머니는 낯선 곳으로 이사할 생각에 깊은 한숨을 내쉰다.
‘신고리 핵발전소 3·4호기’ 얼굴을 맞댄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골매마을-46년 전 고리원전이 들어서며 쫓겨난 고리마을 주민들이 이주해 가꾼 이곳이 신고리 3호기 정상가동으로 다시 사라지게 됐다. 주민들은 1.8㎞ 떨어진 신암마을로 밀려가고, 이곳에는 추가 건설될 ‘신고리 5·6호기’의 취수장과 부대시설이 들어설 것이다. 1970년 아무 대책 없이 떠밀려온 이들은 제힘으로 천막을 짓고 방파제를 쌓았다. 바다가 유일한 생계이나, 그 바다에도 이미 주인이 있었다. 항구도 나누지 않는 이웃 마을에 설움을 당하며 30년간 제2의 고향을 가꿨는데 한수원과 정부는 다시 떠나란다. 지난 7월 주민들은 45년간 마을을 지켜주던 신을 떠나보냈다. 천도재를 지내고 포클레인으로 사당을 허물었다. 옮겨갈 마을에 이미 마을신이 있으니 사당을 모셔갈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한 마을의 스산한 풍경 뒤로 불야성을 이루는 신고리 3·4호기가 보인다. 원전 주위로 장승처럼 늘어선 거대한 송전탑은 다시 치열한 생존 투쟁의 현장인 밀양으로 이어진다. 밤낮없이 움직이기 위해 끝없이 에너지가 필요한 도시와 거듭해 위세를 키워가는 원자력발전소, 그 두 지점 사이 밀려나는 사람과 마을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 지금은 그 총구가 밀양을 지나 골매마을을 겨누지만, 끝까지 나는 예외일 수 있을까. 짙어가는 어둠이 골매마을 위로 무겁게 내려앉는다.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