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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7 09:32 수정 : 2016.10.07 09:32

44년 역사의 국내 대표적인 헌책방인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공씨책방’이 젠트리피케이션의 광풍을 넘지 못하고 이달 말 신촌 시대를 접는다.

가족보다 책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공진석씨가 1972년 서울 회기동에서 문을 연 ‘대학서점’이 공씨책방의 처음이었다. 공씨는 1990년 세상을 떠났지만 이듬해인 1991년 고인의 뜻을 이어 처제 최성장 씨와 조카 장화민 대표가 신촌으로 옮겨온 뒤 지금껏 자리를 지켜왔다.

열다섯평 남짓한 작은 책방은 빼곡히 늘어선 서가와 알뜰하게 빈틈을 찾아 놓인 헌책들로 마치 미로 같다. 한 손님이 2000년대 초반 잠시 발행되었던 계간지를 묻는다. 장 대표는 컴퓨터로 검색하거나 목록을 살펴보지 않고 2층 서고로 올라갔다. 짧은 망설임도 없이 쑥 빼드는 그 책은, 손님이 한참이 찾던 보물이다.

“지난여름 건물주가 월세를 두 배인 250만원으로 올려달라 했지요. 그사이 건물이 팔렸다는데 이제는 그저 가게를 비우란 말만 할 뿐 새 건물주와 만날 수도 없어요.”

장 대표 눈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결국 쏟아진다. 시민단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임영희 활동가는 장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적인 사례’라며 안타까워했다. 삼청동, 가로수길, 연남동-이른바 ‘뜨는 동네’에서 이미 목격한 대로 공씨책방이 떠난 이 자리에는 결국 그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업종이 새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카페, 프랜차이즈 음식점, 화장품 매장 등 이미 넘쳐나는 익숙한 상점들 말이다.

뉘엿뉘엿 지는 해가 공씨책방 들머리에 내걸린 동판 하나를 비춘다. 빠른 도시개발 속에서 급속하게 사라져가는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우리의 미래세대까지 보전하기 위하여 서울시가 이곳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는 징표다. 절박한 마음에 장 대표는 서울시 해당 과에도 문의했으나 “개인 간의 거래이므로 도와줄 방법이 전혀 없다며, 이사가실 때 동판을 잘 챙겨 가시라”는 답변만 들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지식은 쉽게 ‘접속’과 ‘검색’으로 대체된다. 뜻깊으나 돈 안 되는 일들도 삶의 언저리로 밀려난다. 자본의 논리와 현재의 욕망이 휩쓸고 간 뒤 과연 미래 이곳에는 무엇이 남을까. 사방 보이는 것은 모두 쥐어짜 사각 프레임 안에 욱여넣는 360도 카메라에 공씨책방을 담았다. 심하게 왜곡된 사진 가운데 동그마니 선 장화민 대표가 더욱 작아 보인다.

사진 글 이정아 기자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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