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윤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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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영화 취향이 비슷한 H
‘인생 종치는 소리’에 함께 낄낄
한 끼도 허겁지겁 먹는 우리
“더위에도 몸 드러내는 게 부끄러워”
강연 요청 쇄도 처음엔 말끔한 정장
이젠 짧은 바지 “어떤가! 북 토크는 축제인데”
일러스트 윤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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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
“인생 종치는 소리.” (<그건 정말 슬픈 일일 거야> 중에서) 우리는 한참이나 그 구절을 보며 서로 낄낄댔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H야 너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려?”
“내 인생 종치는 소리?”
“아니, 종소리는 애초 끝났고, 내 배에서 나는 소리…….” 그렇게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오늘의 메뉴는 파스타. 평소에는 넙죽넙죽 잘만 얻어먹었던 내가 오랜만에 친구에게 음식을 사주기로 한 자리였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는 누가 죽이러 오는 것처럼 전투적으로 수다를 떨었던 우리였으나 음식이 나오기 무섭게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먹는 소리만 들렸다. 먹을 때만이 우리가 유일하게 입을 다물 때이다. 프랑스에서는 저녁을 서너 시간 동안 먹는다던데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입에 정신없이 음식을 구겨 넣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워낙에 성격이 급해서인지 아니면 보편의 한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빨리빨리’ 정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여유롭게 먹어도 식사 시간이 30분을 넘기지 않기 마련이다. 특히 나와 내 친구들은 거의 흡입에 가까울 지경으로 음식을 구겨 넣느라 식사 시간이 10분도 걸리지 않을 때도 잦은데 H와의 식사 자리는 특히나 그러했다. 그 날도 십분만에 수만원의 파스타를 해치운 우리는 자리에 앉아 후식을 기다렸다. 나는 얼마간의 만족스러운 배부름과 그에 비견할만한 묘한 기분 나쁨을 간직한 채 H에게 물었다. “야 근데 우리 둘은 만나기만 하면 왜 이렇게 빨리 먹을까.”
“그런가? 딱히 그런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나는 별생각 없이 꺼낸 말이었는데 H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아무래도 내 동생 때문인 것 같아.” 어릴 적부터 식탐이 남달랐던 H의 동생은 함께 식사를 할 때도 누구보다 빨리 음식을 먹으며, 냉장고에 뭔가를 채워져 있는 꼴을 보지 못 한다고 했다. 지금도 H가 집에 사다 놓은 주전부리며 디저트 같은 것을 남김없이 쓸어 먹는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얼핏 봤던 H의 가족사진 속 동생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동생분 아직도 덩치가 좀 있으셔?”
“응, 뚱뚱해.”
“많이? 나보다 더?”
“아니, 그 정도는 아니지.”
나는 웃으며 욕을 했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진심으로 혐오할 줄 알 정도로 허물이 없는 사이이기는 한데, 오랜 친구인 것치고는 공통점이 없는 편이기도 하다. 특히나 패션에 있어서 견해 차이가 심한데 H는 장옷을 입고 다니는 조선시대의 규수처럼 얼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체를 가리고 다닌다. H는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는 그 날도 긴 청바지에 긴 체크무늬 셔츠를 받쳐 입고 모자까지 쓰고 나왔다. 후식으로 나온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서도 땀을 뚝뚝 흘리고 있는 걸 보니 괜히 내가 답답해져 모자라도 좀 벗으라고 말해봤지만, 들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는 수십년만의 더위가 몰려왔던 지난해 여름에도 매일 긴 청바지를 입고 다녔으니, 알 만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자신의 몸을 바깥에 내놓는 게 부끄럽다고 했다. “그럼 집에서도 꽁꽁 싸매고 있는 거야?”
“미쳤니. 방문 닫자마자 다 벗고 에어컨 틀고 누워 있지.” 반면에 내 경우는 등산복만 입고 다니는 중년들처럼 체온 조절과 편함에 포커스를 맞춰 의복을 선택하고 있다. 남들 보기에 흉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리를 훤히 내놓고도 올여름을 잘 버텼다. 하긴 이런 나라고 해서 애초에 이렇게 태어난 것은 아니라서 20대 시절에는 나만의 여러 외모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H와 비슷하게 나도 털이 많고 두꺼운 내 다리가 부끄러워 더운 여름에도 긴 바지를 고수했으며, 머리카락을 풀 세팅하지 않고서는 강의실에 들어가지도 못했었다. 안경을 쓰면 못생겨 보인다는 이유로 안구건조증이 있는 주제에 5년도 넘게 소프트렌즈를 끼고 다녔으며, 대학 시절 없는 돈을 모으고 또 모아 라섹수술까지 단행했다. 지금은? 매일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다짐하면서도 어김없이 폭식을 하고 아침이면 팔다리와 신체 실루엣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잘만 입는다. 2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기함을 할지도 모르겠다. 100kg이 훨씬 넘는 몸, 벙벙한 티셔츠에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는 것도 모자라, 막 감은 머리카락을 대충 말린 채, 산발을 하고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악몽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겠지. 퇴사를 하고 난 후 시간이 많다는 소문이 났는지 부쩍 여러 곳에서 강연이나 북 토크 등의 행사를 요청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번 달은 특히 일정이 바빠, 문단의 ‘홍진영’을 넘어, 거의 홍길동이 된 지경으로 전국 팔도를 다 누비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간신히 습관으로 만들어 놓은 운동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최소한 일주일에 4회 이상 아침에 근력과 유산소 운동을 했으며, 헬스장 샤워실에서 급하게 드라이를 하고 꾸민 후 고속버스나 기차에 몸을 싣는 일이 잦았다. 운동을 마치고 빠르게 먼 곳으로 이동할 일이 많다 보니 복장도 자연히 더 간소화되었고, 최대한 편한 옷을 고르게 됐다. 이런 내 모습에 대해 평소에는 별생각이 없다가 가끔 누군가가 지적을 하거나, 피드백 차원에서 올라온 행사 사진을 찾아볼 때면 아, 내가 반바지를 입고 있었구나! 뒤늦게 깨달을 따름이었다. (평소에는 이상하고 추잡한 인간이면서 무대에 올라서면 그럴듯한 소리를 해대서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는 이유로) 내 행사는 잘 오지 않는 H가 두 번째 책 <대도시의 사랑법>이 나오고 처음으로 내 북토크 자리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큰 도서관을 대관해 성대하게 열어 준 행사인지라 긴장을 한 채로 열심히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대 앞 좌석에 앉아 있는 H가 계속 핸드폰을 확인하라고 사인을 보냈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는 척 곁눈질로 핸드폰을 보았고, H가 보낸 문자 수십 통의 섬네일이 화면을 뒤덮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리 내려. 박상영, 다리 내리라고! 바지가 너무 짧아서 꼰 채로 앉으니 속이 훤히 보여서 H가 긴급하게 보낸 문자였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서점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 공개 방송 때에도 별 의식 없이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갔는데, 어김없이 바지에 대한 농담 어린 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진행자이자 작가 선배이며, 행사 구단이기도 한(?) 김하나 작가님 역시 나와 비슷한 기장과 디자인의 바지를 입고 와 조금 안심이 됐다. 그래, 양질의 토크를 하는 게 중요하지 복장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 (물론 내가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말이 양질인지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지만 말이다) 작가 데뷔 초만 해도 시상식이나 북 콘서트 때, 마치 중견기업 영업직 사원처럼 칼 정장(?)만을 고수하곤 했었다. 독자를 접할 기회가 적었을뿐더러 인생을 걸고 하고 싶은 직업인만큼 매 순간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찌고 입을 수 있는 셔츠가 점점 줄어들면서부터 그런 원칙이 무너졌다. 외적인 모습에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어느 순간부터 일종의 허상처럼 느껴졌고, 내가 지금껏 가져왔던 쓸데없는 자기 강박의 연장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분 매초 더 나은 가치 기준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선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시상식도, 북 콘서트도 일종의 축제(?)이자 잔치인데 즐기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 포멀한 정장이 원칙인 행사 장소를 제외하고는, 그냥 편한 옷을 입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꽉 끼는 정장 바지에 가로 주름이 간 것을 신경 쓰는 대신 내가 하는 말이나 태도, 내게 주어진 마이크에 신경 쓰는 것이 작가이자 강연자로서 더 나은 선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비록 기성복 상점에서 옷을 살 수 없게 된 내가 자조적으로 하게 된 생각일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또다시 굶고 자야지 다짐하면서, 결국에는 실패할 것을 알지만 나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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