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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0 20:33 수정 : 2019.07.11 01:33

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늪에 빠진 듯한 은둔 생활
출판사 계약으로 탈출

큰마음 먹고 퍼스널 트레이닝 시작
결국 두번째 책 출간에 성공

살 때문에 홍보차 나서는 거 두려워
하지만 막상 닥치니 평온해져

젖은 걸레처럼 너부러진 채 침대 속에만 처박혀 있던 은둔 생활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약을 늘려도 나아지기는커녕 속만 더부룩한 것이 더 피곤해진 느낌이었다. (주치의는 소화 불량은 흔한 부작용 중 하나이며 울증 계열 약의 경우 긴 투약 기간이 지나고 나서야 약효가 발휘된다고 했다.) 나는 누군가 이 지독한 절망으로부터 나를 구해주기를 바라며 매일 매일을 잠과 넷플릭스, 배달 음식으로 버텼다.

작년 한 해 동안 인간이 끌어올릴 수 있는 거의 최대한의 에너지를 써서 회사에 다니며 중·단편 소설을 썼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책 한권을 묶을 만큼의 작품이 모였고, 운 좋게 그 작품 중 하나가 제 10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조금 특별한 일이었는데 매년 발간되는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1회부터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챙겨보기도 했거니와, 습작생 시절 그 작품집을 마치 교본처럼 공부해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상을 받는 것은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일 중 하나였고, 간절히 바랐던 꿈이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세상의 다른 모든 좋은 일들이 그렇듯, 상이 주는 성취감이나 기쁨도 휘발되기 마련이었고,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지쳐 있었다. 나는 상이 주는 활기를 잊은 채 곧 다시 내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원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들여 휴식을 취하면 건강도 정신도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모든 게 나빠지고 있었다.

결국 날 완벽히 침대 밖으로 끌어내 준 것은 사람도 사랑도 의지도 아니요, 일이었다.

수상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약을 했던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가님, 단행본 출간을 하시는 게 어떠세요.”

지난 책이 나온 지 고작 6개월 남짓 지난 시점이었고, 첫 번째 책도 여러 사정(?)에 의해 급하게 낸 것 같다는 아쉬움이 아직 남아 있어, 두 번째 책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내고 싶은 마음을 먹고 있던 찰나였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기다려 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나는 출판사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통장 잔고가 줄어들어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도, 이제는 침대를 벗어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단행본을 묶고 고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는데 머리가 멍했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떤 문장이 더 적절한지, 무엇이 매끄러운 글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조금만 앉아 있어도 두통이 오기 시작했고, 등이 쑤셨다. 허리와 엉덩이도 사정없이 아파졌다. 문득 나는 코어 근육과 등 근육의 힘으로 글을 쓴다는 황정은 작가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지난 수년 동안 젊음과 불규칙적인 운동(?)으로 간신히 유지해왔던 나의 몸이 완벽히 무너져 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 위해 가장 먼저 근육을 단련해야겠다는 매우 평범한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헬스 트레이닝과 마라톤 사이클 등을 거쳐 최근 필라테스를 시작했다는 동료작가 M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하며 운동 자문(?)을 구했다.

형, 나처럼 100㎏ 넘는 애도 필라테스 기구 위에 올라갈 수 있어? 무너지는 거 아니냐?

걱정하지 마. 다 할 수 있어.

나 요즘 거의 근육량이 0인데 그래도 할 수 있어?

그런 사람들이 하라고 만들어진 운동이야.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약간의 용기를 얻은 나는 근처의 필라테스 숍에 전화를 걸었다가 가격을 듣고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나는 몇 가지 옵션을 생각한 끝에 결국 헬스를 끊고, 트레이너에게 퍼스널 트레이닝 수업을 받기로 결정했다. 가뜩이나 다 떨어져 가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전에는 ‘본전’과 ‘가성비’가 내 인생의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루에 8시간씩 사무실에 정물처럼 앉아 번 돈인데 얼마나 고생을 해서 번 돈인데 허투루 쓸 수는 없었다. 언제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중시하는 나에게 매회당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퍼스널 트레이닝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옵션이었다. 그러나 꼬박 몇 달을 앓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 몸을 가지고 (얼마나 오래 지속할지는 모르지만) 남은 생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이 상태로 버틸 수는 없었다. 나는 나를 지배하던 모든 패러다임을 바꿔보기로 했다. 최대한 소비하고 움직이는 쪽으로.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변하고 싶었다. 아니 변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오전 아홉시에 일어나 하루에 두 시간씩 운동을 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금전이라는 강제 앞에서 나는 기꺼이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주어진 운동량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고 제대로 업무를 처리할 기운도 없었다. 그런데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뭔가 변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삼십분도 채 채우지 못했던 작업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이 구별되기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청사진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꼬박 3개월을 보낸 후 아주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일단 나는 지난해에 써놓은 4편의 중편 소설을 하나의 연작소설로 묶는 데 성공했다.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했던 스케줄에 맞춰서. 심지어는 강의를 나가고 신문에 에세이?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까지 연재하면서! 퇴사 당시의 나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업무량이었음에도 기꺼이, 아니 실은 간신히 처리할 수 있었다. 황정은 작가의 말처럼 코어 근육의 힘, 즉, 규칙적인 운동의 힘이었던 게 자명했다.

내 두 번째 책을 받아들었던 날 나는 눈물을 흘렸다. 기뻐서? 물론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실은 허무하고 또 걱정되는 마음에서였다. 내 작품의 퀄리티와 정치적인 올바름과 원활한 판매 같은 것들도 물론 큰 걱정이었지만, 실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내 인생 최고로 무거운 체중으로, 두 번째 책을 내는 것은 내 인생의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고백할 게 하나 있다. 지금의 내 몸무게는 퇴사하기 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말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실은 매일 밤 여전히 무언가를 먹고 자는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아무리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도 몸무게는 단 1㎏도 빠지지 않았다. 체중조절은 운동이 아닌 식단관리가 관건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나는 내 온몸으로 체험했다. 체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나왔고 나는 책이 나온 작가가 수행해야 하는 거의 모든 홍보 활동을 다 하고 있다. 요즘 시대가 시대인지라(?) 작가들도 예전처럼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뒷짐을 지고 앉아 있기보다는 책 홍보를 위해 전면에 나서는 것이 요구된다. 특히 나 같은 신인 작가의 경우 나의 글과 더불어 나 자신을 알려야 하는 사명(?)이 있고, 이 때문에 나를 불러주는 거의 모든 곳에 참석하고 있다. 신문 인터뷰와 독립 서점의 행사, 국제 도서전과 심지어는 유튜브 홍보 영상 촬영까지……. 그중 내 비대한 몸과 얼굴을 숨길 수 있는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인터넷 뉴스 검색 창에 내 이름을 치면 나의 신간과 관련된 여러 기사가 뜬다. 나는 화면을 보며 어김없이 매번 놀란다. 내 뜻과는 다른 기사 내용 때문에 놀랄 때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사진에 찍힌 내 얼굴이 그 원인이다. 거울로 봐 왔던, ‘셀카’를 찍을 때 봤던 내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아마도 한없이 진실에 가까울 ‘보도 사진’ 속 나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한참 동안 접힌 턱살과 뺨의 잡티와 콧잔등의 모공을 샅샅이 훑어보다 일순 마음이 고요해진다.

실은 얼마 전까지 내게 있어서 이런 모습의 사진이 ‘박제’되는 것만큼 큰 공포는 없었다. 그런데 막상 닥치고 나니 사실 별 감흥이 없다. 때때로 내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댓글이 달려도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이 지난 동안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매일 밤 나를 단죄해왔던 죄책감과 폭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루에 한 발짝씩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굶고 잘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어도 어쩔 수 없겠지만…….

글 박상영(작가), 일러스트 윤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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