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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3 19:55 수정 : 2019.12.20 14:01

일러스트 윤수훈

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오래전 취재했던 이 카카오톡 와
청첩장 날리며 시간이 되면 오라고 해

부담 백배, 염치없는 이 많아
내게 결혼은 판타지 동화

자발적 비혼자인 나, 세상은 가만두지 않아
비혼식 지지, 난 소설과 결혼식 올려볼까

일러스트 윤수훈

원고 마감이 가까워져 오면 수면이 부족해지고, 기분이 축축 처진다. 특히 원고가 안 풀릴수록 증상이 더 심해지곤 하는데 이럴 때면 교양 차원에서 마시는 아침 커피만으로는 카페인이 한참 모자라기 마련이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무섭게 노트북 파우치를 든 채 스타벅스로 향한 건 그 때문이었다. 고용량의 카페인과 간단한 요기, 쾌적한 집필 환경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 앉을 자리를 찾는데 평소에 내가 즐겨 앉던 창가 자리가 만석이었다. 나처럼 점심을 거르며 스타벅스에 오는 직장 사회에서 동떨어진 영혼들이 이토록 많다니. 묘한 동지애 같은 것을 느끼며 테이블 좌석에 앉았다. 노트북을 펼쳐놓은 후 무심코 앞을 바라보았는데 신입생 때 꽤 친하게 지냈던 동기 형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들썩하며 아는 척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무심코 나를 스쳐 빈 좌석으로 향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뻘쭘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살이 쪘기로서니 아예 못 알아볼 정도란 말인가? 됐다. 어차피 아는 척해봤자 귀찮기만 하지. 작업이나 하자. 정신없이 타자를 두드리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저기 혹시, 박상영씨 아니세요?”

“뭐야, 형. 나 그렇게 못 알아볼 정도야?”

동기 형은 와하하 웃으며 너 대단하다(?)고 하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도 살 엄청 쪘어, 라고 말하는 형은 (나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날렵했던 턱선이 무너지고 눈 밑이 거무튀튀해진 모습이었다. 우리는 하나 마나 한 안부 인사를 나누며,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냐? 나는 회사 다니지, 형은? 어 나도 요 근처 어디 다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대학 동기들의 소식을 공유했다. (누구는 결혼해서 애를 낳았고, 누구는 이직에 성공했으며, 누구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누구는 결혼도 모자라 이혼까지 했다더라.) 뭐 그런 얘기를 하다 대화가 끊겼고, 이제 그만 자기 자리로 돌아가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음에도 형은 쓸데없는 질문을 하며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형이 불쑥 내민 핸드폰.

“우리 연락이나 하고 지내자.”

배경화면에 있는 한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 천천히 나의 번호를 찍으면서 피어오르는 의구심. 이 형 혹시, 청첩장 보내려는 거 아냐? 나는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로 형에게 물었다.

“이분은 누구세요? 여자 친구분?”

“뭐래. 너 <프로듀스48> 안 봤냐? 아이즈원 민주잖아!”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과연, 민주였다. 유레카! 형은 여자 친구는커녕 솔로가 된 지 1년도 넘었다며 괜찮은 여자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그날 했던 대화 중 가장 진정성 있는 톤으로) 말했다. 형은 곧 특유의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작별 인사를 했고, 나는 형을 핑계로 그날의 작업을 접었다. 선량하고 투명한(?) 형을 의심한 게 미안해졌지만, 아무래도 내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솥뚜껑만 봐도 놀랄 수밖에 없다. 몇 번이고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학생 기자 시절 취재를 위해 도합 두 번 정도 만났던 취재원분께서 카카오톡으로 갑자기 반갑게 인사를 걸어왔다.

- 상영씨 잘 지냈어요?

나는 본연의 나쁜 성격을 숨기고, 사회인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앗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대답한 후 가드를 올린 채 대기를 타고 있었다. 상대방은 작년에 내가 냈던 소설집의 제목을 말하며, 상영씨 작품의 팬이라고 했다. 일상의 나는 둔한 인상과는 달리 상당히 순발력이 좋은 편이며 아무리 곤란한 질문을 들어도 웃으며 빠르게 받아친다. (그것은 내 진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척추에서 흘러나오는 반사 신경에 가깝다.) 그런데 내 책을 읽었다는 사람과 마주치면 왠지 모르게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복어 독을 먹은 것처럼 온몸에 마비 증상이 온다. 그렇게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린 내게, 상대는 계속해서 내 작품에 대한 감상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소설집을 영업하고 다녔다는 등의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아유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기계처럼 대답하며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었다.

- 참, 그리고 나 결혼해요. 시간 되면 놀러 와요. 부담은 가지지 마시고요.

핸드폰 화면에 낭창낭창하게 떠오르는 그의 모바일 청첩장. 천 번은 본 것 같은 사진에 1만번은 본 듯한 문구를 보니 짜게 식는 내 마음. 부담 갖지 마라니요. 당신과의 지금 이 대화가 충분히 부담입니다만…….

하긴 이 정도면 양반인 편이다. 갑작스레 대학 동기 50명을 단체 카톡방에 초대해 모바일 청첩장을 돌리고 사라지거나, 서로 싫어하는 게 분명한 직장 동료의 청첩장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다든가, 있는지도 몰랐던 친척의 청첩장이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는 등의 설화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특히나 지난해 가을에는 청첩장 러시가 너무나 치열해, 일주일에 몇 개씩이나 단톡방이 열린 적이 있었다. 자꾸만 쌓여가는 업무에, 다가오는 원고 마감에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던 어느 날, 나는 시시때때로 울려대는 메시지 알림을 견디지 못하고 ‘청첩장 거부합니다’라는 문구를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에 적어놓은 뒤 모든 단톡방에서 나와 버렸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자고 일어나보니 너무 자의식 과잉인 것 같아서 (실제로 자의식 과잉이기도 해서) 금방 지워버리긴 했지만……. 왜 모든 선언은 하는 순간 이렇게도 없어 보이고 맥 빠지는 것일까. (이를테면 오늘 밤은 굶어야지, 와 같은 종류의 것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결혼 제도 자체를 반대한다거나 타인의 결혼에 대단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가까운 사람의 결혼은 진심을 다해 축하해줄 마음이 있으며, 실제로 몇몇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보거나 축가까지 부르는 등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결혼 예식에 참여해왔다. (심지어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재희〉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써서 팔아먹기까지 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과 같은, 평생 가까워질 이유가 없는 사람의 청첩장을 받아 들 때마다 나는 아득하고도 뜨악한 기분이 든다. 결혼을 하지 않은 40대 한 선배는 그동안 나간 축의금만 해도 중고차 한 대 값이 넘는다고 토로를 할 지경이니, 청첩장을 둘러싼 일종의 자본주의적 배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은 보통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① 결혼을 했거나, 언젠가 할 예정인 사람. ② 결혼에 관심이 없거나,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

①번의 경우 서로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이일지라도 품앗이 차원에서 일종의 ‘공정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관계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②번들이 존재한다. 결혼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 앞으로도 영원히 결혼할 생각이 없는 사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자에게 5만원에서 10만원가량의 축의금과 주말의 귀한 시간을 축내고 싶지 않은 사람……. ①번과 ②번은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말아야 마땅한데, ①번들은 ②번들을 배려하거나 가만히 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이토록 집요하게, 잘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청첩장을 보내는 거겠지? 다들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절대적으로 ②번 유형에 속하는 (비)자발적 비혼자이다. 열살 때부터 엄마에게 “나는 절대로 결혼 안 할 거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되바라진 꼬마였으니 결혼에 대한 반목의 역사가 꽤 깊은 편이다.

예전부터 결혼이라는 제도가 내게는 판타지로 가득 한 동화처럼 느껴졌다. 한 인간과 다른 인간이 만나 같은 집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 산과 들과 나무도 변하는 세상에서 영원한 어떤 것을 기약한다는 것. 차라리 발목째로 잘려나간 빨간 구두나 투명한 옷을 입은 임금님과 같은 동화가 내게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때문인지 나는 다른 약속은 칼같이 잘 지키면서 결혼식은 유달리 잘 지각을 하거나 아예 까먹어버리곤 한다. 심지어는 습작기 시절에 만나 전우애에 가까울 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 케이(K)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참석하고 싶었음에도) 가지 못한 이유는, 늦잠을 자서……. 학창 시절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나는 친구나 친척의 결혼식에 늦거나 아예 참석하지 못했다. 매번 나름의 이유는 있었으나, 유달리 결혼이라는 사건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 보면 나의 무의식이 안간힘을 다해 결혼을 거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고 나 자신에 대해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니…….

이처럼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요즘 회자되고 있는 비혼식(非婚式)이 꽤 솔깃한 아이디어처럼 느껴진다. 평생 오롯이 나 자신만을 보듬으며 살겠다는 선언. 이를 위해 마련된 성대한 파티. 누군가는 한심하고 외로운 작자들이 벌이는 헛짓거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모든 예식 문화는 다 창작된 것에 불과한데 새로운 풍토를 못 만들어낼 건 또 뭔가. 내가 나랑 결혼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 경우는 결혼은커녕 등단하고 나서부터 사소한 연애 사건조차 완전히 끊겨버린 상황이다. 주변의 친구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 소설과 결혼했다고 말하곤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소설과의 결혼식을 개최해보는 건 어떨까?

전국에 차고 넘치는 도서관이나 작가 회관을 대관한 후, 케이터링 업체를 예약한다. 살도 쫙 빼고, 그럴듯한 예복을 맞추고, 책 표지랑 내 사진을 이어 붙여 모바일 청첩장을 만든 후 옷깃만 스쳤던 사람 모두를 초대하는 거다. 축의금 함과 장부를 관리하는 남성 두 명만 행사장 앞에 배치해놓는다면 모든 게 완벽하다…….

뭐 이런 망상에 젖은 채 나는 홀로 넓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다짐했다. 언젠가 열릴지도 모를 소설과의 결혼식을 대비해 오늘 밤은 기필코 굶고 잘 것이라고.

글 박상영(작가), 일러스트 윤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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