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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윤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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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팀장이 흉보는 90년대생 직원
영리하게 사내정치 하는 그
어느 날 내게 작가냐고 물어
당황하는데 프로필 사진 거론해
내 살에 관해 얘기하는 그 보며
한국의 낮은 인권 감수성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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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윤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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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자리의 사원 A는 입사 1년 차이며, 보편적인 한국의 20대 후반 남성이다. 즉, (그 유명한) 90년대생이다. 팀장은 그가 없을 때면, 그를 두고 종잡을 수 없는 90년대생이라고 주저 없이 부르곤 한다. 팀장은 아무래도 나를 ‘자기 사람’이라고 여기는 듯한데 실은 팀원 중 그 누구도 (근속 연수는 임원급이지만 다혈질이라 적이 많고 사내정치에 둔감한, 다 떨어진 끈이나 다름없는) 팀장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고 해서 딱히 팀장에게 호의를 가진 건 아닌데, 그런데도 다소 공평한 성격이기는 해서 팀장이 말을 걸면 고개를 끄덕여주기는 하며, 노골적으로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워낙에 다른 사람들이 대놓고 팀장을 개밥그릇처럼 취급하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지지가 되어버린 것 같다. 최근 팀장이 부쩍 나한테 다른 사람 흉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신입사원 A에 대한 욕이 잦은데 그가 ‘요즘 애들’답게 허락도 없이 자신보다 먼저 퇴근을 하며(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요즘 애들’답게 일을 찾아서 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배당된 일만을 처리하며(나 역시 그렇다.), ‘요즘 애들’답게 다른 사람 이상의 일이 주어지는 것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다고 했다.(이제 나에게 추가 업무를 배당해주는 사람조차 없어졌다.) 팀장이 말하는 ‘90년대생 요즘 애들’의 항목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다소 앞서가는 시대정신을 가진, 90년대풍의 80년대생이었어! 라고 자위해봤지만, 그저 사회생활 적응에 실패한 한 명의 아웃사이더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무튼, 팀장의 말대로라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A는 은근히 또 앉을 자리를 잘 보는 정도의 영리함을 갖추고는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랑은 썩 잘 지내는 눈치였다. 심지어는 다른 신입사원들보다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내 축구모임이나 당구모임 같은 사조직에 가입해 주말을 반납해가면서까지 활동한다. 어쩌면 그는 엄청난 구기 종목 팬이거나 아니면 (‘90년대생들이 몰려온다!식의 호들갑스러운) 90년대식 사람의 정의와는 많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다.(어쩌면 이런 일관성 없음과 종잡을 수 없음이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90년대생의 정의일지도) 내 경우는 이 모든 사무실의 역학관계를 방관자의 시선으로 관조하며-정말 피곤한 한심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군-퇴사 의지를 다지곤 했다.
여느 때처럼 자리에서 뭉그적거리며 혼자 싸 온 도시락을 까먹을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점심시간, 나는 뜻밖의 대화에 맞닥뜨리게 됐다. 평소 인사 정도만 나누던 사원 A가 뜬금없이 날씨며 뭐며 나에게 사담을 건 것이다. 갈 길이나 갈 것이지 얘가 왜 이러나, 싶어서 대충 아무렇게나 대답을 해주는데 갑자기 A가 내게 물었다.
“박 대리님, 작가, 라면서요?”
“아닌데요.”
반사적으로 거짓말이 나간, 나. 이게 미쳤나, 갑자기 뭔 소리야.
“에이. 저 네이버에서 검색해봤어요. 작가라고 나오던데요? 신기하다. 내 옆에 작가가 앉아 있다니. 작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신춘문예, 뭐 그런 거 된 거예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 아니라면 아닌 줄 알 것이지, 왜 캐고 들어. 설마 내 소설을 읽은 건 아니겠지? 회사 근처의 남고를 나와 공대생이었으며 육군 만기 전역을 하고 토익을 쳐서 (온통 남성뿐인, 공식적으로는 차별이 없다고 하지만 명백히 성별 필터링이 존재하는 게 분명한) 우리 회사에 들어온 그가 소설책 같은 걸 읽을 리 없다고 생각한 건 편견에 기초한 나의 오만이었나. 정말 읽었으면 어쩌지. 행여나 주변에 소문이라도 냈으면? 됐다. 무슨 소문씩이나. 내가 작가인 게 뭐 대수라고.
“ 아, 신춘문예는… 아니고. 그냥… 뭐, 대학원 다닐 때 어쩌다 보니까. 근데 어떻게 아신 거예요?”
서버관리팀에 문헌정보학과를 나온 (몇 안 되는 신입 여성) 동기가 알려줬다고 했다. 우리 회사에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최소 두 명 이상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잖아. 아 정말 죽고 싶다. 남들 보라고 책을 써서 출판까지 해놓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유난스럽다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 글은 그야말로 내 마음의 전시장이고, 내 이 쑥대밭 같고 전쟁터 같은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거 아니겠어? 간파당하지 않겠다. 절대로 내 진심이나 적의 같은 것을 들키지 않겠다, 그저 쉬이 잊히는 존재로 여기에 정물처럼 있다 어느 날 불현듯 사라져버리겠다 다시금 마음먹으며 나는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을 먹으러 가겠다고.(대충 둘러대고 화장실이라도 가 있을 생각이었다.) A가 눈치 없이 말을 이었다.
“근데 사진, 말인데요.”
“네?”
“네이버에 있는 프로필 사진 말이에요. 예전 사진인가 봐요. 지금이랑 엄청 다르던데.”
“네… 뭐.”
흘리듯 대답하기는 했지만 실은 고작 1년 전에 방콕에 놀러 가 찍은 사진이었고, 다른 모든 인류가 그렇듯 수천 장의 사진 중 제일 잘 나온 한 컷을 고르고 골라 나온 작품이랍니다. 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너의 실물의 차이를 본다면 네 옆에 앉은 내 모습과 내 프로필 사진의 괴리 따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살 빼시고 관리 좀 하시면 여자들한테 인기 많으실 거 같은데요? 긁지 않은 복권!”
A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지 점심을 먹으러 나가버렸고 남겨진 나는 갑자기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가 뭔데 내 외모를 평가해. 살찐 사람 몸은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해도 되는 건가. 게다가 긁지 않은 복권이라니. 상대방은 누구보다도 절실히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는 중인데 타인이 왜 함부로 그 사람을 무엇이 되지 못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인가. 물론 나도 그가 별다른 악의 없이, 오히려 칭찬에 가까운 의미로 이런 말을 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근데 그게 더 문제라고. 나이 지긋한 부장님이면 모를까 나름의 인권 감수성 교육을 받고 자랐을 세대가 타인의 몸에 대해 논하는 것이 주제넘은 일이라는 것을, 이런 종류의 말이 실례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의학적 차원이든 미학적 차원이든) 정상 체중이라는 게 존재하고 날씬한 게 미의 디폴트인 사회에서 살이 쪘다는 것은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자에게 유달리 가혹하고도 엄격한 한국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만인은 직간접적으로 매일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폭력적인 시선에 노출된 처지인 것이다.
그래도 비만한 ‘남성’인 나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살찐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멸시와 비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단 여성인 배우나 가수가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어김없이 살이 쪘고, (도대체 무슨 범위의 관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관리에 실패했고, 프로 의식이 모자란다는 리플이 달리기 일쑤이다. 따지고 보면 배우는 연기하는 직업이고 가수야 노래하는 게 직업의 본질인데 왜 당연히 날씬한 몸을 직업적 소양에 포함하는 것일까.
얼마 전 한 배우가 파격적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배우로서 무대와 브라운관을 누비며 누구보다도 굵직한 커리어를 쌓아왔으며, 유수의 상을 받은 경력이 있다. 이전에도 나는 몇 번 그녀의 공연을 본 적이 있으며, 기사도 꼼꼼히 찾아보는 편이었는데, 감량 이전에는 ‘긁지 않은 복권’류의 (조금만 빼시면 예쁠 것 같아요,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빼셔야죠 등의 주제넘은) 댓글이 많이 달려 있었고, 심심치 않게 살찐 여자를 비하하는 단어들과 비만에 대한 온갖 혐오가 담긴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배역을 위해) 살을 빼고 난 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살을 빼서 늙어 보인다느니, 찐 게 낫네, 뺀 게 낫네, 긁어도 꽝인 복권이네, 와 같은 외모 평가에 기초한 댓글만이 가득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긴 시간 동안 좋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어떤 피나는 노력을 해왔는지 안중에 없는 게 분명했다. 그녀의 배우로서의 가치나 존재는 깡그리 지워지고 오로지 변화한 그녀의 체중과 살에 대한 혐오가 그녀의 존재를 대체해버린 것이다. 하물며 제삼자인 내가 봐도 이렇게 처참한 기분인데, 그녀가 버티고 있을 시간들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내가 다 아찔했다.
나는 다소 90년대풍의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 그런지(?) 타인의 신체와 얼굴과 삶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좀 이해되지 않는다. 그냥 각자 자기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애초에 타인의 신체를 수정하려는 멘트들이 내게는 좀 비상식적으로 느껴진다.
“○○씨의 대서양처럼 넓은 미간도 앞트임 수술을 하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요? 40대 중반이지만 환갑은 돼 보이시는 강 부장님도 이마인지 정수리인지 구별 안 되는 부위에 4000모 내외의 모발 이식을 하면 제 나이로 보일 것 같으세요. 오 팀장님, 안검하수 교정을 동반한 쌍꺼풀 수술을 하시면 언제나 졸려 보이는 눈매가 한결 더 시원해질 거예요. ”등등.
일상에서 방금 나열한 문장 중 단 하나라도 입 밖으로 꺼낸다면 나는 엄청나게 무례한 사람이 되겠지? 근데 왜 타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만 빼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걸까. 도대체 그 뚫린 입을 함부로 나불거릴 권한을 누가 부여해주는 걸까? 정부가? 매체가? 한없이 고도비만 해 보이는 자들보다는 비교적 ‘정상 체중’에 가까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이 가진 한 줌의 권력을 확인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내가 누굴 욕해. (회사를 제외한) 다른 사교 자리에서 나는 내가 먼저 살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비만 혐오적인(즉 자기 비하에 기초한) 농담을 던지곤 한다. 내가 먼저 나 자신을 욕하는 것을 통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주는 모욕을 견뎌내는 것, 웃음이야말로 가장 손쉬운 방어기제이니까. 그뿐인가 뭐. 인터넷 포털에도, 책날개에도 실물보다 훨씬 슬림 해 보이는 사진을 올리며, ‘정상 체중의 신화’를 누구보다 열심히 떠받드는 중이다. 다른 무엇보다 거울을 가장 두렵게 여기는 일개 비만인인 나는 오늘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 다짐하며 잠을 청할 따름이다.
박상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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