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칼럼 |
[최병두 칼럼] 가계부채와 잃어버린 미래 |
한국 경제가 ‘폭망’했다고 외치던 야당의 장외집회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야당은 국회로 돌아갈 명분을 찾지 못한 채 막말 파문을 이어갈 뿐 경제가 왜 ‘폭망’했다고 하는지에 대해 성찰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단지 경제의 성장률 저하를 두고 그렇게 말했다면, 선진국 경제는 이미 오래전에 ‘폭망’했다고 하겠다. 문제는 경제의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발전이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매우 저조했던 것은 사실이다.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0.3%로, 10년 만에 최저였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1%였던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반면 또 다른 경제지표인 가계부채 총액은 지난 1분기 말 1540조원으로 천문학적이다. 그러나 전년 동기비 증가율은 4.9%로 15년 만에 최저였고, 정부의 올해 관리비율 5%보다도 낮았다. 증가세 둔화는 정말 바람직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이러한 경제성장률 저하와 가계부채 증가율 둔화를 두고 국내외 관련 기관과 금융계 그리고 정치권의 해석이 엇갈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을 2.6%에서 2.4%로 하향 조정하면서 경제 불안정을 막기 위해 재정 및 통화정책의 확장을 제안했고, 국제통화기금(IMF)도 단기 성장세를 위해 통화정책 완화를 제시했다. 금리 인하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한국은행도 가계부채 증가세 둔화를 보고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나 대출규제 완화 등의 정책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왜냐면 안정된 주택가격을 다시 요동치도록 하고, 다소 둔화된 가계부채 증가세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경제성장률보다 가계부채에 우선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여당 대표는 가계부채의 잠재적 위험성을 ‘풍선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상황’이라고 비유했고, 원내대표 역시 “우리는 소득보다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규모와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두서너번째로 높다. 엄청난 가계부채는 소비지출 감소와 내수시장 위축, 이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와 금융체계의 위험 증대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다. 그뿐 아니라 가계부채는 계층적으로 차별화되어 서민 생활을 황폐화시킨다. 저소득층일수록 소득은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이자비용 부담은 더 크게 증가하고 있다.
비록 전체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가 약간 완화되었다고 할지라도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와 가계부채 급증에 대한 우려는 금할 수 없다. 저소득층은 자신의 소득으로 스스로 부채를 갚기 어렵고, 또한 낮은 신용등급으로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기도 어렵다. 그러면 이들은 대출 상환이 불가능하여 금융위기의 뇌관이 되거나, 소비지출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미래의 소득조차 부채 상환에 충당해야 하는 절박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처럼 가계부채의 증가는 특히 저소득층에게 빚을 갚기 위한 노동을 강제하면서 그 노동에 따른 생산물은 물론이고 노동의 대가로 받게 되는 임금조차 스스로 통제·관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도록 한다. 하비의 주장처럼, 오늘날 가계부채의 가속적인 증가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부채를 갚기 위해 일하는 메커니즘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좀 더 손쉽게 통제할 수 있게 됐지만 노동자들은 가계부채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잃어버리게 됐다.
정부도 이러한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여당 원내대표가 자인한 바와 같이 가계부채가 이처럼 급증한 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실패도 있고 사회 구성 요인들의 책임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엄청나게 불어난 가계부채는 지난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에 기인한 바가 매우 크고, 따라서 현재의 야당도 이에 대한 책임을 더 통감하고 성찰해야 한다.
이제라도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가계부채의 위기를 절감하고 이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는 가계부채의 ‘증가율’ 관리에서 나아가 절대 규모의 축소를 위한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은 조속히 국회를 정상화하여 최우선 과제로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 활동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거시경제 붕괴와 더불어 민생경제의 파탄이 초래되어 우리 경제는 영원히 미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최병두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