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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17
직장에서 ‘좋은 글’은 ‘좋은 관계’에서 나와
‘좋은 관계’의 핵심은 주변에 관심 갖는 것
잘 들어주는 상사, 알려주는 상사 중요
노무현 전 대통령·윤태영 전 청와대 부속실장 그런 이들
일과 관계 속에서 자신의 콘텐츠를 찾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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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다 어느새 옆자리에 있는 두 여성의 대화를 듣고 있다. 직장인의 애환을 청취하고 있다.
문제는 관계다. 조직에서 행복하려면 관계가 좋아야 한다. 이 말에 혹여 토를 달고 싶은 분들께 한 말씀 드리자면 나도 기업에서 17년 일해 봤다. 대기업, 중견기업, 벤처기업, 출판사 등 다양한 규모의 회사에서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났다. 그 사이 사표도 아홉 번이나 써봤다. 돌아보면 나는 늘 비굴했다. 때로 갈등했지만, 결국엔 다시 출근했다. 아슬아슬한 직장인이었다.
직장 글쓰기도 관계가 핵심이다. 관계가 좋아야 윗사람의 생각이 내게 흘러온다. 그 생각은 직장 글쓰기의 생명수다. 관계가 나쁘면 내 생각을 말할 기회도 없다. 그런 기회가 없으면 상사는 내 생각이 익숙하지 않다. 낯설면 받아들일 확률이 낮아진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은 보람도 없다. 일하는 이유가 사람을 향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없다. 당연히 즐겁지도 않고 잘할 수도 없다. 그 사람을 만나야 하는 월요일이 싫다. 일요일 저녁 무렵부터 이유 없이 불안하다. 내가 그랬다.
관계로 글 쓰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출발점은 관심이다. 관심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다. 상사에게 혹은 동료, 아래 직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실속 없는 데 에너지를 쓰기에 십상이다. 신경 쓰고 관심 쏟은 결과가 정 주고 뺨 맞는 격이 되기도 한다. 자칫 관심이 간섭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관심한 사람, ‘쿨’한 사람이 멋있어 보인다. 분명한 것은 관심 없이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관심에 그쳐서도 안 된다. 관찰해야 한다. 말을 붙이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시간을 써야 한다. 관찰하면 이해가 된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보아야 알 수 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다. 무시로 ‘돌아이 짓’ 하는 사람도 나름대로 규칙성이 있다. 규칙성을 알면 예측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하면 ‘돌아이’가 아니다. 성질 더러운 사람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만의 사정과 이유가 있다. 알고 보면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다. 알고 나서 나쁜 사람은 없다.
이해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다.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일이 보람 있다. 그 사람이 사람들에게 칭찬받게 해주고 싶다. 문서에 오류가 없는지 한번 볼 것을 두 번 본다. 더 나은 기획안을 내기 위해 밤을 새운다. 그 시간이 힘들지 않다.
그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고민한다. 그가 무엇을 기대하고, 그에게 무엇을 줘야 도움이 되고 만족할지 생각한다. 그가 알고 싶어 하는 게 뭘까?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까? 문제의 해법이나 대안을 내놓을까? 보다 나은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어떤 기준과 근거를 제공할까? 무슨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그를 깜짝 놀라게 할까? 내 마음이 설렌다.
‘무엇을 줄까’의 고민이 끝나면, 다음으로 어떻게 줘야 내가 말한 대로, 의도한 대로 그가 행동하고 실행할지 고심한다. 하고 싶은 말을 두서없이 쓴 후에 그 안에서 핵심 메시지를 찾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전하고 싶은 내용을 카피, 표어 같은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기도 한다. 혹은 중간 제목을 잡거나, 스토리라인을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관건은 내가 주고 싶은 것을 그가 온전히 받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 사안에 관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가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을 수도, 선입견을 갖고 무시할 수도, 임의로 취사선택해 들을 수도, 고정관념으로 지레짐작하거나 곡해할 수도, 나에 대한 편견으로 내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문서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듣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중요하다. 보고하는 사람은 문제점, 필요성, 성공을 말하지만, 보고받는 사람은 해법, 기대효과, 실패와 손실을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평소 그가 주목하고, 강조하고, 지적하는 사항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렇게 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그것 말고 더 나은 대안은 없는가. 출처는 믿을 만한가. 실행 가능성과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 수치나 도표, 그래프로 보여줄 수 있는 건 없는가. 사실관계 오류는 없는가. 계획은 구체적인가. 위험요소는 없는가. 이런 체크리스트를 갖고 점검한다. 그런 체에 걸러 지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쓴다. 그렇게 그와 주파수를 맞춘다.
직장에서 글 쓰는 일의 책임이 아래에만 있지 않다. 윗사람 몫이 더 크다. 좋은 생산라인에서 좋은 제품이 나오듯, 좋은 보고서는 좋은 상사에게서 나온다. 상사는 세 가지를 해줘야 한다. 첫째, 들어주고, 둘째, 알려주고, 셋째, 고쳐줘야 한다.
증권사 직원 시절, 잘 들어주는 상사를 만났다. 그분은 내 의견을, 내 불평불만을, 내 반론과 반박을 들어줬다. 내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받아준 것이다. 눈치 보지 않고 위험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는 나를 마구 던졌다. 그리고 그는 받아줬다. 내 존재를 받아줬다. 나는 존재감을 느꼈고 그에게서 존재가치를 찾았다. 술을 마시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가 생각났다. ‘내일 이 얘기 해드려야지.’ 다음날 출근해 그를 기다렸다. 그의 출근이 늦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했다. 그가 출장 가기라도 하면 허전했다. 무슨 일을 하건 그에게 해줄 얘깃거리를 찾기 위해 생각했다. 그럴수록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었고, 그만큼 행복했다.
통상의 직장은 그렇지 않다. 상사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아래 직원은 입을 닫고 받아 적는다. 상사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조직 기상 상태가 바뀐다. 아래 직원이 상사의 감정을 받아준다. 반박하고 싶어도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며 참는다. 무기력을 학습한다. 이런 때 우울증이 나에게 찾아왔다.
청와대에서 ‘알려주는 상사’를 만났다. 일하는 데 필요한 지식, 정보, 경험은 물론이고, 그 일을 하는 이유, 배경, 취지, 의도, 목적, 심지어 저의, 속셈까지 말해주는 상사와 함께했다. 직장생활이 답답하지 않았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전방 어느 지점에서 어떤 사고가 났고, 지금 사고 처리를 하고 있고, 언제쯤 뚫리는지 알려주는 교통방송 같았다. 아는 만큼 알아서 일하려고 했다. 집에 가서 쉴 때도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내가 채워야 할 빈칸이 떠오르면 새벽 2시, 3시에 출근했다.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준 상사, 투명하게 알려주고 아는 것을 공유해준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윤태영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었다.
고쳐주는 상사는 직장생활 내내 만났다. 고쳐주는 실력이 뛰어난 분들과 일하는 기회를 가진 것은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무엇이 틀렸는지 알고 있다. 머릿속에 정오표가 있다. 글쓰기의 원칙과 기준도 분명하다. 똑똑한 사람을 콕 찍어 집어 올리거나 일을 밀어붙이거나 찍어 누르지 않는다. 그저 떠받쳐 준다.
글을 고쳐준다는 미명 아래 해악을 끼치는 경우도 많다. 그 하나는, 두루뭉술하게 요구하는 경우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고 ‘좋다, 나쁘다’만 얘기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을 한다. ‘감동적으로 써 달라’, ‘격조 있게 써 달라’ 등. 무엇이 감동적이고, 어떻게 써야 격조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은 자문해봐야 한다. ‘나는 그렇게 쓸 수 있나.’ 다른 하나는, 비판 일색의 조언이다. 그래도 찾아보면 잘한 구석이 있을 텐데 비판 일변도다. 감정적이기까지 하다. 지적을 넘어 비난이라 할 정도다. 대개 이런 경우, 안하무인이다. 마치 자신의 말이 진리인 것처럼 ‘갑질’한다. 명백한 오류가 아닌 바에는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단지 다를 뿐이다. 이런 경우 도움이 되기는커녕 의욕만 저하시킨다.
직장 글쓰기는 상사와 부하 관계, 즉 개인에게만 맡겨둘 일은 아니다. 조직이 나서면 훨씬 효율적이다. 첫째, 조직의 보고서 현황을 조사한다. 어떤 보고서가 생산되고 있는지 확인한 후 유형별로 분류한다. 둘째, 문제점을 진단한다. 구성원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상사들은 무엇이 불만인지 등. 셋째, 해결책을 도출한다. 넷째, 매뉴얼과 워크북을 제작한다. 어떻게 쓰면 안 되는지, 보고서 유형별 구성 요소는 무엇인지. 다섯째, 교육하고 실습한다. 끝으로, 일정 기간 경과 후 현장에서 잘 활용하고 있는지 점검한다. 끝.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직장을 떠나 되돌아보니 별것 아니다. 어차피 떠난다. 직장생활은 내가 주인으로 사는 삶이 아니다. 직장 이후를 준비하는 기간이어야 한다. 직장은 포로수용소다. 나는 조직과 일의 포로였다. 내 시간을 저당 잡히고 급여를 받았을 뿐이다. 잘 버티시길 바란다. 그래야 직장생활 동안 일과 관계 속에서 나의 콘텐츠를 찾을 수 있다. 그것으로 직장 후 내 인생을 살 수 있다. 부디 멀쩡하게 살아오길. 그래서 나답게 사는 찬란한 그 날을 맞으시길 기원한다.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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