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쩌우전환 지음, 한지은 옮김/푸른역사(2013) 칼 포퍼는 “지식은 일종의 특수한 신념 혹은 의견으로서 정신의 특수한 상태”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지도 역시 그렇다. 지도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에게 포착된 세계의 개념이며 또 하나의 상(image)이다. 영국의 역사지리학자 존 브라이언 할리는 그동안 우리가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결과물이라고 믿어왔던 근대 지도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15세기 이후 큰 발전을 보였던 서구 근대의 지도 역시 세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유럽의 영토적 통제를 구성해온 권력의 도구였다는 것이다.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이란 고안·선별·누락·단순화·분류·계서화와 같은 수사적인 방법을 동원해 권력관계를 구축하는 담론의 형성 및 배분 과정과 동일하다는 것이 할리의 통찰이다. 아편전쟁 당시, 중국의 정부 신료는 물론 재야의 학자들 가운데 누구도 적국인 영국의 면적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들은 나중에 가서야 고작 타이완과 하이난 섬을 합친 정도의 면적을 가진 작은 나라 오랑캐(洋夷)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패배로 인해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래된 자아도취에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1841년 7월, 아편전쟁을 야기한 죄를 물어 신강으로 유배되던 임칙서는 도중에 위원을 만나 그간 애써 모으고 번역하게 했던 서양의 지리서들을 건넨다. 위원은 아편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양광 총독 대리 유겸의 친구이기도 했다. 위원은 임칙서의 부탁을 받들어 <해국도지>(海國圖志)를 편찬한다. 이 책은 세계 각국의 지리와 역사를 소개하고, 서양과 동양의 종교?역법을 비롯해 군함과 대포 제조법, 외적 침략을 저지하는 전술에 이르는 다양한 내용을 포함했다. 예조판서 권대긍은 청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이 책을 발견하여 조선에 처음 들여왔다. 이후, <해국도지>는 서세동점의 위기를 자각하고 있던 최한기, 홍대용 같은 조선의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역시 메이지유신 때까지 무려 이십삼 종의 번역본이 나올 만큼 큰 인기를 끌었고, 동아시아 세계지리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조선의 타자(외세) 인식 문제를 자각하고 있었던 박규수는 유길준을 비롯한 훗날의 개화파 젊은이들에게 이 책의 독서를 권했다.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가 <서양사정>을 펴낸 것이나, 유길준이 <서유견문>을 작성하게 된 까닭도 이 책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지도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모방하는 것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지도가 역으로 현실을 규정하기도 한다. 멀리 갈 것 없이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에 그어진 38선을 떠올려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강대국이 지도에 그은 한 줄 때문에 남북이 70년 세월 동안 서로 적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분단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사상지리·심상지리 역시 왜곡되어 우리가 본래 대륙의 일부였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말았다. 북한의 김정은이 기차를 타고 베트남에 나타났을 때, 분단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아갔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어디쯤 있는 것일까?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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