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3 14:09
수정 : 2019.11.24 16:00
|
2016년 7월7일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우상호 당시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모임은 국회에서 초선 의원들의 질의 착오와 말실수가 잇따르자 소집됐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토요판]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22. 정치인의 등장과 퇴장
19대 총선 뜻밖의 출마 제의
밤 10시 공천심사 도중에 전화
준비되지 않아 정중히 거절
정치 그 자체에 대한 경험 필요
40대 오바마, 마크롱, 블레어
젊어서 10~20년 정치경험 쌓아
정당에서 훈련받는 전통 필요해
|
2016년 7월7일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우상호 당시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모임은 국회에서 초선 의원들의 질의 착오와 말실수가 잇따르자 소집됐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어떻게 해서 정치를 시작하게 되는가. 이제는 까마득한 기억이지만, 정치인이 되기 전 선거 때 영입 제안을 받은 일이 있다. 19대 총선을 코앞에 둔 2012년 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밤 10시쯤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던 국회의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행사 같은 곳에서 몇번 보기는 했지만 따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분이 이 밤에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금 변호사님, 혹시 선거에 출마할 생각 없어요? 서울 송파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하면 어때요?”
덜컥 당선된 초보, 폐 끼칠 수도
정말 뜻밖이었다. 그때 나이가 만으로 44살. 변호사를 하면서 언론 매체에 글도 쓰고 방송에 출연하는 일도 있어서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낼 때가 종종 있었지만 이런 전화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검사로 근무하다 <한겨레>에 기고한 글이 문제가 되어 그만둘 때 주위에서 “저 자식 정치하려고 저러는 거야”라고 비난하는 분들이 계셔서 아예 현실정치 쪽에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섣불리 선거에 나섰다가는 그야말로 싸구려 취급을 받을 것 같았다. 알고 지내는 정치인도 거의 없었고 국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유력 정당의 후보로 출마해보라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어떤 경위로든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면 우쭐해지게 마련이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 정치인의 전화를 받으니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아무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승낙할 수는 없는 일. 지금도 어려운 지역이지만 그 당시 송파를 비롯한 이른바 ‘강남 3구’는 민주당 후보에게 난공불락의 험지로 알려져 있었다. 경험은커녕 선거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별다른 연고도 없는 곳에 불쑥 뛰어들면 결과는 해보나 마나였다. 당장 직장도 때려치워야 할 텐데 가족과 의논도 해야 했다. 그렇다고 호의로 제안한 것을 단박에 거절할 수도 없어서 생각해보고 며칠 내로 답을 드리겠다고 했다. 내 얘기를 들은 그분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렇게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날 밤 12시까지 2시간 내로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는 공천 막바지라 몇군데 남지 않은 지역구를 놓고 어떤 사람을 채울지 밤늦게까지 당 지도부가 모여서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꺼냈고 일단 의향이라도 물어보자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며칠씩 여유를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그쪽 사정이고 아무리 그래도 2시간 만에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결정을 할 수는 없다. 나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씀을 드렸고 이튿날까지 생각해서 답을 주기로 했다.
아는 분들과 의논해보고 고민 끝에 그 제안은 거절했다. 공천을 희망하는 사람이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원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출마를 권유해온 것은 고마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남의 말만 듣고 정치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정치란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를 대신 맡아서 하는 일이다. 물론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게 되겠지만 연습 삼아 해서는 안 된다. 완전 초보인 상태에서는 어찌어찌 당선이 된다고 해도 사회에 기여하기는커녕 자칫 폐만 끼칠 수 있다. 그 뒤 다른 지역 얘기까지 나오면서 몇차례 얘기가 오갔지만 19대 총선 출마는 결국 불발로 끝났다(그로부터 몇달 뒤 나는 우연히 대선 캠프에 합류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여러 곡절을 거쳐 4년 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게 된다. 그때는 과거에 비해서 나름의 경험을 쌓고 고민도 거친 뒤였다).
등장에 견줘 퇴장은 쉬워
불출마는 대체로 찬사받아
3선이면 충분한 기회 가져
다음세대에 넘길 때 알아야
|
2017년 12월26일 성일종 의원(발언대 앞) 등 자유한국당 초선의원과 개헌특위 소속 의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개헌특위 연장과 개헌 무산의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40대 지도자 없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이 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연고가 있는 지역에서 열심히 ‘밭을 갈다가’ 공천을 받는 경우도 있고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을 하다가 현실정치에 뛰어들기도 한다. 때로는 앞서 나의 경우와 같이 정치와 별 관계 없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영입 제안을 받고 선거에 나서기도 한다. 문제는 그중 상당수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를 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많은 사람이 정치를 쉽게 생각하지만 막상 책임을 맡아서 해보면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세 느끼게 된다. 국회에서 다루는 국정 전반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날카롭게 대립하는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면 그에 관한 경험과 역량이 필요하다.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법조인으로서 이름을 날렸다거나 혹은 세계적인 기업을 이끌던 경영자라고 해서 처음부터 정치를 잘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정치 그 자체에 관한 경험이 필요하다.
흔히 선진국에는 40대 정치 지도자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찾기 힘드냐는 한탄을 듣는다.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을 영입해서 정치를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현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반만 맞는 말이다. 48살에 미국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 40살에 프랑스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 44살에 영국 수상이 된 토니 블레어는 젊은 시절부터 정당 활동을 통해 정치 경험을 쌓았다. 시장통에서 상자 위에 올라가 연설을 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현장에서 협상과 타협을 이끌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국정을 담당하게 된 외국의 지도자들과 50대가 되어서야 정치를 시작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외교 문제를 놓고 수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때도 있다. 우리 사회에도 정당 조직을 통해서 훈련받고 경험을 쌓은 정치 전문가가 필요하다. 최근 여야를 가리지 않고 2030 젊은 세대를 영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은데 여기에도 과거와 같은 깜짝 등장은 지양해야 한다. 당장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다수의 젊은 분들을 함께 등장시켜서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의논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한밤중에 전화로 정치인을 탄생시키는 모습은 이제는 사라질 때가 됐다.
정치에 뛰어드는 일이 어렵고 복잡하다면 퇴장하는 것은 어떨까. 당연히 쉽다. 지역구 유권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할 때 중도 사퇴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다음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된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고 하면 눈총을 받기 십상이지만 불출마 선언을 하면 대체로 찬사를 받는다. 특히 충분히 재선이 가능하고 능력도 인정받는 정치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최근 화제가 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생기를 잃어버린 여야 정당에 큰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정치인에게는 은퇴도 하나의 정치행위다. 스스로 출마 기회를 포기하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쇄신을 외치면 당연히 그 목소리에 호소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선거 때마다 언론이 유력 정치인의 불출마 선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그래서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 정치인의 일반적인 퇴장 시기나 모습은 어때야 할까. 정해진 공식은 없겠지만 친한 초선의원들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해보면 대략 3선 이후에는 물러나는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들을 한다. 3선을 하면 12년의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다. 한번 되기도 어렵고 재선 확률이 절반 정도에 그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을 세번 했다는 것은 충분한 기회를 누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 대선주자가 되거나 정당의 지도부가 되어 한 세력을 이끌어가야 하는 경우 혹은 의원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아 국회의장을 바라보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때쯤 자리를 양보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정치인이 끝까지 포기를 못 한다.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상당수의 국회의원이 낙선으로 정치생명을 마감한다. 후회와 쓸쓸함이 남는 퇴장이다. 원로 대접을 받는 선배 정치인에게 같은 선거구에서 내리 4선을 했는데도 다섯번째 선거에서 떨어지니까 그렇게 지역 주민들이 원망스럽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정치인에게 물러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능력 중 하나다. 기여도를 생각하지 않고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진 사람은 이미 공직을 수행할 자격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
최운열 의원(발언대 앞) 등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2017년 12월26일 국회 정론관에서 “촛불과의 약속인 개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의원들, 자신을 돌아볼 시간
2016년 선거에서 당선된 지 4년이 다 되어간다. 관성처럼 재선을 위해 지역구를 누비고 당에서 발표하는 공천 기준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가끔씩 진짜 다시 한번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생길 때가 있다. 문자 폭탄을 받거나 페이스북에 욕설 댓글이 달릴 때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편하게 살까 하는 생각도 든다. 좀 더 진지하게는 과연 유권자에게 다시 표를 달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고민도 한다. 새롭게 4년이 더 주어진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나부터 좀 더 젊은 세대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반면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면 함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시 마음을 다지고 앞으로의 계획을 짠다.
당연한 말이지만 선출되는 공직은 특정인이나 특정한 세대의 소유가 아니다. 일정한 기간 자리를 맡아서 최선을 다하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 지금 국회의원 중에 내년 선거 때 임무가 끝나는 사람도 있고 할 일이 더 남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확히 갈라서 그 시대에 맞는 구성원들로 다음 국회를 채우는 것이 지금 활동하는 정치인들에게 주어진 임무다. 자신이 필요할 때 나서서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고 그 시간이 끝났을 때 미련 없이 떠나야만 대한민국의 정치도 한걸음씩 전진할 수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자리에 있는가.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판단해야 하는 시기가 20대 국회의원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