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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6 15:50 수정 : 2019.10.26 15:53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다. 해마다 국정감사에서는 편파적 질문과 호통이 부각되면서 ‘국감 무용론’이 나오곤 한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토요판]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20. 정치인과 국정감사
민원성 질문, 일방적 호통
검사 시절 이해 못할 국감 행태
‘나는 잘해야지’ 다짐했지만
일정 파행, 짧은 시간 등 장벽

‘국감무용론’ 자주 나오지만
행정부 힘 강력한 구조에서
유치원 비리 폭로처럼
감시 기능, 공론화 효과 있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다. 해마다 국정감사에서는 편파적 질문과 호통이 부각되면서 ‘국감 무용론’이 나오곤 한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검사로 살던 시절 국정감사를 하러 온 국회의원들을 보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당시는 아직 공공건물에서 흡연이 전면 금지된 때는 아니었지만 거들먹거리면서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맘에 들지 않았고, 티브이 카메라 앞에서는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다가도 정회만 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시덕거리는 모습도 도무지 국민의 대표답지 못해 보였다. 질문 수준도 높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자질이 의심스러운 질문들

비법조인 출신 의원들도 있었지만 변호사 자격을 갖춘 의원들도 많았는데 정말 저분이 어떻게 사법시험을 붙었을까 의심이 가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엄연히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 어디를 압수수색해야 한다거나, 혹은 누구를 불러서 뭘 물어봐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때도 있었다. 심지어는 민원성 질문도 서슴없이 하곤 했는데, 어떤 국회의원은 지역구 유권자가 피의자로 입건된 사건 수십건의 사건번호를 연이어 부르면서 그 처리 결과를 따져 묻기도 했다. 평검사 입장에서 가장 꼴불견이었던 것은 검찰 출신 의원들의 오만함. 얼마 전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했던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반말 비슷하게 호통을 치는 모습은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국정감사를 받는 기관의 직원들은 적어도 몇개월 동안 예상 답변을 만들고 감사 준비를 한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몰랐는데 전국의 관공서들이 매년 하반기에 치르는 가장 중요한 행사가 국정감사다. 미리 작성하는 예상 문항과 답변 중에는 수십년 동안 변함없이 내려오는 것들도 있다. 가령 내가 근무하던 대검찰청의 경우 “검찰총장은 왜 국회에 출석해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항상 준비 자료에 있었다. 모범답안은 “준사법기관인 검찰이 수사의 중립성을 지키려면 검찰총장이 국회에 출석해서 답변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이다(이런 뻔한 질문은 실제 상황에서 잘 안 나오는데 드물게 사정이 바뀌면 등장하기도 한다. 전임 문무일 검찰총장은 오랜 관행을 깨고 국회에 출석을 했다. 그런데 새로 임명된 윤석열 총장이 다시 불출석할 의사를 밝히면서 올해 국감에 이 질문을 받았다).

물론 더 핫한 예상 문제는 현안에 관한 것이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의 수사나 재판 상황이 어떤지. 혹시 여당 혹은 야당에 불리한 결론으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변도 별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습니다.”

국정감사 당일이 되면 이런 질문과 답변이 끝없이 오간다. 어차피 속이 시원한 답을 듣기는 힘들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호통을 치며 묻는다. 편파적이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질문을 온종일 듣다 보면 자괴감을 느낄 때도 많다. 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병원에 몰려와서 “왜 이 환자는 수술을 하지 않고 방사선 치료를 했느냐”고 따져 묻는 광경을 보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감사를 받는 기관의 대표자들은 꼼짝없이 앉아서 성실한 자세로 대답을 해야 한다.

위원장이 정회 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화장실도 못 간다. 국정감사를 비롯해서 장시간 의원들의 질의에 대답해야 하는 날 기관장들이 점심때 국이나 물을 잘 안 먹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밤이 깊어서 이제 더는 질문거리가 없어 보이는데도 여전히 국회의원들은 한번 더 질문을 하겠다고 손을 든다. 그 모습을 본 위원장은 “질의를 하실 의원들이 계시니까 지금부터 재재재보충질의를 하겠습니다”라고 선언을 한다. 상임위원이 대개 20명 안팎이기 때문에 한 바퀴를 더 돌면 2시간 정도가 지나간다. “아휴, 좀 그냥 끝내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감사를 받는 기관의 공무원들은, 한번쯤 국회의원들을 앉혀놓고 국정감사를 해보고 싶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헌법기관으로 존중, 잊지 말자

국회의원이 되고 첫번째 국정감사를 하게 되었을 때 이런 기억들이 살아났다. 나는 좀 잘해봐야지. 아픈 곳을 찌르면서도 상대방이 승복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을 던져야지. 절대로 무례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예의 바르면서도 단호한 자세를 가져야지. 이런 다짐을 여러 차례 했다.

처지가 달라지니 대접도 바뀌었다. 국감 현장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릴 때는 높은 분들이 줄지어 서서 인사를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수감기관 중에는 군사법원도 있는데 국방부 장관은 물론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모두 나와 있었다. ‘우와 별이 도대체 몇개야?’ 법원과 검찰청에 갔을 때는 한참 선배인 분들도 깍듯이 예우를 했다. 국회의원들이 감사 때 우쭐해하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잘나서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국민의 대표인 헌법기관으로서 존중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열심히 해야지(참모총장들은 국정감사 현장에 나오지만 군 지휘에 문제가 없도록 먼저 최단시간 내에 꼭 필요한 질문에 답변을 하고 복귀하도록 하는 관행이 확립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다짐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단 국정감사 일정 자체가 파행이 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임기 첫해인 2016년 국감 때는 당시 여당 대표인 이정현 의원이 단식을 하면서 국감 보이콧을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해 국회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이유였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국정감사에 불참하겠다는 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해인 2017년에는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이 지상파 방송사의 이사 선임과 관련된 긴급 의원총회를 하겠다며 국감장을 떠나버렸다. 다만 이때는 2년 연속 파행을 하기가 부담스러웠는지 자유한국당 의원들 없이 그냥 진행해도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던 나는 자유한국당 소속 위원장이 자리를 비운 덕분에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위원장 노릇을 하는 호사를 누렸지만 한쪽만 참석하는 국감이 제 모습일 수는 없다. 2018년에는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소장 대행을 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 국감이 한시간 만에 파행이 되었다. 4년의 임기 중 파행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된 것은 올해가 유일하다.

파행이 되지 않을 때도 수준 높은 감사를 하기는 만만치 않다. 일단 질문시간이 너무 짧다. 관행상 의원들은 첫번째 질의(‘주질의’라고 한다) 순서에 7분을 배정받고 그다음(차례로 ‘보충질의’, ‘재보충질의’, ‘재재보충질의’라고 한다)부터는 5분을 배정받는데 답변시간까지 포함한다. 문제점을 깊숙이 파헤치려면 주의 깊게 대답을 들으면서 연이어 추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런데 감사를 받는 기관장이 말을 길게 하면 아까운 시간이 그대로 흘러간다. 의원실에서 보좌진들과 열심히 준비한 내용을 펼쳐 보이지도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초조해진다. 결국 답변을 가로막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국정감사를 티브이 중계로 보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의원들이 왜 대답할 기회도 제대로 주지 않고 소리만 지르느냐고 탄식을 하지만, 한정된 시간에 질문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때도 많다. 결국 내용 있는 문답보다는 일방적인 호통으로 끝나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2016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하는 모습. 예의 바르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하기 위해서 국정감사 몇달 전부터 자료 조사를 하고 현장 실사를 나가기도 한다. 금태섭 의원실 제공

감사를 받는 기관이 자료 제출을 꺼려서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에만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갖가지 사유를 들어서 자료를 내지 않는 때가 많다. 사생활 침해의 위험성이 있거나 그 밖에 타당한 근거가 있는 때도 있지만, 감사를 받는 기관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자료를 감추는 때도 적지 않다. 물론 국회의원이 게을러서 내용 있는 감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페이스북에는 국회 보좌진들이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페이지가 있는데 ‘열심히 질문거리를 만들어줘서 제대로 묻기만 하면 되는데도 한번 읽어보지도 않고 가서 더듬거리는 영감님’의 모습을 한탄하는 소리도 가끔 올라온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국감을 폐지해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사실 의회가 일년에 한번씩 정부 부처의 업무 전체에 대해서 감사를 하는 제도를 가진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행정부 견제를 위해서 의회가 조사 권능을 갖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기적으로 업무 전반을 살펴보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는 비판도 있다. 내실 있는 감사보다는 어떻게든 한번 튀어보려는 국회의원들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많다. 올해 국감 현장에는 ‘리얼돌’을 등장시킨 의원이 언론의 비판을 받고 사과를 했다. 이럴 때마다 ‘국감무용론’이 힘을 얻는다.

국감 성과 포상, 최고의 보람

그러나 국회에 비해 행정부의 힘이 매우 강한 우리 현실에서 국감의 효용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감사를 준비하는 공무원들의 입장에서는 귀찮고 힘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유권자들의 대표들로부터 질문과 지적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면 그만큼 업무처리에 신중하게 된다. 국감에서 의미 있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20대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표적인 성과의 예를 든다면 박용진 의원이 유치원 비리를 폭로하면서 ‘유치원 3법’을 발의한 일을 떠올려볼 수 있다. 법안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심각한 문제를 공론화해서 정부와 사회가 해결책을 궁리하게 만든 것은 국정감사 본래의 목적에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각 정당에서도 국감이 끝나면 성과를 평가해서 열심히 한 의원실에 포상을 한다. 의원 생활을 하면서 받을 수 있는 어떤 상보다도 값지다고 생각한다. 국감 한달쯤 뒤에 원내대표실에서 발표를 하는데,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국정감사 몇달 전부터 자료를 파헤쳐서 조사를 하고 현장에서 호흡을 맞춰가며 질문을 한 국회의원과 보좌진은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다른 직장과 마찬가지로 국회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도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다.

▶ 금태섭 : 국회의원(서울 강서갑).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대변인을 지냈다. 검사 시절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한겨레>에 연재하다가 ‘윗선’의 반대로 좌절한 경험이 있다. 천직으로 여겼던 검사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할 말은 하고 산다”가 인생의 모토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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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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