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9 13:16
수정 : 2019.06.29 13:42
[토요판]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13. 국회 폐회 중 하는 일
마지막 본회의 4월5일 열려
무려 80여일간 놀고먹은 셈
기업이라면 몇번 부도 났을 것
밥값도 못한다는 눈총 괴로워
국회 안 열릴 때 ‘노는’ 건 아냐
지역행사 참석하고 주민들 만나
전문가 초청해 공부모임 하기도
“국회 휴업만은 제발 피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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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6월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회의에 불참해 한국당 의원석이 텅 비어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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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바빠지시겠네요.”
최근 며칠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국회 본회의가 열렸던 날이 지난 4월5일. 대한민국 국회는 자그마치 80여일을 말 그대로 놀고먹은 셈이다. 일반 기업체가 이렇게 일을 안 했으면 부도가 나도 몇번은 났을 기간이다. 통장에 세비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민망할 정도다. 어쩌다 방송에 출연해서 다른 당 의원과 논쟁을 벌일 때도 일단 국회가 안 열려서 국민들께 송구스럽다는 말을 한 자락 깔고 얘기를 시작한다.
국회를 열지 못하는 것에 단순히 도의적인 책임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국회법은 “2월, 4월 및 6월1일과 8월16일에 임시회를 집회한다”고 명시한다. 정해진 날에 회의를 열지 못하는 것은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기는 모양새다. (정기회는 매년 9월1일에 열어서 100일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다가 지난 24일 마침내 어렵게 각당 원내대표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져 국회가 열리게 되니까 “바빠지겠다”는 인사를 받는 것이다. 아주 살 것 같다. 밥값도 못한다는 눈총을 받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는데 마침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존경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님들이 합의 추인을 거절해 반쪽 국회가 되어버릴 우려가 생겼는데, 다행히 28일 다시 합의가 되어 국회가 정상화될 수 있게 되었다.
파행 중일 때 더 열심?
국회가 문을 닫은 동안 의원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정말 한가하게 놀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사실 놀려고 마음먹으면(?)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가 활발하게 열리는 시기에 더 잘 숨어서 놀 수 있다. 국회 일정은 언론에 모두 보도가 되기 때문에 회기 중에는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을 못 해도 주민들이 이해를 해준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바쁠 텐데 어떻게 시간을 냈느냐”고 인사도 받는다. 오히려 국회가 파행 중일 때는 눈총이 따갑기 때문에 놀 수가 없다. 얼굴이 알려진 의원의 경우에는 주말에 놀러 갔다가도 욕을 먹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최근 몇달처럼 ‘노는 국회’에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는 오히려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사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부지런하다. 대체로 성격이 적극적이고 어렵게 당선된 만큼 뭔가를 하겠다는 성취의욕도 높다. 역대 최고로 평균연령이 높은 ‘아재 국회’라서인지 아침잠들도 없어서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도 많다.(20대 국회의원들의 당선 시점 평균연령은 55.5살로 역대 최고다.) 의원들에게 지난 몇달간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면 대체로 아래와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우선 행사에 다닌다. 지역 일이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사실 국회의원이 참석할 수 있는, 또는 참석해야 하는 행사는 정말 끝도 없이 많다. 서울을 보면 일단 구청장이 주최하는 운동 경기를 들 수 있다. 내가 사는 강서구의 경우 16개 종목이 있다. 축구, 당구, 풋살, 배드민턴, 게이트볼 등 동호인들이 모여서 1년에 한번씩 구청장배 시합을 하는데 개회식에서 구청장과 국회의원이 축사를 한다. 상당수의 종목은 구청장배 외에 협회장배 시합도 해서 실제로 참석해야 하는 행사는 그보다 훨씬 많다. 혹시 빠지면 바로 표시가 나고 협회 임원들로부터 원망을 들을 위험이 있다. 강서구의 경우 선거구가 갑·을·병 지역으로 나뉘어서 국회의원이 3명이다. 강서을, 강서병 국회의원은 와서 축사를 하는데 강서갑 국회의원인 금아무개 의원이 안 오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운동 경기뿐만이 아니다. 주민센터에서 관리하는 직능단체가 16개가 있는데 대개 매달 모임을 한다. 지역구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알려진 의원들은 이 모임에 찾아가서 인사를 한다.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지도자협의회, 자율방범대, 바르게살기위원회, 희망드림단 등의 단체인데 지역 사회에 관심이 많고 봉사활동에 열심인 훌륭한 분들이 회원으로 있다. 이분들을 만나면 밑바닥 여론을 들을 수 있고 유권자들과 친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개 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분들이기 때문에 실제 선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문제는 이 16개의 단체가 동네마다 있다는 점이다. 강서갑 지역엔 6개 동이 있다. 매달 평균 96번(16×6)의 직능단체 모임이 있는 것이다. 인사말씀만 하고 나온다고 해도 모두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봄가을에 있는 동네별 축제, 어린이집, 유치원협회 등 각종 단체들의 행사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일정표에 더 적어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꽉 차게 된다.
선거에서 당선돼 의원이 되었을 때쯤에는 이런 행사에 되도록 많이 참석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국회 일정이나 회의 때문에 빠지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 국회의원은 행사마다 다 오는데 금아무개 의원은 얼굴이 잘 안 보인다”는 얘기를 들으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여러 행사가 겹치면 혼자서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주말에도 보좌진 몇명이 나와야 했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열심히들 다녔다.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모르는 분이 내 페이스북에 올린 댓글을 읽었을 때였다.
아이를 데리고 농구대회에 참가했다가 내 축사를 들었다는 그분은 초등학생 농구대회에 정말 국회의원 3명과 구청장이 총출동해서 축사를 해야 했느냐고 강한 비판을 하셨다. 댓글 일부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친구들과 즐겁게 농구를 생활체육으로 즐기던 아이들이 왜 표창장 수여식을 보고 박수를 치고 있어야 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국회의원들과 구청장, 구의회의장, 구의원들은 왜 그 자리에 참석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 정말 지역구 관리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등산로에서 지역구민들에게 인사하시거나 종교기관에 참석하시는 것, 아니 더 나아가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복지센터(고아원/양로원/장애인 시설)에 방문하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 오늘이 20대 국회 개원일로 알고 있습니다.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소명과 선출직 공무원의 사명을 실천해주시기를 간곡히 기원드리겠습니다.”
부끄러웠다. 아무 생각 없이 행사를 쫓아다니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해왔는데 솔직히 선거운동을 한 셈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다. 어린 시절 학교 행사에 와서 지겹게 긴 축사를 늘어놓는 어른들을 보며 염증을 느끼던 기억도 났다. 물론 현실적으로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이 이런 자리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거 때만 얼굴 비치고 선거 끝나면 지역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유권자들의 불만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저 댓글을 본 이후로는 행사에 참석해서 축사를 하는 것보다는 가급적 지역구 내 학교에 찾아가거나 아파트 입주자 모임 같은 곳에 가서 학부모나 주민들로부터 지원이 필요한 사항 등을 듣고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을 한다. 선거 때 다른 후보를 찍었어도 상관없이 지역구 의원에게 일을 시킬 수 있다고 말씀을 드린 뒤에 필요한 것을 얘기하시라고 하면 다들 좋아한다. 이번에 국회가 닫았을 때도 초등학교에 찾아가고 주민들을 만났다.
공부하면 뭐 하나
지역에 다니지 않을 때는 모여서 공부를 하기도 한다. 국회의원들이 대개 아는 거 없고 무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요즘은 실력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공부 모임을 만들고 열심히 다니는 의원도 많다. 대개 전문가를 초빙해서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는 식으로 진행을 한다. 국회 사무처에서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소속 상임위원회 업무와 관련된 강연을 듣기도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중요한 현안을 듣기도 한다. 최근 가장 뜨거운 주제는 미-중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우리의 대처 방안. 워낙 민감하고 해법이 어려운 문제라서 보수적 시각을 가진 분과 진보적 시각을 가진 분의 강연을 모두 들었다. 잠깐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전문가들은 미-중 사이의 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미래의 글로벌 주도권을 놓고 양국이 한판 세게 붙은 상황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굴복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준전시상황’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해법에서다. 한 전문가는 중국이 미국의 힘에 가로막혀 주춤하는 상황이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미국이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신속하게 미국의 입장을 지지해서 경제적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전문가는 대외무역 비중까지 줄여가며 대처하는 중국의 잠재력을 가볍게 봐서는 큰일이라고 한다. 최대한 신중하게 우리 입장의 결정을 늦춰야 하고 특히 중국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외교 문제에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면밀히 상황을 살펴가면서 가장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대처해야 한다. 답이 어느 쪽이든 이런 공부를 하다 보면 하루빨리 국회를 열고 현안을 다루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친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를 해도 정작 국회 문이 닫혀 있어서 국정에 관한 논의 자체를 할 수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여서만 공부하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있을 때는 업무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혼자 이런저런 책을 읽기도 한다. 최근에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30대 신예작가 유성호와 함께 쓴 <밤이 깊어 먼 길을 나섰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생각의 방향이 정반대인 지점도 있고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평가는 차이가 많지만 그래도 경제, 안보, 민생 등을 놓고 고민하는 것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황교안 대표께서도 국회가 손 놓고 앉아 있던 지난 몇달의 상황을 바람직하다고 여기시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염증이 한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까지 이 칼럼에서 여당의 입장을 내세운 적은 없었는데, 여당도 노력할 테니 다른 건 몰라도 국회를 휴업하는 사태만은 피하자고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께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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