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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의원 핸드폰 화면에 2만618개의 문자가 들어와 있다고 표시돼 있다. 금태섭 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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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④ 문자폭탄의 효과
‘문자폭탄’에 대한 두가지 입장
일방적 의사표시라며 반대하거나
유권자 상시감시체계라며 찬성
비판도 관심…감사하며 답변 드려
‘좌표’ 찍어 보내는 문자폭탄엔 반대
배타성 부각에 당 지지율 하락 우려
결국 정치인들 입 다물고 소극적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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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의원 핸드폰 화면에 2만618개의 문자가 들어와 있다고 표시돼 있다. 금태섭 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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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드드드드….”
처음에는 차가 고장 났거나 도로가 울퉁불퉁해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집안 행사가 있어서 가족들을 태우고 어디를 가는데 차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혹시나 해서 핸드폰을 들춰본 나는 깜짝 놀랐다. 쉴 새 없이 문자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전화기 화면에는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마치 동영상처럼 돌아가면서 뜨고 있었다. 한두 시간 남짓한 동안 들어온 문자는 자그마치 2만통이 넘었다. 그전에도 몇백통 수준의 문자를 받은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건 처음이었다. 핸드폰이 먹통이 됐다. 만져보니 실제로 기계가 뜨거워졌고 배터리 잔량 표시는 눈에 보이게 줄어들고 있었다. 문자 행렬이 잦아들 무렵 기념(?)으로 알림 표시가 된 핸드폰 화면을 캡처했다. 2만618개의 문자.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연예인들도 (핸드폰 번호는 공개를 안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문자는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수만통의 문자를 받는 것도 국회의원의 특권 중 하나일까.
문자폭탄에 대한 두가지 입장
흔히 ‘문자폭탄’으로 불리는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런 식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반대하는 것이다. 초기에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정치인에게 문자를 보내던 것이 최근에는 무차별적으로 관련 상임위원회에 있는 의원들 모두에게 보내는 것도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되었다.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수만통의 문자를 받은 박지원 의원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서 “문자폭탄테러”라는 표현을 쓰며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해당 집회 참가자들의 주장을 이해하고 정부 쪽에 전달하려고 노력도 했는데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귀하들 때문에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잃게 되고 사회적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경험과 경륜으로 다른 의원들의 존경의 대상이 된 ‘정치 9단’도 자신의 노력을 몰라주는 네티즌들의 문자 공격에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문자폭탄 때문에 전화번호를 자주 바꾸는 정치인도 많다.
반대편에는 문자폭탄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간접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유권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대표인 국회의원에게 정치적 견해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필요하고 권장할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국민들의 귀한 의견이 폄하되고 조롱받는” 이유가 ‘문자폭탄’이라는 명칭 때문이라며 ‘문자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사용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명칭 탓에 극히 일부의(!) 문자 내용이 과격할 경우에도 그 부정적 이미지가 문자를 보낸 모든 사람에게 덧씌워지게 되는데, 그러나 이러한 현상 덕분에 4년에 한번 심판할 기회만 갖던 유권자들이 “상시 감시 체제”를 이룰 수 있게 되지 않았느냐며 그 장점을 강조한다.
나의 입장을 얘기하자면, 나는 애초에 후자에 가까운 쪽이었다. 선거운동을 다녀보니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불만 사항이 “선거 때만 얼굴 보이다가 선거 끝나면 만나볼 수가 없는 정치인의 행태”였다. 나는 유세 때마다 확성기를 통해서 핸드폰 번호를 알렸다. 전화번호를 가르쳐 드렸으니 당선된 뒤에 언제든지 연락을 하시라고 했다. 업무 때문에 전화를 못 받더라도 문자를 남기면 반드시 답변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주변에서는 핸드폰을 공개했다가 너무 많은 연락이 오거나 혹은 악성 민원인을 만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염려들을 했지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다들 생활에 바쁘기 때문에 국회의원에게 전화해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았다. 오히려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있으면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정치인이라면 누가 무슨 불만을 터뜨려도 함께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추려고 해도 국회의원 전화번호는 금세 공개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선거 후에 몇몇 분들이 전화나 문자를 해오셨고, 나는 약속대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성껏 답변을 드렸다. 답을 받은 분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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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의원이 한 시민과 주고받은 문자. 금태섭 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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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폭탄이 노리는 것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네티즌들이 서로 의논해서 소위 ‘좌표’를 찍고 다수의 문자를 보내오는 것, 즉 문자폭탄을 받아보면서다. 물론 문자폭탄을 보내는 네티즌들도 직접 얘기를 해보면 매우 유연하고 좋은 분이 많다. 가끔 문자 세례가 잦아들 때마다 답장을 하나씩 보내 보는데, 애초에 과격한 반말로 문자를 보냈던 분들도 실제로 대화가 이루어지면 거의 모두 예의 바르게 존댓말로 답을 하신다.
“국회 법사위는 불법촬영물 해결 법안을 통과시켜라. 불법촬영물에 대한 중징계 법안을 통과시켜라”라고 똑같은 내용의, 반말로 된 문자를 연속적으로 보내신 분한데 “법사위 통과했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답을 보내면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파이팅입니다!!! 점심 알차게 드시고 힘내서 적극 밀어주세요”라는 격려의 답이 오는 식이다. 때로는 문자의 취지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답을 보내줬다는 사실 자체에 먼저 감사를 표하고 자신의 의견을 참고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폭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의견을 제시하거나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의견을 얘기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의도를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량의 문자를 보내면 답을 하는 것이 실제로 불가능해진다. 수백, 수천통의 문자가 일시에 도착하면 핸드폰이 마비된다. 몇차례 2만통이 넘는 문자를 받아낸 내 전화기는 지금도 문자 기능에 문제가 있다. 급할 때는 카톡이나 텔레그램에 의존해야 한다. 애초에 답변을 바라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일방적인 비난이나 욕설일 때도 많다. 문자폭탄이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막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정치인들은 문자폭탄 자체에는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냉정하게 세어보면 그렇게 많은 숫자도 아니다. 요즘 문자를 보내시는 분들은 “지역구 권리당원입니다”라고도 하시는데 그렇다고 해서 당내 경선이나 선거 결과에 영향이 있을까봐 겁을 먹지는 않는다. 정치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무관심이다.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폭탄이 정치인의 입을 막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발언의 내용이 아니라 싸움을 벌이는 모습만 부각되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일부 네티즌들이 좌표를 찍고 정치인의 에스엔에스에 몰려가서 욕설과 막말로 ‘댓망진창’(댓글+엉망진창)을 만들면 바로 이 효과가 나타난다. 언론에는 ‘국회의원 아무개가 어떤 주장을 했다’는 뉴스가 실리는 것이 아니라 ‘문자폭탄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기사가 된다. 주장에 대한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그 정당이나 지지자들의 배타적인 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소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타격을 입는 것은 감당할 수 있지만 소신은 제대로 알리지도 못한 채 그런 모습으로 인해서 소속한 정당이나 조직에 폐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이 생긴다. 결국 반발이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게 된다. 문자폭탄이 정치인들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침묵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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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해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집회’(혜화역 시위) 참가자들이 보낸 항의 문자를 ‘문자폭탄테러’라고 비판한 바 있다. 사진은 박 의원이 지난달 25일 한 토론회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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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총질하지 말라?
일이 이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 우리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본격적으로 문자폭탄이 등장한 것은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경선 때였다. 우리 당 후보들은 각각 입장이나 정치적 견해는 달라도 인신공격을 하거나 막말로 상대방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탄핵 이후에 벌어지는 대선이었기 때문에 승리가 거의 확실했던 것도 조심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인터넷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같은 당임에도 불구하고 욕설과 모욕이 난무했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국회의원의 지극히 정상적인 활동도 저지의 대상이 되었다. 온갖 음모론이 판을 쳤고, 심지어 개헌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조차 문자폭탄의 좋은 표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전략기획위원장으로서 경선 룰을 만드는 역할을 하던 나는 후보들의 캠프를 찾아갔다. 이런 식으로 견해의 차이를 용인하지 못하고 다른 목소리를 용납하지 못하는 풍조가 자리를 잡게 되면 우리가 정권을 잡은 후에도 두고두고 불안 요소가 될 것이라는 걱정을 털어놓았다. 캠프의 구성원들은 공감을 표했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드는 이유는 “말해봤자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누가 네티즌들과 싸우라고 했나.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고 좌표를 찍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대강 다 알고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후보가 직접 전화해서, 도우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자제해달라고 부탁하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들 경선 와중에 지지자들의 기세를 꺾을 수도 있는 일을 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추긴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발언들이 나오기도 했다. 나도 더 강력하게 밀어붙이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 당시 유행하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조금씩 가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때 바로잡지 못하고 실기한 것은 지금까지도 후과가 미치고 있다. 먼저 민주당을 보자. 우리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해서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이 행해지고 당 지도부에서 “국민이 사법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오는데도 재판의 독립을 염려하는 자기반성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당 대표 후보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은 게 있는지 입증되지 않았다”며 탄핵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하는데도 토론회장에서 목청을 높이는 태극기 부대를 의식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않는다. ‘5·18 망언’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양쪽에 포진한 문자폭탄 부대들의 “내부총질하지 마라”라는 구호가 합리적인 자정기능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대표인 정치인에게 의견을 개진하고 때로는 진로를 제시하기도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로의 판단을 존중하고 다른 의견을 용납하는 바탕에서 이루어져야지 아예 상대방의 입을 막으려는 행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진보는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되어야지 스스로를 비판하는 기능을 상실한 채 모두가 같은 얘기를 하는 사회를 향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부터 나서야 한다. 지금도 가끔씩 날아드는 문자를 보면서, 필요할 때는 내부 총질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쓴소리를 하면서 댓망진창을 돌파해내겠다는 결기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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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강서갑).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대변인을 지냈다. 검사 시절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한겨레>에 연재하다가 ‘윗선’의 반대로 좌절한 경험이 있다. 천직으로 여겼던 검사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할 말은 하고 산다”가 인생의 모토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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