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② 여야 협치
정치는 본질적으로 투쟁이고 다툼
사소한 법안 문구에도 충돌 일쑤
여야 합의 없으면 한발짝도 못 나가
잘한 일 잘한다고 칭찬 좀 못하랴
사이다 발언 하면 환호 받겠지만
결과 없는 ‘알리바이 정치’ 빠질 위험
‘우리 진영만 진정성’ 고집 벗어나
상대방의 최소한의 선의 인정해야
2016년 12월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투표 뒤 개표를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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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주에 걸쳐 연인원 1700만명이 거리에 나와 평화롭게 시위를 벌인 끝에 헌법 절차에 따른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일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지만, 대의정치의 관점에서 탄핵소추안의 국회 의결을 바라보면 또 다른 의미가 눈에 들어온다. 정치적으로 자살행위에 가까운, 자기 당 출신 대통령을 파면하는 투표에서 다수의 여당(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이 반란표(탄핵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총 300명 중 80%에 가까운 의원들이 찬성했다. 대통령 탄핵에 필요한 200표를 훌쩍 뛰어넘는 숫자. 당시 의석 분포는 야당과 무소속 의원을 다 합쳐도 172석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만일 그날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 실제로 국회 사무처에서는 부결 가능성에 대비해서 비상계획안을 만들어 놓았다. 국회 건물을 모두 폐쇄하고 성난 시위대가 몰려오는 것을 막는 것이 첫번째 조치였다. 아마도 최소한 몇주간 의원들은 집에도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공개 무기명 투표였음에도 최소 62명의 여당 의원이 야당이 발의한 탄핵안에 동조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국회 탄핵 의결의 숨은 공은 민주당 등 야당이 아니라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탄핵이 여야 모두의 힘에 의해 국회를 통과한 것은 그 이후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헌법재판소법에 의하면 탄핵심판에서는 검사 역할 즉 소추위원을 국회 법사위원장이 맡도록 되어 있다. 당시 법사위원장은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새누리당 대통령을 탄핵하는 재판에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 검사 노릇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야당의 입장에서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자리만 차지한 채 사실상 탄핵을 방해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당 의원들이 법사위원장실로 몰려갔다. 소추위원 역할을 제대로 할 생각이 없으면 일시적으로라도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했다. 그때 권성동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만약 소추위원 역할을 못해낼 것 같으면 애초에 법사위원장 직을 사임하겠다. 그러나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상 소추위원으로서 최선을 다해서 공정한 탄핵 심판이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그 말을 지켰다. 일단 여야 사이의 뿌리 깊은 불신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 법에도 없는 ‘소추위원단’이라는 것을 만들어 야당 의원들을 참여시켰다.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필요한데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헌법 문제에 전문성이 있는 변호사들을 고루 선임했다. 민주당 등 야당이 추천한 변호사들도 두말없이 받아주었다. 초기에는 회의에서 이견도 나오고 여야 간 큰 소리도 오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쌓여갔다. 권성동 소추위원은 탄핵 심판을 앞두고 “국민 여론과 국회의 압도적 가결을 감안해서 탄핵 결정이 앞당겨져야 한다”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헌법재판소 최종진술에서는 “탄핵은 법치주의의 예외 없는 적용을 통해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의 근본 원칙을 확인해주는 장치”라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통해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이 승리하였음을 소리 높여 선언하여” 달라고 호소했다. 아부도 하고 호소도 했지만
정치는 본질적으로 투쟁이고 다툼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협치를 내세우지만 현실에서는 사소한 법안 문구 하나하나를 놓고 싸운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보다 합리적인 결론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기도 하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정당, 특히 오랜 세월 집권을 놓고 승부를 벌여온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속이 터질 때가 많다. 10개의 사안이 있으면 적어도 일고여덟개에 대해서는 의견이 충돌한다. 현실 인식의 차이가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가장 중요한 성취를 놓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기여를 얘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몇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첫번째는 현실적인 이유다. 법을 만들고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잘한 일은 잘했다고 말해줘야 한다. 국회에서 법안이나 안건을 통과시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처음 의원이 되었을 때 ‘임기 4년 동안 적어도 이것만은 해낼 수 있겠지’라고 기대했던 것이 명예훼손죄의 폐지였다. 물론 사법개혁이나 검찰개혁을 위해서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더 크고 중요한 법안도 발의를 했지만 다른 당 의원들의 반대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유독 위축되어 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형법상 명예훼손죄를 없애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여야 할 것 없이 서로 명예훼손 고소장을 날리고 검찰 앞에 달려가서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하소연하는 모습을 없애자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까. 나름 전략도 세우고 절충안을 만드는 작전도 짰다. (이 문제의 소관 상임위이자 내가 속해 있던) 법제사법위원회 식사자리에는 가급적 참석해서 다른 당 의원들 비위도 맞추려고 했다. 그러나 턱도 없었다. 법안에 대해서 논리적인 설명도 하고 과거 있었던 부당한 사례들을 예로 들면서 비장한 호소도 했건만, 회의장에 앉아 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딱 한마디로 답했다. “신중검토(의견)입니다.” ‘신중검토’라는 말은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법사위에서는 만장일치 통과가 관행이다. 한명이라도 반대하면 통과가 안 된다. 다수결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우리가 소수당이던 과거에는 우리가 오히려 만장일치를 주장했기 때문에 지금 바꿀 수는 없다.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작은 변화도 만들 수 없는 이유다. 집권여당 입장에서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잘한 일은 잘했다고 칭찬 좀 하는 게 뭐가 어렵겠나. 여야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지지자들로부터 문자가 온다. “왜 안 싸우십니까?” “대통령을 도와주세요.” 그 간절한 마음은 문자를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부의 성공을 돕고 당의 지지를 끌어올려 정권 재창출을 하는 방법이 반드시 싸움인 것은 아니다.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하고 환호를 받으면 스트레스는 해소되겠지만 해결책이 생기지는 않는다. 자칫하면 아무런 결과도 못 만들어낸 채 자신의 선명성만 드러내는 ‘알리바이 정치’에 빠질 위험도 있다. 항상 양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아와야 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 이해와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정말 뜻밖의 순간에 기적같이 ‘234명의 동의’를 얻을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다. 정치를 하려면 상대방에게도 최소한의 선의를 인정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용어 중에 ‘진정성’이란 말이 있는데 거의 항상 우리 편에만 적용된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결과가 형편없어도 같은 진영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진정성 혹은 선의를 인정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에 비해서 상대방은 원래부터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탐욕에 가득 찬 존재로 치부된다. 최근에는 우리 편은 그들과 디엔에이(DNA)가 다르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공방은 생산적인 결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내로남불의 모순만 낳는다. 명백히 잘못한 재판 청탁을 놓고도, “상대방에도 청탁한 의원이 있을 텐데 왜 그건 안 밝히느냐”라는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게 되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못해도 저쪽에 뺏기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합의를 이룰 수 없다. 기적의 순간은 지나가고
소추위원단에 관여했던 민주당 의원들 중에서 탄핵 심판 과정에서 권성동 의원이 법사위원장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탄핵에 이르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그 당시 집권여당 구성원 모두가 예외없이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하지만, ‘소추위원 권성동’이 견지한 태도는 국회의원이 어떻게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대 국회의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여야 모두가 합심하는 가운데 빛을 발했던 것이다. 만일 그 장면을 그대로 이어갔다면 80% 이상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촛불정신’을 구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적의 순간은 짧고 영광은 금세 스러진다. 자유한국당에서는 탄핵된 정권에서 총리를 지냈던 사람이 대표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면서도 지난 정부의 잘못을 반성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미 법원의 확정판결로 사실관계가 가려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늘어놓은 사람들을 조사위원으로 임명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닐 텐데 사사건건 트집만을 잡을 뿐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는 건설적인 제안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당의 모습을 돌아봐도 아름답지는 않다. 일각에서는 황교안 전 총리의 등장으로 탄핵의 정당성을 둘러싼 공방이 다시 벌어질 것이고 그것이 선거에서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그야말로 당리당략적인 전망을 전략이라고 내놓는다. 우리만이 촛불의 적자라는 고집을 버리지 못한다.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과거의 관행이라고 감싸기에 급급하고, 심지어는 “박근혜 정부 때도 같은 일을 했다”는 말을 변명으로 내놓는다. 야당 의원들은 국회의원 사직서를 쓰고, 여당 의원들은 정치적 생명을 걸고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뛰어내리는 모습은 정말 몇십년 만에 한번만 일어나는 일일까.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234명의 의원이 ‘진정성’과 ‘선의’로 뭉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정치를 다시 보는 것은 진짜 불가능한 것일까. 지금의 모습을 보면 전망은 어둡다.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를 기억하는 자, 혹은 미래를 내다보는 자가 웃은 적이 있던가?”
▶ 금태섭: 국회의원(서울 강서갑).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대변인을 지냈다. 검사 시절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한겨레>에 연재하다가 ‘윗선’의 반대로 좌절한 경험이 있다. 천직으로 여겼던 검사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할 말은 하고 산다”가 인생의 모토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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