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2 12:28
수정 : 2019.04.05 09:46
|
마크 저커버그가 2019년 3월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 저커버그는 '워싱턴포스트'에도 기고한 이 글에서 인터넷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기존과 다른 주장을 펼쳤다.
|
[구본권의 사람과디지털]
저커버그, 최근 잇단 활발하게 정책글 공개
“프라이버시 우선하겠다” “정부 규제 필요”
기존 원칙과 반대되는 천명…곤경 속 ‘시간벌기’ 지적도
페이스북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최근 ‘페북’에 빠졌다. 페이스북은 이용자에게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털어놓으라고, 또 상태를 업데이트하고 끊임없이 새 관계를 맺으라고 권하지만 정작 그 설계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 자신은 거의 페이스북을 이용하지 않아왔다. 저커버그는 아이 출산, 추수감사절, 새해, 재산 기부, 기업 공개 등 특별한 기념일 또는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만 매우 제한적으로 글과 사진을 올려왔을 따름이다. 페이스북의 ‘눈팅족’이던 저커버그가 요즘 페이스북의 적극 이용자로 변신했다.
지난달 초 3000단어 장문의 글을 올려 “페이스북은 프라이버시를 우선시하겠다”고 선언했는가 하면, 지난주말인 3월30일에는 600단어 분량의 글을 올려 “페이스북을 비롯한 인터넷을 규제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저커버그는 4월1일엔 독일 베를린에서 독일 언론그룹 악셀슈프링거의 대표 마티아스 되프너와 진행하는 대담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으로 중계하고, 독일의 정치인과 기업인 등 여론주도층을 만나는 사진을 올리는 등 전에 없이 활발한 페북 활동을 하고 있다.
저커버그의 늘어난 페북 활동은 페이스북이 처한 현주소를 알려준다.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은 여느 이용자와 달리, 개인적 감상이나 생각이 아니라 사실상 페이스북의 ‘공식 견해’와 정책 방향을 의미한다. 그동안 저커버그는 알고리즘을 통해 페이스북을 운영해왔고, 그가 기대한 방식대로 확산되고 높은 수익을 만들어왔다.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에 새로운 글을 계속해서 올리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상황은 더 이상 페이스북이 자체 알고리즘대로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더욱이 최근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메시지는 정제된 표현과 문장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상으로는 페이스북의 기존 서비스 원칙과 반대되는 자기모순적이라는 점에서 페이스북이 겪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준다.
저커버그가 3월30일 올린 글은 그가 “인터넷은 새로운 규칙을 필요로 한다”는 제목으로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이기도 하다. 그는 이 기고에서 “난 정부와 규제 당국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정부의 규제가 필요한 영역을 유해콘텐츠, 선거 관리, 프라이버시, 데이터 이동성 4가지로 구체화했다.
그는 “기술은 우리 삶의 주요 부분이 됐으며 페이스북과 같은 회사는 큰 책임이 있다. 매일 우리는 어떤 콘텐츠가 해로운지, 정치 광고 구성과 복잡한 사이버 공격 방어를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지금 (회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이런 결정을 기업 스스로 내리게 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규제를 강력하게 요청한 것이다. 저커버그는 사용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 수집하는 경우 거액의 과징금을 물리고 있는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거론하며 다른 나라도 이런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커버그가 프라이버시와 정부 규제에 대해 기존과 정반대의 입장을 잇따라 공식화하고 있는 배경은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의 서비스 철학과 모토가 바뀐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를 통한 개인정보 유출과 뉴질랜드 이슬람사원 테러범의 테러영상 생중계 등으로 페이스북이 처한 곤경이 기존과 다른 원칙을 잇따라 공표하게 만든 배경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30일 저커버그 기고에 대해 현재의 곤경을 해결한 ‘시간 벌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마블코믹스에서 펴낸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에서는 커다란 힘이 가진 커다란 책임을 강조한다.
|
애니메이션 <스파이더 맨>에서는 “커다란 힘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는 볼테르의 경구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갔다”며 규제에 반대하던 마크 저커버그가 프라이버시와 정부 규제에 대해 정반대되는 입장을 내놓으며 기술과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상황은 페이스북이 처한 위기를 보여준다. 페이스북이 위기 상황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자신이 가진 힘과 책임을 수익 확대 요구에 맞서 얼마나 진정성있게 다룰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또한 저커버그가 기고에서 밝힌 것처럼, 페이스북과 인터넷기업에만 정부 규제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달라진 기술 환경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새로운 기술 사용만이 아니라 그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계약과 법규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만났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