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천종식의 미생물 오디세이
⑧ 면역항암치료
면역계 ‘T세포’ 공격력 유지시키는
‘면역항암치료’, 떠오르는 암치료법
아직 수천만원~수억원 비용 크고
환자마다 효과 달라 계속 연구 중
최근 연구에선 장내 미생물도 주목
면역치료 효과 높이는 도우미 역할
암과 싸우는 면역계와 미생물의 협력
향후 면역항암치료에서 빛 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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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암세포를 외부 침입자로 인식해 공격한다. 암세포가 이런 면역세포 공격을 피해 증식할 때 암 질환이 발병한다. 그림은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는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3차원 영상.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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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재임 중의 업적보다는 퇴임 후에 실천한 많은 봉사와 선행으로 미국인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1994년 북한을 전격 방문해 당시 김일성 주석을 만나는 등 중요한 외교적 고비마다 해결사 구실을 한 그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그런 그가 자신이 앓던 흑색종(피부암의 일종)이 간과 뇌로 전이돼 더는 호전 가망이 없음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2015년 8월에 열어 그를 아끼는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카터는 그동안 해오던 봉사를 계속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마칠 생각이라고 밝혔으나, 그의 주치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당시에 새롭게 개발된 항암제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이라는 다소 어려운 이름의 이 신약은 기적적으로 카터 전 대통령을 완치에 이르게 하여 암치료의 새 시대가 왔음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제공했다. 치료를 시작해 불과 3개월 만에, 시한부 생명으로 기자회견까지 한 91살 환자의 전신에 퍼져 있던 암세포를 사라지게 한 이 기적의 항암제는 어떤 원리로 작동한 것일까?
카터의 흑색종 물리친 면역항암 신약
수십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몸에서는 돌연변이를 통해 적은 수이긴 하지만 암세포가 매일 만들어지고 있다. 이 암세포가 모두 견제를 받지 않고 몸 안에서 자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의 면역계가 암을 발견하는 족족 제거하는 경찰관 노릇을 충실히 한다. 물론 면역계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병원성 미생물을 퇴치하는 것이다. 여기에 원래는 우리 중 일부였지만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통해 배신자가 된 암세포를 죽이는 것도 우리 면역계의 역할이다. 바꾸어 말하면 면역계에 이상이 생기면 암이 생길 수 있고, 반대로 면역계를 잘 조절하면 암을 치료할 수도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을 살린 펨브롤리주맙은 바로 면역계를 조절하는 새로운 개념의 항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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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암인 흑색종에 걸렸다가 위기를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9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카터센터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탁회담’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카터 전 대통령의 암 치유를 도운 항암면역치료물질인 항체의 분자 구조. 감리교연합회뉴스(UMNS),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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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수십 가지 면역세포들이 협력하는 인간의 면역계는 ‘중용’을 잘 실천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면역계가 너무 소극적인 감찰을 하면 병원균이나 암세포에 대한 공격의 적기를 놓쳐 주인이 사망할 수 있다. 반면에 너무 적극적으로 광범위하게 적을 인식해 정상적인 세포까지 공격하면 류머티즘 관절염이나 아토피 같은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중용을 지키기 위해 면역계의 스타 공격수인 T세포의 표면에는 자동차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에 해당하는 물질이 각각 여러 개 존재한다. 암세포는 T세포의 공격을 피하려고 지능적으로 이 브레이크를 활성화하는데, 이 때문에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감시를 쉽게 피해 암덩어리로 자랄 수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을 구해낸 신약은 암과의 전쟁에서 중요한 ‘관문’이 되는 이 브레이크를 억제하는(그래서 면역세포의 활성이 멈추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하므로 면역관문억제제라고 불린다. 이를 발견한 제임스 앨리슨 미국 텍사스대학 엠디(MD) 앤더슨 암센터 교수와 혼조 다스쿠 교토대 교수에게 2018년 노벨상이 돌아간 것은 카터 전 대통령의 일화와 함께 이 브레이크의 발견이 생명과학과 의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암과 면역의 밀접한 관계가 알려지면서 드러난 또 하나의 연결고리를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수십조 개의 세균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 즉 마이크로바이옴이다. 최근 10년간 국내외에서 발표된 수많은 연구는 장내 미생물이 태어날 때부터 우리 면역계를 훈련시키고 조절하는 평생의 스승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면역과 암이 이렇게 관련이 깊다면, 장내 미생물도 암의 발생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항암능력 높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 있다
사람은 대장에 미생물이 없는 상태에서 태어나지만, 분만 과정에서 어머니한테서 받은 미생물과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입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로 곧 수백 종으로 구성된 작은 생태계를 대장에 운영하게 된다. 실험실에서 모든 조건을 똑같이 맞추어 키우는 쥐도 마찬가지로 태어난 장소에 따라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구성이 다를 수 있다.
시카고대학의 토머스 가이예브스키(Thomas F. Gajewski) 교수는 이 점을 이용해서 새로운 실험을 계획한다. 가이예브스키 교수팀은 유전적으로 같은 쌍둥이 생쥐를 일부러 잭슨랩과 타코닉이라는 서로 다른 두 기관에서 공급받아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비교하기로 한다. 예상대로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나 자란 이 두 생쥐는 장내 미생물의 종류와 구성이 매우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생쥐에 카터 전 대통령이 앓았던 흑색종 암세포를 이식하여 인위적으로 암을 발생시키고 암덩어리의 성장을 관찰하였는데, 놀랍게도 두 종류의 생쥐 중 유독 잭슨랩 생쥐에서만 암덩어리의 성장이 눈에 띄게 더딘 것으로 관찰하였다. 무엇이 잭슨랩 생쥐에게 항암 능력을 주었을까? 연구진은 면역에 초점을 맞추고 조사한 결과 타코닉의 생쥐보다 잭슨랩의 생쥐에서 암세포에 대한 주요 공격수인 T세포의 활성이 많이 증가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환경과 음식 등 모든 조건이 같은 상황이라 사실 차이가 나는 건 장내 미생물의 구성뿐인 상황. 이 가설을 증명하는 건 아주 간단했다. 두 생쥐를 같은 우리에 넣고 키워보기로 한 것이다. 생쥐는 동료의 분변을 먹는 특징이 있으므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같은 공간에서 키운 쥐들의 장내 미생물은 서로 비슷해지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같은 우리에서 키운 쥐들의 장내 미생물이 비슷해지면서, 암에 힘을 못 쓰던 타코닉 생쥐의 암덩어리도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 관찰되었다.
비록 동물실험이기는 하지만 장내 미생물을 바꾸었더니 암에 대한 저항력이 생겼다는 것은 장내 미생물을 통한 새로운 항암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연구진은 추가로 암에 걸린 생쥐에게 카터 전 대통령이 사용한 것과 유사한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했다. 병 주고 약 주는 셈이지만, 이 실험을 통해 암에 약했던 타코닉 생쥐에게 항암제만 투여한 것보다 잭슨랩 생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하고서 항암제를 투여했을 때 항암 효과가 배가되는 것을 확인했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항암제의 ‘병용 투여’에 해당한다.
2015년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이 연구는 분해하기 어려운 음식의 소화를 도와주는 하찮은 존재로 알았던 장내 미생물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연구로 평가받는다. 물론 생쥐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에서 암과 관련된 장내 미생물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생쥐에서 잘 작동하는 면역관문억제제와 장내 미생물의 조합이 최적의 암치료법으로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프랑스 귀스타브 루시(Gustave Roussy) 암연구소의 의사이면서 기초연구자인 베르트랑 루티(Bertrand Routy)는 파리의 여러 병원에선 ‘미스터 똥’으로 불린다. 동료 의사들의 조롱을 뒤로하고 루티 박사는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의 대변 시료를 최대한 많이 모으는 일에 집중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는 종종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먹기도 한다. 루티 박사가 속한 프랑스 연구팀은 항생제를 사용하는 환자에게는 면역관문억제제를 이용한 암치료가 잘 안 듣는 것을 발견했다. 항생제는 병원균을 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상적인 장내 세균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항생제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는 핵폭탄과 같은 존재이다. 결과적으로 황폐해진 장 생태계의 가장 큰 특징은 세균의 종 다양성과 수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다양한 종류의 세균이 장에서 발견될수록 면역관문억제제로 치료될 가능성이 크다는 중요한 결론도 끌어낼 수 있었다. 또한 프랑스 환자의 경우에는 아커만시아(
Akkermansia)라는 세균이 많을수록 역시 항암 효과가 좋았다는 사실도 밝혔다. 면역항암치료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장내 미생물의 특징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역시 또다시 생쥐를 실험실로 소환해야 한다. 연구진은 면역항암치료에 반응한 환자와 그렇지 않았던 환자의 대변을 각각 암에 걸린 무균 생쥐에게 이식한 뒤에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했다. 두 생쥐의 유일한 차이는 장내 미생물뿐이기 때문에 항암제 효과의 차이도 역시 장내 미생물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예상했던 대로 면역치료 효과를 본 환자의 대변을 이식한 생쥐가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치료 효과에서 탁월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개인 맞춤형 전략이 중요
생쥐에서 사람으로 그 대상이 이어진 연구를 통해 장내 미생물의 구성을 분석하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면역항암치료의 성공 여부를 예측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비용도 문제지만, 듣지 않는 치료의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만약 치료가 실패한다면 환자는 다른 방식의 치료를 할 적절한 시기를 놓칠 수도 있기에 치료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이런 개인 맞춤형 전략은 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만약 장내 미생물을 검사한 뒤에 치료가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스 연구팀이 발견한 또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는 이런 환자의 경우에 치료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환자의 장내 미생물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은 치료가 안 된 환자의 대변을 이식한 쥐에게 아커만시아 세균을 추가로 먹여서 면역항암치료에 반응하도록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쥐를 대상으로 했고, 동시에 발표된 다른 국가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논문에서는 아커만시아와 다른 세균인 페칼리박테리움(
Faecalibacterium) 등이 항암 효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므로, 어떤 세균이 사람에서 면역항암제를 돕는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기 이르다.
지난해 노벨상 수상 업적인 면역세포 브레이크의 발견이 기초과학의 몫이었다면 이 원리를 이용해서 암세포가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도록 만드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그동안의 항암치료는 대부분 암세포를 직접 죽이거나 수술과 같은 방법으로 몸 밖으로 제거하는 방법을 썼지만, 면역항암제는 면역세포를 조정해서 암세포를 죽이는 간접적인 방식을 이용한다.
이때 지구에서 출발한 스페이스 셔틀이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에 도킹하는 수준의 정교한 운전이 필요하다. 밀접하게 서로 영향을 주는 미생물, 면역세포, 암세포, 이 3자는 환자 개인마다 다르게 구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 반드시 개인 맞춤형 접근이 꼭 필요한 이유이다. 가까운 미래에 정상 세포와 암세포의 유전자를 비교하여 돌연변이를 찾아내고, 장내 미생물 유전자를 읽은 자료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데이터 기반의 정밀의학’ 시대가 올 것이다. 필자가 생명과학 전공 학생에게 대용량 데이터를 다루는 컴퓨터공학을 함께 공부하도록 강력히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면역과 미생물 등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융합되면서 한동안 멈칫하던 항암제 개발이 골드러시를 이루고 있다. 거대 제약회사부터 작은 벤처기업까지 다양한 신약이 개발 중이고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임상시험도 수천건 진행 중이다. 이 중 일부만 살아남아 실제 치료에 사용되겠지만 워낙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있어 앞으로 암 정복의 장래는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암과의 전쟁은 그동안 몰랐던 장내 미생물까지 그 전선이 확대되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전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은 암에 걸린다고 한다.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가족까지 고려한다면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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