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천종식의 미생물 오디세이
⑥ 음식과 미생물
모유 올리고당은 아기 소화 못해도
첫 장내 미생물 자리잡게 도와줘
미생물은 아기 면역계 훈련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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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소장과 대장에서 공생하는 수많은 미생물의 먹이이기도 하다. 좋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는 우리 면역계를 훈련시키고 우리가 직접 소화하지 못하는 식이섬유 같은 먹이를 몸에 좋은 성분으로 바꿔주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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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연휴 동안에도 다양한 텔레비전 채널에서는 수많은 음식 관련 방송이 등장했다. 출연자가 국내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 또는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소개한다. ‘음식은 약이다’라는 말처럼 많은 사람이 음식을 통해 병을 고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쁜 음식은 병의 원인이다.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서는 먹는 음식의 종류도 중요하고 최근에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처럼 먹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여기에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먹는 음식은 소장과 대장에서 우리와 공생하고 있는 수십조마리 미생물의 먹이도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영양분을 공급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굶어 죽고야 마는, 우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장내 미생물과 우리의 관계를 살펴보자.
갓난아기 장의 첫 미생물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기 직전까지 인간은 음식을 꼭 먹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에게 첫번째 음식은 바로 모유이다. 엄마는 아이의 생애 첫 식사에 어떤 것들을 넣어줄까? 당연히 모유에는 이제 막 태어난 아이에게 필요한 지방, 단백질, 유당 등 영양분이 골고루 들어 있다. 이와 함께 아이의 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미생물 공동체에 필요한, 락토바실루스나 비피도박테리움 같은 유산균도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 추가로 모유를 통해 제공되는 중요한 영양분이 바로 ‘모유 올리고당’이다. 다른 모유 성분과 달리 이 올리고당은 정작 수혜자인 아이는 소화할 수 없다. 그럼 엄마는 왜 막대한 에너지를 써가면서 이런 물질을 몸에서 만들어내는 것일까?
모유 올리고당을 먹는 주인공은 바로 장내에 이제 막 이주해와 자리잡은 세균이다. 장내 미생물은 특히 생후 2년까지 우리 면역계를 교육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 과정이 잘못되면 아토피 피부염, 천식 같은 자가면역성 알레르기 질환뿐만 아니라 비만, 당뇨, 자폐 스펙트럼 장애처럼 서로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모유 올리고당은 아이의 면역계 훈련을 담당할 장내 세균의 군량미 구실을 하는 것이다. 아이의 장에는 음식과 공기를 통해 날마다 새로운 종류의 세균이 들어온다. 엄마의 임무는 모유 올리고당을 통해 선별적으로 아이의 면역계를 책임지고 훈련시킬 믿을 만한 교관 미생물 집단을 구성해 주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만년 동안 지속된 인간과 미생물 공진화의 결과이다.
모유 올리고당은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며 다른 포유동물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답게 우리는 가장 많은 수인 200개에 가까운 종류의 올리고당을 만들며, 그 양도 가장 많다. 예를 들어 우유에도 모유 올리고당이 있지만, 그 종류와 양은 사람에 비해 크게 못 미친다. 그렇다 보니 우유를 재료로 만든 분유에는 당연히 이런 성분이 부족하다. 세계 분유업계가 모유에 가까운, 다시 말해 다양한 모유 올리고당을 포함하는 분유 제품을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장내 미생물 관점에서 만족스러운 분유는 아직 없다. 엄마가 많은 종류의 올리고당을 만드는 이유는 다양한 장내 미생물을 키워서 아이에게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이다. 단순하게 한두 가지의 유익균만 키워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장내 생명의 다양성은 아이의 생로병사를 위한 평생의 키워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유를 떼고 이유식으로 넘어가면서 아이는 본격적으로 장내 미생물 생태계, 즉 마이크로바이옴 경영에 들어간다. 아이의 입을 통해 많은 종류의 미생물이 들어가고 먹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미생물의 구성은 바뀐다. 모든 개인은 최고경영자(CEO)로서 평생에 걸쳐서 자신만의 식사 철학을 가지고 마이크로바이옴 경영을 해야 한다. 구체적인 마이크로바이옴의 실체가 밝혀진 것이 불과 10여년밖에 안 되었기에 우리에겐 참고할 만한 경영학 교과서가 아직은 미흡하다. 그나마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 몇 건을 여기서 살펴보기로 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미생물 생태계 구성이 달라져
소식, 단식, 심혈관질환 등에
미생물이 미치는 영향 연구 활발
소식·단식과 미생물의 관계
지난 30년간 다양한 동물실험을 통해 소식으로 먹는 열량을 줄이면 건강과 장수에 유리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단 어떤 종류를 먹느냐에 앞서 적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식이 몸에 좋은 이유가 과학적으로 모두 설명된 것은 아니다. 스위스 제네바대학의 미르코 트라이코프스키 교수팀은 장내 미생물의 역할에 주목하고 쥐에게 40% 정도 열량을 줄인 음식을 30일간 먹이는 실험을 진행했다. 당연히 소식한 쥐는 정상적인 열량을 섭취한 쥐에 비해 날씬해졌을 뿐만 아니라 지방을 태워서 살 빼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갈색지방세포가 늘어나는 것도 관찰했다. 지방을 저장하는 백색지방세포와 달리 갈색지방세포의 양이 늘어나면 그 개체는 같은 양의 고지방 음식을 먹더라도 살이 덜 찌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소식의 결과로 쥐의 장내 미생물 구성도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자, 그럼 갈색지방세포가 많이 생긴 것이 소식에 의한 직접적인 결과일까, 아니면 소식을 통해 변화된 마이크로바이옴 때문일까? 연구팀은 정상 열량을 섭취한 쥐와 열량을 제한한 음식을 먹인 쥐의 장 마이크로바이옴을 각각 같은 조건의 무균 생쥐에게 이식했다. 무균 생쥐는 원래 몸에 전혀 미생물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식한 뒤에는 각각 이식받은 마이크로바이옴의 차이만 있다. 결과는 놀랍게도 소식을 한 쥐의 장내 미생물을 가진 무균 쥐는 정상 대조군과 비교하여 갈색지방세포가 많았고 같은 양의 고지방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살이 빠지거나 당뇨, 비만의 생체지수가 개선된 효과가 장내 미생물의 변화 때문이라는 점도 학술적인 의미가 크지만, 장내 미생물을 잘 조절하면 비만을 치료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치료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힌트를 준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소식과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간헐적 단식에 관한 연구도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프랭크 곤잘레스 박사팀은 하루걸러 24시간씩 간헐적 단식을 한달 동안 쥐에게 시행하고 그 효과를 관찰했다. 이 간헐적 단식의 효과는 앞에서 설명한 소식의 경우와 비슷했는데 예를 들어 갈색지방세포가 늘고 당뇨와 지방간에 관련된 수치도 모두 좋아졌다. 이번에도 장내 미생물이 역할을 한 것일까? 이걸 증명하기 위해 무균 쥐에게 같은 방식의 간헐적 단식을 시행했는데 이 경우에는 앞에서 언급한 건강에 좋은 효과는 관찰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균 쥐에게 간헐적 단식을 한 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한 뒤에는 다시 단식의 효과가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최소한 쥐에서는 장내 미생물이 없는 간헐적 단식은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도 물론 중요하다. 미국의 초대형 병원인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스탠리 헤이즌 박사는 쇠고기로 대표되는 붉은색 고기의 섭취가 심장병의 증가로 이어지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밝혔다. 쇠고기에는 카르니틴이라는 영양소가 많은데, 이 물질은 우리 장 안에서 미생물에 의해 트라이메틸아민(트리메틸아민)으로 변환이 되고, 이것이 우리 장에 흡수되어 피를 타고 간에 도착한 뒤에 간에서 트리메틸아민-엔-옥사이드(TMAO)라는 물질로 전환된다. 고기에 포함된 카르니틴은 큰 문제가 없지만 미생물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트리메틸아민-엔-옥사이드는 바로 동맥경화나 혈전증 같은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확률을 크게 높인다고 한다. 다행히 모든 장내 미생물이 카르니틴을 트리메틸아민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따라서 심장 관련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장내 미생물의 종류를 조절하면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분야의 연구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을 건강에 좋게 바꾸어주는 음식도 많이 있다. 대개 전통적으로 한국인이 먹던 식단에 포함된 재료들이다. 식이섬유가 포함된 나물, 채소나 과일류는 모두 우리 장 안에서 보약의 역할을 하는 ‘짧은 사슬 지방산’을 만드는 미생물을 선택적으로 지원한다. 그래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미생물을 고려한 건강한 식습관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사과를 먹더라도 껍질째 먹으면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식이섬유인 펙틴을 추가로 섭취하게 된다. 펙틴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장 세포를 튼튼하게 하고 비만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평생 ‘마이크로바이옴’ 관리해야
관리 도와줄 인공지능도 나올 것
알파고가 미생물 관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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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포도주, 다크 초콜릿, 딸기, 호두 등에 많이 들어 있는 항산화물질 ‘폴리페놀’과 고지방식을 함께 먹으면, 염증을 줄여주고 비만과 당뇨를 예방한다고 알려진 장내 미생물 ‘아커만시아’가 증가한다는 사실이 미국 연구진의 쥐 실험 결과에서 나타났다. 아커만시아는 서유럽인과 미국인의 장내에 많고 한국인에게는 적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인의 장 안에서는 다른 미생물이 아커만시아를 대신해서 비슷한 구실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료와 설명 천종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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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동안 막연히 몸에 좋다고 알고 있던 식재료나 영양성분의 유익함이 실제로는 장내 미생물 덕분인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아마 프랑스 정부가 일부러 홍보한 것으로 의심되지만,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말이 한때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몸에 안 좋은 지방을 많이 먹는 프랑스인이 미국인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제시되었지만,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프랑스의 대표 식품인 와인에 많이 들어 있다는 폴리페놀이라는 항산화 물질이다. 폴리페놀은 어떻게 건강 증진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역시 쥐로 실험을 한 미국 럿거스대학의 다이애나 루프챈드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포도에서 추출한 폴리페놀을 고지방식과 함께 쥐에게 먹이면 장 안에 아커만시아라는 세균의 양이 증가하여 몸의 염증을 줄여주고 비만과 당뇨도 막아준다고 한다. 폴리페놀의 순기능에는 실제로 이 아커만시아의 역할이 클 수 있다.
아커만시아는 미국인과 유럽인에게는 많이 발견되지만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는 상대적으로 적게 발견된다. 예를 들어 필자의 아커만시아 비율은 0.1% 미만이다. 이 착한 세균이 없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다. 한국인의 장 안에서는 다른 착한 세균이 아커만시아를 대신해서 비슷한 구실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수천편의 논문이 선진국 국민을 대상으로 발표되었음에도 굳이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이 한국인 마이크로바이옴과 우리 식재료를 대상으로 비슷한 연구를 하는 이유는 나라마다 생활 습관이나 먹는 음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마이크로바이옴은 그 나라 과학자가 연구할 수밖에 없다.
우리 장에는 수많은 종류의 영양분이 들어오고, 사람마다 독특하게 구성된 마이크로바이옴이 이를 분해해서 수백 가지의 물질을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이 복잡한 발효 과정을 지금의 기술로는 정확히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소프트웨어 분야의 거인인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 투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여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아토피부터 치매까지 다양한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마이크로바이옴은 평생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이와 관련된 첨단 연구가 국내외에서 진행 중이니, 가까운 미래에 개인의 마이크로바이옴 경영을 도와줄 ‘알파고’도 출현할 것이다.
물론 그 전에라도 우리가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끼니마다 첫 숟가락 뜨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생각하지 말고 내 장 안의 미생물이 먹을 음식이 무엇인지도 고민해보길 권한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식사는 언젠가 자가면역 질환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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